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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뜨거웠어. 네 남편이 너무 뜨거웠어."

친구의 남편과 너무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며, 금쪽같던 친구마저 팽개친 화영(김희애)은 막상 그 남자와 산 지 1년 만에 지수(배종옥)를 만나 말했다.

"홍 교수하고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았니? 근본적으로 굉장히 에고 같은데…. 그런 생각 안 해 봤어?"

<내 남자의 여자>에서 친구도 버리고 올인 했던 '뜨거운 사랑'이 그렇게 끝날 것을, 2003년 드라마 <앞집 여자>는 미리 예언했다.

"남자 다 거기서 거기야. 별 남자 있는 줄 알아? 살 비벼가며 지지고 볶고 딱 3년만 살아봐. 그래도 그 남자가 항상 멋질까?"

그걸 2007년 <내 남자의 여자>가 증명했다.

김수현 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가 끝났고, '내 남자'와 '여자'도 끝났다. 그 누구도 남자와 '해피엔딩'은 없었다. 여자끼리 '해피엔딩'했다. 그렇게 <내 남자의 여자>는 끝났다. 지난 19일 <내 남자의 여자> 마지막회는 TNS미디어 코리아 조사 결과 시청률 38.7%를 기록했다.

이 드라마에 여자들은 열광했지만, 남자들은 열 내며 욕했다. 여자들이 "이 드라마와 함께 울고 웃었다"며 김수현 작가에게 존경을 표했을 때, 남자들은 "김수현 드라마는 안 본다"라며 투덜거리고 외면했다.

시청률도 증명했다. TNS 미디어 코리아 조사 결과 6월 11일부터 17일까지 19세 이상 성인 여자 시청률 1위는 <내 남자의 여자>(25.6%)였다. 반면에 19세 이상 성인 남자 시청률 1위는 <대조영>(16.0%)이었다.

성인 남자들에게 <내 남자의 여자>는 겨우 5위였다. 성인 여자들에게 <대조영>도 겨우 5위였다. <대조영>이 '내 남자의 드라마'라면, <내 남자의 여자>는 '내 여자의 드라마'였다. 남자들이 <대조영>에 열광할 때, 여자들은 <내 남자의 여자>에 열광했다. 왜 그랬을까?

<대조영>에 없고, <내 남자의 여자>에 있던 것

<내 남자의 여자>는 한 마디로 '불륜'을 다뤘다. 하지만 방법은 달랐다.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불륜' 현장은 발각됐다. 지수의 남편 준표와 바람난 건 화영이었다. 화영은 지수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다. 거기서 드라마는 시작했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다른 '불륜' 드라마와 다른 이유였다. <내 남자의 여자>는 '불륜'이 문제가 아니었다. '남자의 외도'가 관심사가 아니었다.

두 여자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화영의 고백처럼, 화영이 감옥에 가더라도 그를 믿어줄 단 한 명의 친구가 지수였다. 둘도 없는 친구사이인 이 두 여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드라마는 두 여자의 심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내 남자의 여자>에 '남자'는 없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남자'는 여자의 사랑이나 보살핌 없인 무력했다. 회장님이라는 준표의 아버지는, '아내' 없인 거동도 하지 못했다. "내가 버린 게 아냐. 당신이 나가라고 했잖아"하고 준표가 끊임없이 지수한테 외친 것처럼 그가 지수를 버린 게 아니라 지수가 그를 버렸고, 그가 화영을 택한 게 아니라 화영이 그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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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와 살 때 준표는, 밥 한 끼 시켜먹을 줄도 모르는 남자였다. 친구도 보이지 않았다. 지수가 가족과 친구와 '관계'속에 살아갈 때, 준표는 어떤 '관계'도 맺지 않았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남자들이 '형제애'라곤 찾아볼 수 없게 '나 홀로' 살아갈 때, 여자들은 가족과 친구와 '관계' 속에 살았다. '자매애' 속에 살았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여자들이 절망하고 희망을 품게 한 건 사실 남자가 아니었다. 지수를 절망시킨 건 남편이 아니라 화영이었다. 둘도 없이 사랑한다고 믿었던 친구 화영의 배신이었다. 또 지수를 살게 한 것도 새 남자 석준(이종원)이 아니었다. 실은 언니였다. '칠뜨기' 같은 '나'를 위해 대신 격렬하게 화내주고 챙겨주는 언니가 있어 지수는 절망하지 않았고, 일어섰다. 지수와 은수(하유미) 관계에서 '자매애'는 작렬했다.

화영도 여자 때문에 절망했고, 여자 때문에 위안을 얻었다. '남자'가 아니었다. "얻어먹는 밥도 수준이 있고 격이 있는 거야"라며 끊임없이 자기를 '돈줄'로 빠뜨리는 엄마 때문에 화영이 절망했다면, 화영을 화영답게 만들고 일어서게 한 건 지수였다. 그래서 화영은 지수를 찾아가 고백한다.

"나는 왜 힘들면 네 생각이 나는 걸까?"

여자와 여자 사이에 '남자'가 있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제목부터 내세운 '나'는 누구일까? '나'는 지수였고, '나'는 또 화영이었다. 그래서 '내 남자의 여자'는 화영이었고, '내 남자의 여자'는 또 지수였다. 문제는 '내 남자'가 아니라, 내 남자를 사랑한 '여자'였다. '남자'란 공기돌을 놓고 티격태격하는 두 여자였다

이 드라마가 주목한 건 '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가장 사랑하는 친구였으나, 내 남자 때문에 적이 돼버린 '여자' 이야기였다. 지수와 화영, 두 여자 이야기였다. 남편이 바람나 파탄 난 부부 이야기가 아니라, 남자 하나 때문에 파탄 난 '여자 친구' 둘의 이야기였다. 전혀 다른 두 여자가 어떻게 사랑하고 절망하며, 사랑에서 벗어나는 지였다.

그래서 지수는 언니 은수를 만나 고백했다.

"홍가 끼어드는 바람에 이렇게 됐지만 언니, 화영이랑 나도, 일종의 애정관계였던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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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가 그린 건, 여자들의 현실이자 판타지다. 그리고 지옥이다. '관계' 속에 상처받고 사랑 받고 살아가는 여자를 그렸다. 여자가 어떻게 사랑하고 절망하는지, '자매애'가 여자를 어떻게 구원하는지를 그렸다. 여자는 '관계' 위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홀로 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여자가 있었다. 그걸 김수현식 적나라한 언어로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여자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할 때, 남자들이 열광하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하다.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여성 시각에서 만든 드라마인데 당연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청자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판타지를 충족할 때 만족하는데, <내 남자의 여자>엔 여자들의 판타지를 만족시킬 인물이 많다. 반면에 남자가 가진 환상, 일탈의 꿈을 꾸려고 하면, 지수 언니는 '그런 남자는 죽어야해', '파멸과 나락에 빠져야 해'라며 직설적인 단어를 구사하며 훈계를 하잖느냐?"

그래서일까? <내 남자의 여자>가 끝나자, 여자들은 토로했다
.
"드라마 보면서 마치 내 일처럼 눈물 흘리고 느끼고 했는데 이제는 못 본다 생각하니 조금은 아쉽네요."(김경미)

#김수현#내 남자의 여자#불륜#자매애#김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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