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영화계는 최근 그야말로 '미소녀 전성시대'다. 미모와 연기력, 스타성을 검증받은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젊은 여배우들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본 트렌디 드라마의 전성시대를 주도했던 마츠시마 나나코, 마츠 다카코, 후카다 쿄코, 히로스에 료코, 다케우치 유코 등이 각자 최근작들의 부진과 이미지 변신의 경계선에서 주춤하고 있는 지금, 주목받는 틴에이저 스타들이 약관의 나이에 현대극의 주연을 꿰차며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나가사와 마사미, 우에토 아야, 아오이 유우, 사와지리 에리카, 우에노 주리, 아야세 하루카, 호리키타 마키, 시다 미라이 등이 최근 2~3년간 눈부시게 약진한 '1020' 세대 신인급 여배우들이다. 아이돌 스타의 연예 데뷔 시기가 빠른 일본 연예계에서는 영화, 드라마, CF, 가요 등을 두루 넘나드는 멀티 플레이어들이 많은데다 주연과 조연을 오가는 것도 자연스럽다.
최근 미소녀 전성시대 최고의 블루칩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단연 나가사와 마사미(20)다. 국내에서는 탤런트 윤은혜(<궁>, <커피프린스 1호점>)와 '닮은 꼴' 외모로 네티즌 사이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마사미는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눈물이 주룩주룩>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최근에는 아이돌그룹 NewS 출신 톱스타 야마시타 토모히사와 주연을 맡은 청춘멜로물 <프로포즈 대작전>(후지 TV)를 통해 일본 2/4분기 드라마 최고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출연작의 성적이 다소 기복이 심한 편임에도, 인기도에 있어서는 방송과 드라마, CF를 통틀어 현재 일본에서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는 여배우이기도 하다.
<하나와 앨리스>, <훌라걸스>를 통해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인기를 끌기 시작한 아오이 유우(22)는 아이돌의 이미지보다는 연기력으로서 촉망받는 드문 배우중 하나다. 국내에서는 청순한 이미지로 알려졌지만, 실상 그녀는 <고교교사>, <14개월, 아내가 아이로 돌아간다>, <철인 28호>, <허니와 클로버>, <변신>, <충사> 등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통하여 폭넓은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출연한 영화만 10여편이 넘을 정도로 '다작'으로 인한 이미지 소비를 지적받기도 하지만, 또래 배우 중 작품에 대한 '선구안'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 장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야자키 아오이(22) 역시 개성있는 외모와 연기력을 바탕으로 인정받은 케이스. 미야자키는 영화 <나나> 1편과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최근 한국배우 이준기와 공연한 <첫눈> 등을 통해 순수하고 해맑은 이미지로 사랑받았고, NHK의 아침연속드라마 <순정반짝>을 통해 연기력과 대중성에서 모두 고른 호평을 얻기도 했다.
<노다메 칸타빌레>와 <스윙걸즈>를 통해 발랄한 이미지가 트레이드 마크인 우에노 주리(21)는 최신작이던 <농담이 아니야>의 성적이 다소 부진했다.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특유의 엽기발랄 소녀 이미지가 강하지만, 영화에서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행복의 스위치>, <무지개 여신> 등 작고 실험적인 영화에 다양하게 출연하며 알찬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다.
반면 최근 들어 주춤하고 있는 케이스도 있다. <소녀검객 아즈미대혈전>으로 친숙한 우에토 아야(22)는 최근 한국의 동명드라마를 리메이크한 <호텔리어>의 히로인을 맡았으나, 드라마가 2/4분기 최저시청률을 기록하며 조기 종영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출연했던 <시모키타 선데이즈>에 이어 주연작의 2연속 조기종영. 높은 인지도에 비해 드라마 <어텐션 플리즈>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성공작을 남기지 못한 우에토 아야는, 높은 인지도에 비해 떨어지는 연기력과 잦은 중복출연으로 식상하다는 것이 아킬레스건으로 평가된다.
영화 <박치기>의 재일교포 2세 '경자'역으로 한국에도 친숙한 사와지리 에리카(20)는 '눈물의 여왕'이다. 이국적이고 귀여운 외모로 드라마에서는 청순가련형 캐릭터를 단골로 맡지만, 사생활에선 스캔들 메이커로 일본 연예신문의 1면을 수시로 장식하는 상반된 면모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2005년 첫 단독 주연작이던 <1리터의 눈물>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스타덤에 올랐으나, 이후 출연한 드라마 <태양의 노래>에서는 비슷한 캐릭터를 반복하다 실패했고, 아기랴 유야(아무도 모른다)와 출연한 <슈가 앤 스파이스-풍미절가>도 기대만큼의 성적은 거두지 못했다.
토다 에리카, 호리키타 마키, 아라가키 유이, 이노우에 마오 등은 떠오르는 샛별이다. 아직 확실한 스타급이라기보다 서서히 연기자로 자리잡아가는 단계에 있는 이 신인 여배우들은 주연과 조연을 넘나들며 점차 자신만의 개성을 구축해가고 있다. 아라가키 유이는 조연급으로 출연한 <마이보스 마이히어로>의 청순한 소녀 역할을 통하여 스타덤에 올랐고, 토다 에리카는 첫 주연작이던 <라이어 게임>이 성공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판 <꽃보다 남자> 히로인 이노우에 마오는, 지난 1분기에 방영된 시즌 2에도 연이어 출연하며 이 시리즈가 배출해낸 간판스타로 자리잡았다. '교복소녀'의 이미지가 강한 호리키타 마키는 <노부타 프로듀스>의 왕따소녀 역으로 주목받은 이래,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착신아리>등 다양한 영화에서 활약하며 앳된 인상과 달리 당차고 야무진 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이밖에도 <14세의 어머니>, <우리들의 이야기>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다 미라이를 비롯하여, 아이부 사키, 쿠로카와 토모카, 스즈키 안, 에이쿠라 나나 등 전도유망한 여배우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아직까지 연기력을 인정받은 몇몇 배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단기적인 스타성과 CF 적인 이미지에 기댔다는 평가를 벗어나지 못한 게 사실, 90년대 후반 한국 가요계에서 SES와 핑클이 높은 인기를 끌면서 스테레오 타입화된 몰개성의 미소녀 그룹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했던 것과 유사한 양상이다.
훈련이 덜된 상태에서 덜컥 미니시리즈나 황금시간대의 주연으로 기용되었다가 쓰디쓴 실패를 겪은 경우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도 문근영이나 고아라처럼 최근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주연급으로 부상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본처럼 '단기간에 치고 빠지는'식으로 이미지 소비가 심하지는 않다. 여배우의 수명이 짧고 다작 경향이 보편화되어있는 일본 연예계에서는 '아이돌이 될 것인가, 배우가 될 것인가'를 어떻게 결정짓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