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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잡기만 하면 돼!

뜻밖의 행운이 손 안에 들어올 때가 있다.(지금은 해체된 그룹 '낯선 사람들'은 그걸 '두려운 행운'이라고 말한 바 있다.) 스티븐 킹의 신작 <셀>을 온라인 서점에서 결제하고 나는 마일리지가 쌓여 책을 한 권 공짜로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이트를 뒤지다 내 눈길을 멈추게 한 문구가 있었다.

-나는 바로 이 작품을 읽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스티븐 킹)

내게 장르 문학의 편견을 깨고 공포의 세계에 다가서게 한 작가는 킹이다. 그는 이전까지의 내 생각('장르, 판타지, 무협류는 수준이 낮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일상적이면서 세세한 움직임과 사물을 포착해 공포를 만들어내는 그의 솜씨는 훌륭했다. 항상 진지한 주제의식과 잃지 않는 유머도 맘에 들었다.

날 깨우친 작가의 뿌리가 궁금했다. 단 한 줄의 문구에 내가 서슴없이 책을 결제한 것은 그 때문이다. 무엇이 그를 글쓰기-그 뜨거운 전장에 몰아넣었을까. 책이 도착하자마자 나는 책장을 넘겼다. 눈이 거칠 것 없이 한 자, 한 자를 따라갔다.

<나는 전설이다>

소설의 힘은 거짓말을 사실처럼 믿게 하는 데 있다. 환상 소설이 아니더라도 모든 소설은 픽션-허구다. 독자가 그 허구에 빠져들게 하려면 여러 가지 근거가 필요하다. 특별한 근거 없이 거창한 옷차림만 갖춘 작품에 현혹되는 독자는 드물기 때문이다. 디테일,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이 전 세계 독자를 현혹시켰다면 그건 바로 작가가 그만큼 뛰어난 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이야기꾼은 작은 것에서 승부를 건다. 성석제, 김종광, 이문열, 황석영과 같은 작가는 커다랗고 묵직한 덩어리도 덩어리지만 무엇보다 세세한 이야기와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를 그럴 듯하게 그릴 줄 안다. 소설은 형식에 맞는 호흡이 필요하다.(탈선과 파격은 그 기본을 갖춘 다음이라야 한다.) 독자의 머리를 한 곳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나는 전설이다>는 리처드 매드슨이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핵전쟁 후, 변종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병으로 세상은 좀비 천지가 된다. 소설은 3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운 좋게 감염되지 않은 남자, 로버트 네빌이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아내와 자식 모두를 잃는다. 자신처럼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밤만 되면 좀비들이 피를 얻기 위해 그의 집 주변으로 몰려든다. 그 중에는 그의 친구였던 벤 코트만도 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고독함 속에서 그는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바이러스의 비밀을 알아내 좀비에 맞서려던 그는 폐허가 된 거리에서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는 여인 루스를 발견한다. 의심 속에서도 결국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가 인간이나 좀비와는 다른 돌연변이(새 인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가 리처드 매드슨의 재능이 뛰어나게 발휘된 곳은 우리의 주인공 네빌이 살아가는 일상에 있다. 이 소설에서는 네빌외 다른 인물의 비중이 크지 않다. 모노드라마에 가까운 형식으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우나, <나는 전설이다>의 경우 네빌의 심리 상태와 일상 그리고 좀비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폭포수처럼 끊임없이 담아내며 지루함을 피해간다. 로버트 네빌이 느끼는 위협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고스란히 독자에게로 전이된다.

시간 설정도 효과적이다. 고독에 놓인 어느 날에서 시작해 몇 년 단위로 건너뛰며 진행되는 방식은 네빌의 심리 상태 변화와 사건 전개 등에 적절하게 맞아떨어진다. 순간적인 몇 날만을 그렸다면 소품이 됐을 것이고, 좀비의 원인과 진행 등 모든 역사를 다루려 했다면 백과사전식의 정보 전달로 그칠 수 있었다. 작가는 그걸 피해 76년부터 79년까지의 시간대를 설정하고 적절한 몇몇 부분을 현미경으로 들이밀듯 보여준다. 플롯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작가의 능력 덕분에 독자는 좀 더 집중해 이야기에 빠질 수 있다.

<나는 전설이다>의 마지막은 충격적이다. 작가는 네빌뿐 아니라 읽는 다수의 독자도 깨닫게 만든다.

문득 자신이야말로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

-p.221,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 황금가지(2006)


읽어오던 독자의 시선과 사고를 전환시키는 문구다. 배척당하는 대상은 대부분 소수다. (어느 시대나 다 그렇듯)무리가 모여 만든 사회에서 다수의 힘은 막강하다. 소수가 아무리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사회적 힘이 없으면 그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키기 힘든 게 세상이다. 이해하지만 잊고 있는 진실을 이 소설은 마지막, 독자에게 상기시킨다.

감염된 무리가 모여 새 인류로 거듭나는 동안 네빌은 집안에 박혀있었다. 다수의 새 인류는 그런 네빌을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공포의 대상이 좀비가 아닌 인간 네빌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가 전설이 될 수 있는 것은 오래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좀비나 새 인류가 아닌 그대로의 존재로 가장 오래 산 인간이었다. 소설 제목 <나는 전설이다>는 그런 의미에서 해석될 수 있다.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는 인간 문명의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한 인류가 도태되고 끊임없이 다른 종이 생겨나는 진화. 작고 세세한 디테일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던 작가는 마지막에서야 묵직한 한 장을 꺼내든다. <나는 전설이다>는 결국 도태되는 인류의 마지막을 기록한 SF 공포 소설인 셈이다.

이 소설의 반전은 내용을 뒤집는 일반적인 스타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읽고 있던 독자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찍는다. 수면 위의 작은 조각만 보이던 빙하-그것의 숨겨진 거대한 몸체가 공포로 몰아넣는다. 소소한 재미와 긴장감도 뛰어나지만 묵직한 주제의식은 이 소설이 왜 고전이며 현재까지 많은 사람의 입과 입에서 회자되는지를 증명해준다.

좋은 소설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독자 각자를 끊임없이 사고하게 한다. 그런 사고의 교류가 이어지고 다시 다른 작품을 창조시킨다. 그 소설을 읽은 누군가에 의해. 다 읽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왜 스티븐 킹이 그런 말을 했는지. <나는 전설이다>를 통해 그의 글쓰기는 물꼬를 튼 것이다.

두려운 행운

마일리지로 얻은 책에서 나는 두려운 행운을 느꼈다. '그걸 잡기만 하면 돼'-기대하지 않았던 기쁨은 오히려 당사자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하나, 그 손을 잡는 순간 나는 사고하고 몸은 달아오른다. 이 행운을 혼자서만 즐길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자, 이제 당신이 즐길 차례다.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2005)


태그:#공포소설, #나는전설이다, #리차드 매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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