21세기 들어 시방삼세(지구를 이렇게 표현해본다)는 컨텐츠의 소리없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디지털의 무한한 공간은 채우고 또 채워도 밑동 빠진 항아리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사이트를 가봐도 빼곡한 컨텐츠 알림으로 여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것도 모자라 팝업창까지 동원해 강조하거나 과장한다.
이렇듯 넘치는 컨텐츠의 홍수 속에서 현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제목만 있는 기술에 익숙해져야 한다. 깊이 알기보다는 간단히 더 많은 것들을 알도록 우리를 둘러싼 21세기의 환경은 강박하고 있다. 이쯤 되면 그 환경 속의 자아는 한 뼘의 공간도 갖지 못하고, 정작 자기 삶이면서도 자신에게 더부살이하는 듯한 소외를 겪게 된다.
한편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를 열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웰빙바람과 더불어 도시를 점령해버린 것이 있었다. 바로 요가인데, 요가는 모든 헬스 클럽의 필수사항이었다. 그러나 정작 오래 전부터 요가를 공부하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요가가 아니었다. 그저 날씬한 몸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식 웰빙 요가는 요가의 이름을 붙인 몸 체조에 불가할 뿐 요가의 근본이 되는 마음에는 관심조차 없다.
물론 마음에 관심없는 웰빙 요가를 통해 건강하고 날씬한 몸을 얻어 마음의 만족을 얻은 이가 적지 않으니 몸체조일 뿐이라며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몸체조로 전락한 웰빙 요가는 마치 참외를 사서 껍질만 먹고 만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요가는 명상이 목적이지, 몸을 잘 비트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17일 개국한 한 인터넷 방송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방송국은 개국 후 특별한 홍보도 없었는데도 한 달 만에 회원수가 3천 명을 넘겼고 다시듣기 회수도 2천회까지 올랐다. 인터넷방송국 유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 영어 유(You)와 우리말 나를 연결해 만든 낱말 유나는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를 담고 있다.
현재 아침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세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이후부터는 다시 듣기 서비스를 하고 있어 24시간 전파를 쏟아내는 일반 방송국에 비하면 아주 조촐한 편성이지만 이곳을 찾는 청취자들의 반응은 뜨겁기만 하다. 물론 그 뜨거움은 겉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법열처럼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21세기에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현대 한국의 종교가 진실하게 마음을 향하기보다는 현실의 구복으로 본질을 잃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반면 유나방송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는 말들은 그것들과는 무관하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정토를 향한 그러나 소박한 정념만을 느낄 수 있다. 일상 전부를 그리 살 수 있도록 현실이 내버려두지 않겠지만 적어도 유나방송을 듣는 잠시의 시간 동안은 그런 속세의 먼지를 털어낼 수 있어 보인다.
세상에 발붙이고 있으면서도 다른 경지를 경험케 해주는 색다른 느낌으로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꼈겠지만 아직 낯설기만 한 유나방송을 청취자들이 찾도록 하는 데는 정목 스님의 역할이 매우 크다. 현재 유나방송의 대표 프로그램인 '마음으로 펴는 요가'를 진행하는 정목 스님은 이미 불교방송을 통해서 너른 청취층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유나가 불교방송은 아니다. 종교와는 상관없이 마음을 살피고, 명상을 돕는 방송을 한다.
유나는 아직 작디작은 방송국이다. 스튜디오만 해도 기계치인 정목 스님 등을 위해 PD가 돕고 있기는 하나 진행자와 프로듀서 사이에 일반 방송국처럼 유리벽이 없다. KBS 라디오 PD출신으로 불교방송을 거친 방송 베테랑 김재진씨가 유나방송을 이끌고 있다. 김씨는 방송국 운영에서 제작, 진행 등 1인 다역을 소화해내고 있는데 그 역시 명상 마스터 자격을 여러 개 갖고 있는 사람이다.
처자식 거느리고 있는 그이지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시인이기도 한 그에게서 구도정진 중인 비구를 느끼게 된다. 그 스스로도 "해탈에는 이르지 못하겠지만 이렇게 명상과 좋은 음악을 전하다가 갈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명상박물관 '오래된 인연'을 운영하고 있기도 한다. 유나방송국은 명상박물관 내에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회원이 모이고, 방송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주변에는 나와 똑같이 마음에 목마른 이들이 많은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아닌 게 아니라 질량이 없는 마음이 때에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으로 자아를 억누르기도 하고 자신을 깃털보다 더 가볍게 만들기도 한다. 마음이 있기는 있는 것이 분명한데 현대는 그 마음을 바라보게 허락하지 않는 것이 단지 문제일 뿐이다.
요즘 세상에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화들 속에서 마음에 대한 주제는 찾아볼 길이 없다. 마음을 추구하는 것은 마치 식민지의 독립운동처럼 은밀하고, 불온한 일이 되었지만 그런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유나방송을 통해서 알게 된다. 21세기의 도도한 물결이 물질과 채움으로 치달을수록 역설적으로 마음의 투쟁은 더욱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명상은 밥을 짓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밥 짓는 일을 방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주 배고픈 시절을 겪기도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너무 배부른 시대를 강박할지도 모른다. 아직 해결해야 할 속내 많은 시대를 사는 우리들 중 누군가는 밥 짓는 일 대신에 마음을 짓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 그 사실이 방송의 내용 이전에 유나가 이 세상에 던지는 작은 소리이자 존재감이 아닐까 싶다.
| | 방송시간에 맞춰 잠시 가게문을 닫는 사람도 | | | 유나방송 '마음을 펴는 요가' 진행하는 정목스님 | | | |
| | ▲ 방송 중 청취자들과 함께 명상동작을 하는 정목스님. 스님에게 방송은 다른 형식의 명상이다. | ⓒ김기 | 불교방송에서 오랫동안 방송을 하셨는데, 유나에서의 방송은 좀 다른 면이 있어 보인다. 정목스님에게 두 방송의 차이점 그리고 스님방송의 특징에 대해서 물었다.
"불교방송은 공중파이기 때문에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무게 중심을 일상생활에 맞추고 있습니다. 깨달음은 자기 삶의 현장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는 편이죠.
고정 청취자가 대부분이지만 주파수를 돌리다가 우연히 듣게 되는 분들도 편안히 들을 수 있도록 너무 무겁지 않고, 너무 교리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주로 불안을 껴안는 방법, 스트레스에 대한 새로운 각도 등 일상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단순하고 쉽게 다가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유나에서의 방송은 그렇게 우연히 찾아오기보다는 마음공부의 길을 찾고자 하는 구체적인 동기를 가진 분들이 대상이기 때문에 좀 더 깊고, 직접적인 명상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특히 요일마다 다른 명상주제를 청취자들과 공유하는데요. 목요일 같은 경우에는 태교를 주제로 삼습니다. 흔히 태교는 아기를 가진 엄마만 하는 것으로 아는데, 제가 전하는 태교는 아기 아빠는 물론 가족 모두 더 나아가 인류 모두가 어디선가 태어날 새로운 생명에 대한 축복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죠. 생명에 대해서는 남녀불문, 승속불문하고 모두에게 축복의 의무가 있습니다. "
스님은 방송을 하면서 자신도 청취자들과 함께 요가동작을 함께 하는 등 방송하는 시간 자체가 스님 자신에게도 명상의 시간이다. 스님 눈이 맑다는 것이 당연할 듯하면서도 꼭 그렇지만도 아닌 것이 요즘이라서 의심 많은 기자는 스님의 눈빛만 오래 훔쳐봤다. 속세의 나이야 알 도리 없지만 스님은 눈은 아이처럼 맑고 고요했다.
유나방송 김재진 PD는 스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한다. "스님이 과거 한 인연에 대해서 오랫동안 말을 하는데 그 말만 듣고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굉장히 좋은 인상을 가졌는데, 나중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스님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사람이더군요. 정목스님은 번죄의 동기들을 자신 스스로 지워버리는 분입니다"
스님의 고요함, 명상은 신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자신의 수행에서 오는 진정이기 때문에 그와 함께 명상하는 사람이 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스님이 방송하는 시간에는 잠시 가게 문을 닫는 청취자도 있는가 보다. / 김기 | | | | |
덧붙이는 글 | 유나방송은 인터넷(www.una.or.kr)으로만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