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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님.

22일 열린 제주평화포럼 개막식 참석차 제주를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비무장 평화는 미래의 이상이고 무장 없이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변방의 일이라 관심이 적지만 그곳 사람들에게는 현재 가장 뜨거운 관심사항이라고 들었습니다. 우선 말씀드릴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왔던 일이기에 모든 책임을 대통령께 물을 마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미 반대 의견에 대해서도 많은 내용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세부적인 내용들을 다시 나열할 필요도 능력도 제게는 없습니다. 당선자 시절에 가족이 다녀오셨던 그 곳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누구 못지않게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2005년 '평화의 섬'을 선포하실 때의 마음이 지금도 변함없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평화의 상징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은가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백범의 말씀입니다.

문화는 상징을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가장 슬픈 것은 '현재의 우리가 그러한 상징을 하나 가질 정도의 여유도 없는가?'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먼 미래의 이상으로 가는 과정에서 바로 다음 세대에게 "이 곳만큼은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내어 주어서는 안되는 비무장 평화의 땅이다. 지리적인 이로움 때문에 이곳을 요새화 하려는 수많은 움직임이 있었지만 우리는 지켜내었다. 그러니 너희도 모든 노력을 다해서 지켜내어라"하는 상징을 하나쯤 가지고 있어도 좋지 않은가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곳에 그런 상징을 두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제주의 역사, 환경, 위치는 그러한 상징과 문화를 세우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민 투표제'라는 법적 절차를 왜 밟지 않았는지요

두 번째로 슬픈 것은 현재의 결정과정이 위장된 방식의 '민주'임에도 그것을 못 본 척하려는 움직임 때문입니다. 제주도는 여론조사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빼놓고서라도 어떤 정책이 여론조사에 의해 판가름되는 것은 슬픈 현실입니다. '주민 투표제'라는 명백한 법적 절차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편의성을 이유로 이러한 편법을 사용한다는 현실이 아프게 느껴집니다.

최근 우리는 합천의 '일해공원 명칭'의 예에서도 유사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요식적인 면에서 하자가 없거나 적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형태를 민주주의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독재자가 '모든 결과와 역사는 내가 책임을 질 것이니 무조건 강행하라'고 윽박지르는 것보다 못한 행태입니다.

이러한 위선적 절차만 없었더라도 제주특별자치도가 현재 겪고 있는 갈등의 많은 부분은 없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아이 녀석에게 평화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노빠'라는 단어는 빈정거림에서 시작되었음을 압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빈정거림을 한번도 마다해본 적이 없습니다. 빈정거림의 한 이유로 '너희는 어째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하나도 용납하지 않고 무조건 옳다는 것이냐?'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와 살을 물려 준 부모 자식, 한 이불을 덥고 사는 부부도 서로의 생각이 다를 때가 있는데 덮어 놓고 추종하는 관계가 성립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어리석다고 봅니다.

다만 생각이 다를 때마다 입이 있는 사람은 말을 하고, 펜을 가진 사람은 글을 쓰고, 주먹을 가진 사람은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 옳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더구나 몇 가지 다른 점을 전체적인 배신으로 몰고 가는 것이 건전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노빠'가 되기 위해 대단한 일을 해온 것도 아닙니다. '원칙'과 '상식'에 박수를 쳐대고 부당한 '공격'이나 '저주'에는 항변을 하는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서 당연한 일상을 이어왔을 따름입니다.

이 글을 써놓고서도 많은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그 땅이 내 탯줄을 묻어놓은 곳이기에 개인적인 감정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돌이켜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감정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연고를 떠나서, 우리시대 평화의 상징으로서 그 섬이 가지는 의미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의미에서 이번 해군기지의 건립은 잘못된 결정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원칙'과 '상식'을 이야기하며 노빠가 되어온 과정 그대로, 저의 판단으로 잘못되어 있으며 앞으로 후세에게도 좋지 않을 결과를 가져다 줄 제주 해군기지의 건립을 반대하고자 합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아이 녀석에게 과거의 이야기로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과 온갖 시련에도 12척의 배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몸 마친 독립군의 일화들을 말해주고 우리 세대의 이야기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광주와 6월의 거리,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을 들려주던 것과 마찬가지로 평화의 섬 제주를 지키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시작되는 장마에 여러 가지 살피실 일 많겠지만 늘 건강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디어 다음, 서프라이즈 에도 게시하였습니다.


#제주#해군기지#평화#대통령#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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