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이 탐지에게 내민 것은 연이었다. 그것에는 커다랗게 한 글자가 쓰여 있었다.
‘拒’
‘거? 막으라는 얘기가 아닌가?’
탐지는 그 연을 날린 이가 김무력임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남부여군이 내일이라도 본진과 합류해 총공격을 해온다면 막기는커녕 전의를 상실한 각간과 병사들은 성문을 열고 달아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즉시 병사들에게 알려라. 곧 도달할 원군에게 성안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제히 북을 치고 징을 울리며 함성을 지르라고 하라.”
비장은 지체 없이 탐지의 명령을 받들어 병사들에게 전달했고 곧 성안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바람에 다음날 공격을 위해 느슨하게 쉬고 있던 성 밑의 남부여군이 놀라서 일제히 막사에서 뛰쳐나와 어수선하게 모여 성위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남부여 태자 여창과 대장군 가량, 하루 전에 병력을 합세시킨 좌평 고슬여가 밖으로 나와 비장에게 물었다.
“저들의 함성소리를 들어보니 신라에서 구원병이 오는 듯 합니다.”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닙니다. 폐하께서 이미 신라의 구원병을 막을 방도를 해두었을 것입니다.”
고슬여의 말에 여창과 가량도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라고 해라.”
다음날, 남부여군은 간밤에 신라군이 지른 함성소리를 되갚아주기나 하겠다는 듯이 거세게 공격을 개시했다. 간밤에는 술에 취해 있던 우덕도 막상 싸움에 임해서는 성벽위로 올라가 병사들을 힘껏 독려했다.
“적을 성위로 올려 보내서는 안 된다! 오늘 하루를 버티면 내일은 원군이 당도할 것이다!”
그 때 남부여 왕과 그를 위시한 4명의 좌평을 비롯한 오천여명의 병사들은 이미 함락시킨 바 있는 함산성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함산성에는 태자 여창이 보낸 비장과 수십 명의 병사들이 도열해 왕을 맞이하고 있었다.
“관산성의 상황은 어떠한가?”
비장은 예를 갖춘 후 힘찬 목소리로 보고했다.
“우리 군이 관산성을 포위하고 있사온데 신라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좌평 서함이 나서서 말했다.
“태자마마에게 너무 급히 성을 치지 말고 성을 포위만 하라 이르소서. 적의 원군을 모두 격퇴한 후 관산성으로 진군하면 적은 스스로 성문을 열고 투항해 올 것입니다.”
왕은 전투로 인해 거의 다 무너진 함산성에 진지를 꾸린 후에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휴식을 가지도록 명했다. 함산성은 남부여군에 관산성을 공격하는 병력의 뒤를 엄호하며 적의 원군을 견제하러 간 좌평 신려의 병력을 받혀 줄 수 있는 요지였다.
“좌평 어르신들, 이리로 와 제 술을 받으시옵소서.”
휴식을 맞이해 고도가 노래를 부르며 좌평들의 흥을 돋우면서 연실 술을 권했다.
-높이 돋은 달이여 / 이를 얼어셔 우러러 보매 / 아으 더려렁셩 / 어기야 이내 몸 둘 데 없어라...
“허허허 거 목청 한 번 좋구나. 허허허.”
전장에서는 술을 멀리했던 왕조차도 고도의 목소리에 분위기가 고조되어 술 몇 잔을 마신 후 얼굴이 붉어져 연실 너털웃음을 날렸다.
“전하 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고도가 술에 취했는지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왕의 앞에 몸을 던지듯이 엎드려서는 울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불경스러운 짓이 아닐 수 없었지만 왕은 물론 좌평들도 그런 고도를 관대히 보아 넘겼다.
“어서 말해 보거라.”
“저 관산성 밑에는 제 부친이 있사옵니다. 지금 당장 관산성으로 달려가 아버지를 뵙고 싶사온데 윤허해주시옵소서.”
왕은 고도의 여려 보이는 태도에 웃음을 지으며 어린애를 달래듯 차분히 말하였다.
“이미 밖은 해가 져 어둡고 먹구름까지 끼어 달빛도 없으니 말을 달려 나가기에도 어렵지 않은가. 오늘은 편히 쉰 후에 내일 아침 일찍 나서는 것이 어떠한가?”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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