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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저널리즘의 새로운 모델을 개척한 <뉴스바인>의 첫 화면.
ⓒ Newsvine

이제 '시민저널리즘'은 세계적으로 무시하기 어려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직업적 전문 저널리즘'의 탄생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미국사회 또한 예외가 아니다. <뉴욕타임즈>에서 일하는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콜럼비아대학에서 '직업 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새뮤얼 프리드먼(Samuel Freedman) 교수는 사회현상으로 부상한 시민저널리즘을 이렇게 평가한다.

"시민저널리즘의 주창자들의 입장에서 본 '시민저널리즘'은 매체의 민주화인 동시에 선출되지 않은 지배권력의 몰락이며, 거대 언론제국에 가하는 통쾌한 일격이다. 시민저널리즘은 단순히 저널리즘의 전문성에 도전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문성의 권위 자체를 무시한다." <퍼블릭 아이> 2006. 3. 31.

시민저널리즘이 소수 엘리트의 전문 영역으로 간주되던 저널리즘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프리드먼의 발언이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프리드먼에게 있어 '시민저널리즘'은 '아마추어 저널리즘'일뿐이며, '완결된 저널리즘'이 아니라 '잘 훈련된 저널리스트'들이 분석하고 기술해야 할 '원재료'를 늘어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저널리즘 영역에서 전문성의 기준이 약화될수록 '기자는 아무나 할 수 있다'는 냉소적인 혹은 순진한 발상은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아마추어 저널리즘에 전문적 저널리즘과 동일한 신뢰를 보내거나, 기자 지망생에게 '기자'라는 호칭을 부여하며 환호하는 것은 원료와 완제품을 혼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프리드먼에게 있어 '시민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이 아니고, '시민기자'는 '기자'가 아닌 셈이다. 저널리즘은 전문적 지식과 기술, 그리고 윤리적 정신으로 무장한 '프로'들에게만 온전히 허용된 공간이며, 이런 조건을 갖춘 사람들만이 '기자'라는 영광된 호칭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시민저널리즘에 대한 프리드먼의 이러한 가혹한 평가에 언짢아할 필요는 없다.

'직업(occupation)' 기자와 '전문직(profession)' 기자

시민저널리즘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는 저널리스트를 '전문성'을 요하는 '정규직'으로 오랫동안 간주해 온 미국사회 특유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모두가 프리드먼의 견해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시민기자'에 대한 저항은 미국사회에서 시민저널리즘의 성공사례를 찾기 어려운 이유 또한 설명해 준다.

미국에서 기자는 어느 정도 존경을 받을지 모르나, 결코 각광 받는 직업은 아니다.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기 때문이다(한국과는 정 반대의 상황으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기자는 한때 각광 받았던, 그러나 대중의 존경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다).

▲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보통의 '직업'으로 시작해 '전문직'으로 변화한 과정을 추적한 마이클 셔드슨의 저서.
ⓒ Basic Books
미국의 미디어학자인 마이클 셔드슨(Michael Schudson)은 저널리스트의 지위를 '직업(occupation)'과 '전문직(profession)'이라는 두 개념으로 설명한다. '직업'이나 '전문직'은 모두 생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직무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 그리고 윤리의식이 따르는 직업은 '전문직'이라는 별도의 범주로 구분한다.

셔드슨에 따르면, 미국에서 저널리스트는 '직업'으로 시작되었지만, 당파 저널리즘의 시대가 저물고 '중립성'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요구가 생겨남에 따라 이에 부합하는 지식과 기술, 그리고 윤리적 정신으로 무장한 '전문직'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결국 미국에서는 '밥벌이의 주요 수단'과 '전문적 식견'이라는 두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기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어려우며, 이들이 수행하는 활동 역시 '저널리즘'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저널리스트'를 둘러싼 지배적 담론인 셈이다. 단지 취미로 보도 활동을 수행하는 사람에 대한 미국내 호칭은 '블로거'다. 이들이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었다고 호칭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 경우 그들의 명칭은 '전문적 블로거'가 된다.

미국사회에서 '저널리스트'를 둘러싼 이러한 담론은 미국 내에서 뿌리를 내려가는 (따라서 본격적으로 저항 받기 시작한) 시민저널리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내에서 가장 주목 받는 '시민저널리즘'의 실험 가운데 하나인 <뉴스바인(Newsvine)>의 독특한 형태와 운영방식은 이러한 사회적 측면을 잘 보여준다.

<뉴스바인>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뉴스의 '생산'보다 '소비'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독자를 뉴스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바꾸어 놓은 것을 시민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본다면, <뉴스바인>의 이런 측면은 분명히 독특하다.

생산보다 소비의 영역에 참여하는 <뉴스바인>

<뉴스바인>의 참여자들 가운데 직접 기사를 쓰는 사람은 1~2%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면을 채우는 뉴스는 모두 어디에서 올까. 통신사인 에이피(AP), 스포츠 채널인 이에스피엔(ESPN), 그리고 대중적 과학저널인 <뉴사이언티스트> 등에서 제공받는 뉴스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다른 매체와 달리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통신사의 뉴스를 편집부 대신 독자들에게 맡겨 취사선택하게 한다.

독자들은 투표를 통해 뉴스를 선택·배치하고, 댓글을 달거나 같은 시간에 동일한 기사를 읽고 있는 다른 독자들과 실시간 대화를 나눈다. 이들이 <뉴스바인>을 이끌어 가는 핵심적 독자층(동시에 편집부)이다. <뉴스바인>은 기존의 매체와 경쟁하거나 더 나아가 그들을 대체할 의사나 없음을 분명히 한다. 공동설립자 가운데 한 명인 캘빈 탱(Calvin Tang)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들이 <이에스피엔>이나 <뉴욕타임즈>, 또는 <워싱턴포스트>의 독점보도를 당해낼 재간이 있나요? 못 합니다.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따라서 <뉴스바인>이 택한 전략은 이들이 '프로'들이 생산한 뉴스의 선택과 소비를 독자들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이는 전문 저널리즘의 권위를 허물지 않으면서도 독자를 수동적인 소비자의 위치로 종속시키지 않게 해 준다.

이 전략의 또 다른 장점은 지역적 밀착 없이도 성공을 거둔, 미국 내에서는 보기 어려운 대안매체의 새로운 모델을 가능케 해 주었다는 점이다. 뉴스가 생명을 얻는 지점이 생산되는 순간이 아니라 독자들의 눈과 귀와 만나는 순간이라는 점을 생각 해 볼 때, 뉴스의 '선택'과 '소비'에 독자의 능동성을 개입시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시민저널리즘 시도로 보인다.

<뉴스바인>의 가입회원이 되면 누구나 외부의 뉴스를 <뉴스바인>으로 끌어올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매체 이외에도 온라인 상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신문이든, 잡지든, 블로그든 간단한 요약글과 함께 <뉴스바인>에 소개할 수 있다. <뉴스바인>은 이것을 '시딩(seeding),' 즉 '씨 뿌리기'로 부른다.

함께 읽고 토론하고 싶은 외부의 뉴스를 소개할 때, 독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태그를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론다 하우벤의 기사를 <뉴스바인>에 옮겨 오고 싶다면, "newsvine.com"이라는 기본주소 다음에 "ronda-hauben," "ohmynews," "citizen-journalism" 등 스스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을 추가하면 된다.

newsvine.com/ronda-hauben
newsvine.com/ohmynews
newsvine.com/citizen-journalism


이 태그방식의 장점은 독자들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소개항목을 고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과, 이후 뉴스를 분류하고 검색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 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독자들이 <뉴스바인>에서 "오마이뉴스"에 대한 뉴스를 검색하고 싶다면 사이트 주소 뒤에 "ohmynews"라고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소개된 글은 다른 뉴스와 마찬가지로 독자들의 투표를 통해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편집의 모든 과정은 편집부의 개입 없이 자동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소수의 독자들이 투표를 통해 편집의 방향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는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즉 독자들의 인기 투표 이외에 '고유방문자 수,' '뉴스 신선도,' '독자가 기사를 읽을 때 할애하는 시간' 등도 동시에 고려해서 기사가 배치되도록 하는 것이다.

▲ "ohmynews"의 결과를 보여주는 <뉴스바인>의 화면. 주소 뒤에 추가되는 태그와 분류항목이 일치하기 때문에 기사 분류와 검색이 쉽다.
ⓒ Newsvine

분산·개방 체계의 지향

인터넷 도입 초기에 논의되던 '넷'의 주요 특성은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과 '탈집중화'였다. 그러나 인터넷 활용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지난 10년간 인터넷은 이와 정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정보는 결코 '자유로이'(여기서 '자유'는 '무료'의 의미도 동시에 담고 있다)흐르지 못했으며, 인터넷을 지배하기 시작한 자본권력은 상업적 이익을 위해 정보를 폐쇄적으로 축적하는 '집중화'의 노력을 계속해 왔다.

많은 상업사이트들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원하는 정보를 찾아 쉽게 이동하도록 돕기보다는 자신들의 사이트로 유도해 '트래픽'을 높이기 바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한국의 포털 사이트들은 이러한 ‘반동적 움직임’의 선두주자로 비판 받아 왔다. '개방적 링크체계'를 핵심정책으로 삼는 <뉴스바인>의 성공은 그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뉴스바인>이 표방하는 목표는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머물고 떠나도록 돕는 가운데 토론을 유도하는 '정보의 교차로'다. 사용자들을 사이트에 붙잡아두는 데 큰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광고수익의 90%를 사용자들에게 분배하는 정책 또한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뉴스바인>에 가입하는 사용자에게는 개별적 공간이 제공된다. 이 곳에는 자신이 쓰거나 소개한 기사들, 그리고 관심 있는 주제와 저자들의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표시된다. 특정 저자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개인 페이지를 방문하면 되고, 이로 인해 발생한 광고 수익은 전적으로 사용자의 몫이 된다.

개인 페이지는 사용자들간의 교류를 돕는 소통의 장으로서도 기능한다. 사용자는 다른 사용자를 친구로 등록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서로 온라인 상태 여부, 송고된 기사, 댓글 등을 확인하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각 사용자는 개인 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참여 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관심분야의 뉴스를 지속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 각 사용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저자들을 '친구'로 등록할 수 있다. 친구목록을 통해 그들이 새로 작성한 기사나 댓글을 확인할 수도 있고, 그들이 온라인 상태인 경우 함께 대화할 수도 있다.
ⓒ Newsvine

'웹 2.0'을 내세우지 않는 진정한 웹 2.0

<뉴스바인>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 2.0>에 의해 "인터넷을 재구성하는 선두기업 25"에 꼽힐 만큼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공식적인 서비스를 시작한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만큼 완전한 성공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기사의 투표 수와 댓글 수로 미루어 보아도 이 신생 매체가 미국사회의 여론에 영향을 미칠 만한 지위에 이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에이피(AP) 뉴스에 대한 과다한 의존 비율이다. 통신사의 뉴스가 중립적일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특히 미국 통신사 에이피를 축으로 하는 <뉴스바인>의 보도는 자국중심주의라는 주류적 시각을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세계뉴스의 경우 이런 경향이 특히 두드러지며, 이는 '다른 시각'을 전하는 대안매체로서의 정체성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뉴스바인>은 시민저널리즘의 한 모델로서 주목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위키(Wiki),' 'RSS,' 'XML,' '웹 2.0' 등 뜻을 알기 어려운 현란한 용어들이 '사용자 제작 내용물(User-created Contents)'의 핵심인 것처럼 포장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특히 그렇다. <뉴스바인>의 대표이자 공동설립자인 마이크 데이비슨(Mike Davidson)은 "<뉴스바인>은 웹 2.0 사이트가 아니라 뉴스사이트"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우리 사이트는 Ajax, RSS, Wikis, 등 요즘 귀 따갑게 들리는 기술용어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만일 사용자들께서 '태그(tag)'나 '피드(feed)' 기능과 같은 사이트의 최신 기술을 활용하고 싶으시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마우스를 움직이고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간단한 지식만 갖춘 분들에게도 <뉴스바인>은 최고의 뉴스사이트입니다. 사용자님의 아버지도 사용하실 수 있는 사이트 말이지요."

<뉴스바인> 인터넷의 표준 기술들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사실 <뉴스바인>은 시작부터 인터넷의 다양한 기술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데이비슨의 발언의 의미는 기술적 측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뉴스생산과 소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끝마다 '유시시(UCC)'를 외치면서도 사용자를 권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거나 이윤추구의 도구로 삼는 사이트들이 귀 기울여 들을 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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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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