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자전거를 타고 백두대간 랠리에 처음 다녀왔습니다. 우리가 자전거를 탄 지, 이제 겨우 한 해쯤 되었어요. 남편 무릎수술을 하고 다리운동 때문에 자전거를 탔는데 참 재미있어요. 날이 갈수록 늪(?)처럼 빠져드는 재미에, 이젠 자전거로 어디든지 못 갈 곳이 없는 것처럼 여겨져요. 또 자전거로 마을마다 다니며 보고 들은 얘깃거리를 <오마이뉴스>에 연재기사까지 썼으니 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 일인가요?
이젠 웬만큼 탄다! 하는 사람이 간다는 랠리까지 갈 생각을 했으니, 돌이켜보면 참 겁도 없다 싶어요. 몇 주 앞서 백두대간 10차 랠리에 가겠다고 신청을 하고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았지만 걱정도 많았지요. 아직 자전거 타는 솜씨도 보잘 것 없는데다 남한테 짐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랬어요.
하지만, 하루에 150km쯤은 거뜬히 타고 다니는 우리를 지켜본 동호회 식구들이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격려하는 바람에 그 말만 믿고 가기로 했지요. 게다가 이번 구간은 그다지 어려운 곳이 아니라면서….어쨌거나 마음먹은 대로 하기로 하고, 24일 새벽 1시에 함께 가기로 한 금오바이크(http://www.kumohbike.com) 식구들이 모인 곳에 나갔어요. 우리 부부까지 모두 일곱 사람이 왔는데, 그 가운데 넷은 백두대간 랠리에 처음 가는 거였어요.
랠리를 앞두고 비가 내리니, 아! 서글프다
며칠 앞서부터 일기예보에서는 장마 때문에 이날 비가 많이 온다고 잔뜩 겁을 줬어요. 아니나 다를까, 떠날 때부터 비가 오는데 이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탄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더구나 미리 정해 놓은 일이라 비가와도 그대로 치른다고 하니, 인제 와서 안 갈 수도 없어 답답했답니다.
어쨌든 차에 자전거 여섯 대를 나눠 싣고 새벽 3시쯤에 떠났어요. 지난 9차 랠리 때 마지막 코스였던 충북 괴산군 청천면으로 가야 하는데, 가는 내내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이 새벽에 잠 한숨 못 자고 자전거 타러 그 먼 길을 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몹시 서글펐어요. 제발 랠리를 시작할 때엔 비가 그치기를 기도하면서….
새벽 4시쯤 선산 휴게소에 들러 이른 아침을 먹었어요. 괴산에 닿으면 마땅히 밥 먹을 곳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날이 밝으면서 차창 밖으로 둘레 경치가 차츰 보여요. 산과 들이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에 더욱 또렷하게 보이고, 산자락마다 안개에 싸여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음 같아선 랠리를 팽개치고 구석구석 다니며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새벽 5시 30분, 이윽고 충북 괴산이라는 알림판이 보이고 모이기로 한 송면초등학교 앞에 닿았어요.
다행히 방금까지 마구 퍼붓던 소나기가 그치고 빗발이 가늘어졌어요. 차에서 내리고 보니, 모이기로 한 시간은 다 되었는데 다른 동호회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요. 아무래도 비 때문에 많이 늦어지는 듯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비가 이렇게 오는데 제시간에 맞춰 오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우리는 자전거를 차에서 내려 하나씩 손을 보고 슬슬 몸을 풀었지요.
함께 간 식구 가운데 선배님(장인표씨) 한 분이 랠리를 마칠 때까지 지원을 한다고 해서 어지간한 짐은 차에 두고 되도록 가볍게 꾸려서 등에 멨어요. 이런 날씨엔 몸이 차갑지 않도록 해야 해요. 그래서 비옷까지 입고 조금은 우스꽝스런 모습이지만 저마다 들떠 있는 듯해요. 몸을 푸는 동안 하나 둘 다른 동호회 식구가 모여들어요.
오로지 자전거로 백두대간을 탄다는 까닭 하나에 여러 곳에서 모여든 사람을 보면서 매우 놀라웠답니다. 이 궂은 날씨에…. 서울·평택·울산·포항·경주·군산·상주…, 이런 곳에서 온 사람에 견주면 그나마 우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어요.
드디어 랠리를 시작하다
이번 백두대간 랠리를 이끌고 투어대장을 맡은 포항 '산으로 가는 두 바퀴(http://cafe.daum.net/5000bike)' 동호회, 이준권(닉네임 알똥)씨가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여러 동호회를 소개했어요. 나는 속으로 여자들이 많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여자 회원도 눈에 많이 띄어요. 오늘 자전거 탈 길을 자세하게 듣고 단체사진을 찍었답니다. 한데 모여서 보니, 거의 백 사람쯤 되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려고 예까지 모였다니 거듭 놀랐어요.투어대장의 신호에 맞춰 자전거에 오르니, 처음 여기 닿았을 때 서글프고 걱정했던 마음은 어느새 달아나고 끝까지 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발판을 밟았어요. 남편도, 나도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서로 곁에서 격려하면서 천천히 가기로 했지요.
"자, 이제 우리도 가보자!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자. 무슨 대회를 하는 게 아니고 끝까지 가는 게 더 중요하니까 천천히 가자고.""그럽시다. 어쨌거나 힘닿는 데까지 해보자고요.""가다가 영 힘들면 알짱님 차에 타면 되니까, 꼭 끝까지 안 가도 돼. 하하.""알았어요. 아자! 아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왕 예까지 왔으니 끝까지 가 볼 생각이었어요. 꼴찌로 가더라도 꼭 끝까지 갈 수 있기를 바랐어요. 100명쯤 되는 사람이 줄지어 나란히 자전거 물결을 이루며 가는데, 그 풍경이 얼마나 멋졌나 몰라요. 게다가 안개 낀 산과 들이 한데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더했어요. 얼마쯤 달렸을까? 첫 번째 고갯길이 보이네요. 여긴 '널티재' 고개인데요. 바로 낙동강과 한강의 물 흐름이 나뉘는 곳이래요. 여기서 잠깐 쉬었다가 왼쪽 청화산 임도로 올라갔답니다.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 벌써 비와 땀이 범벅이 되었어요.
구미에서도 산 속 임도는 여러 번 다녀봤지만 언제나 조심스러워요. 오르막 내리막이 번갈아 있고, 자갈길, 흙길이 많아서 자전거를 잘 조절하면서 타야 해요. 한참 동안 오르막길을 밟으며 올라서 꼭대기에 닿으니, 저 아래로 보이는 울창한 숲과 우리가 힘겹게 올라왔던 길이 구불구불 보여요. 이 멋진 풍경에 놀라고 신이 나서 소리를 쳤어요.
"우와! 진짜 좋다.""멋지다. 풍경이 참 좋네.""그래. 이 맛이야! 이래서 산에 오는 거라고!"
나 말고도 여기저기서 들뜬 목소리가 들려요.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올 때는 "도대체 왜 이 고생을 하면서 올라가야 하는 거야?" 하고 투덜대다가도 꼭대기에 올라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신이 나고 즐겁기만 한 가 봐요. 아마 이래서 그 힘든 일을 마다 않고 산에 올라오나 봐요.
첫 번째 임도에서 그만 꽈당!
자! 이제 내리막길이다. 애써서 올라온 꼭대기에 서면 이제는 반드시 내리막길을 내려가야 해요. 그런데 어쩌면 오르막보다도 더 조심해야 하는 게 내리막이에요. 올라올 때 힘든 만큼 내리막길이 가파르니까요.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무게 중심을 옮긴 뒤 내려갔어요. 자전거를 오랫동안 탄 사람은 우리 곁으로 쌩쌩 잘만 내려가던데 우리는 매우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려갔지요. 돌덩이가 없는 고른 길을 골라서 가느라고 땅과 앞을 번갈아 보며 한참 동안 내려가는데, 어이쿠! 저만치 앞에서 웬 사람이 보여요. 길 안내를 해주던 상주팀 식구인 듯한데, 그 자리가 바로 왼쪽으로 확 꺾어지는 모퉁이 길이었어요.
나는 너무 당황해서 빠르기를 더 줄이고 왼쪽으로 손잡이를 틀었는데, 그만….
"꽈당!"
이럴 수가! 왼쪽으로 돌면서 브레이크를 너무 세게 잡았나 봐요.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니 온몸이 아파요. 그렇다고 어디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고 여기저기 살갗이 까지고 부어오르는 느낌이 들어요."괜찮으세요? 다친 데는 없나요?" 하고 물어요. '애고 이거 첫 임도부터 넘어지고 이게 무슨 망신이야.' 아픈 건 둘째 문제고 넘어진 게 창피하기만 했어요. 얼른 자전거를 집어들고 또다시 타고 내려갔어요. 한 번 크게 넘어지고 나니 내리막길이 더욱 무서웠어요.
얼마 앞서도 내리막길에 가다가 크게 넘어져서 갈비뼈에 금이 가는 바람에 무척 고생을 했는데, 또 이렇게 다쳤으니 덜컥 겁도 났어요.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드디어 내리막길을 벗어나고 한없이 밟고 또 밟아요. 다리는 차츰 더 부어오르는 듯하고 쿵쿵거릴 때마다 욱신거려요.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고…. 청화산 임도와 비슷한 곳을 몇 번이나 오르고 내렸을까, 어느새 점심을 먹기로 한 밥집에 닿았어요.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얼른 다친 곳을 살펴보니, 다리가 퉁퉁 부었어요. 손가락으로 눌러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탱탱해요. 또 자전거를 탈 때는 그다지 몰랐는데, 내려서 걸으려니까 절룩거리면서 몹시 아파요.
이 몸으로 끝까지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남편은 이런 나를 걱정하며 오후에는 지원차에 타고 오래요. 한참 동안 망설였죠. 예까지 왔는데 여기서 그만두자니 아깝고 속상해요. 걸음은 제대로 못 걸어도 뼈가 다친 것 아닌 듯하니 끝까지 가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백학산 임도인데 두 시간짜리래요. 이것만 잘 이겨내면 마지막 닿을 곳인 추풍령역까지는 찻길로 갈 수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거든요.아무튼,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오후에도 함께 따라갔어요. 이런 나를 보고 남편도 걱정은 했지만 속으로는 대견스러워하는 듯해요.
백학산 임도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될 만큼 꾸준하게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라가요. 아직도 비는 계속 내리고 비 때문에 물이 불어난 골짜기를 지날 때면 온몸이 흙탕물에 젖었어요. 그래도 모두 즐겁고 신나게 보였어요. 나이가 많아 뵈는 어떤 아저씨는, '청춘아∼ 내 청춘∼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힘겨운 오르막을 올라가다가 모두 한바탕 웃기도 했어요. 도무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아예 끝 모르고 오르막만 가는 게 아닌가 할 만큼 꾸준한 길 때문에 몹시 지쳤어요.
게다가 갑자기 길이 매우 가파른 곳에 닿을 때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힘겨워해요. 저마다 "아자!" "파이팅!" 하면서 소리를 치며 스스로 힘을 북돋우기도 했어요. 나도 아픈 다리를 끌고 가자니 더욱 힘들었어요. 그래도 온 정신을 자전거에 쏟으며 타다 보니, 아픈 것도 잊은 채 갈 때도 여러 번 있었답니다.
드디어 끝까지 가다
이렇게 힘들여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가며 싸운 끝에 10차 백두대간 랠리 마지막 목적지인 추풍령역에 닿았어요. 오후 5시, 오늘 일정이 모두 끝난 거예요.사람마다 얼굴을 보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몰라요. 흙탕물이 튀어 얼굴이 지저분하고 온몸이 비에 젖어서 물에 빠진 생쥐 같았어요.
그래도 저마다 아무 탈 없이 랠리를 잘 마친 것 때문에 무척 즐거워하는 낯빛이에요.우리도 금오바이크 식구들과 함께 서로 축하하며 기뻐했지요. 끝까지 지원을 하며 애썼던 장인표 선배님은 랠리에 처음 온 것 치고는 아주 잘했다고 하면서 칭찬을 해주었어요. 비록 몸은 힘들고, 또 다치기도 했지만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스스로 힘든 일을 이겨내며 해냈다는 생각에 무척 즐거웠답니다.이렇게 해서 처음 가본 백두대간 랠리를 기분 좋게 마치고 다시 구미로 돌아왔어요. 다음 달에 열릴 11차 백두대간 랠리를 약속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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