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 비영리단체에 대한 자료를 모으는 기관인 NCCS(National Center for Charitable Statistics)에 의하면 미국의 비영리단체나 기관의 수는 2006년 현재 약 150만개에 달한다. 더구나 이 통계는 작은 커뮤니티 그룹들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이 중에는 각종 기금과 재단들도 적지 않다.
2001년 미국에 왔을 때 찾아보았던 단체들이나 최근 방문했던 몇몇 단체들 모두 필요한 재정의 많은 부분을 각종 기금과 재단들로부터 받고 있었다. 이같은 재단의 증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하는데, 민간재단의 숫자만 해도 10만개가 넘는다. 이 민간재단들의 대부분은 독립적인 가족 재단들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민간재단들이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미국 건국 초의 피터 쿠퍼 같은 부자들이 자신의 재산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나, 자신의 재산으로 재단을 만들어 사회활동에 나서는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같은 사람들이 영향을 끼친 것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우리의 경우 아직까지 이런 개인이나 가족재단은 많지 않다.
여기에는 미국과는 다른 세금제도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부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세금을 덜 내도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 정부로 들어가서 그 중 일부가 사회복지에 쓰이게 된다면 이들은 자신의 기부금 전부가 정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쓰이길 원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여하튼 독립적인 재단들의 존재는 비영리단체나 기관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 준다. 미국의 비영리단체나 기관의 수가 많은 것은 이처럼 재정적인 뒷받침이 가능한 재단들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두 딸애게 "유산은 한푼도 없다"고 말하는 부모
이런 수많은 민간 가족재단을 만드는 사람들 중에는 한인들도 있는데, '아름다운재단' 강영주 이사가 그런 분 중의 한 분을 만나러 간다기에 따라 나섰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서 찾아 간 곳은 한 식품회사. Advanced Food System의 조용근 사장을 만났다. 그가 만든 재단도 미국에 많은 민간 가족재단이다.
99년에 시작해서 2000년에 만들었다. 2000년 이후에도 미국의 민간 가족재단은 계속해서 성장 중이고 특히 2000년 이후엔 그 성장 폭이 더 컸다고 한다. 지금 현재의 지원은 주로 장학 사업이 중심이란다.
그와 부인은 코넬대 화학과 동문. 조용근 사장은 자신에게 딸이 셋 있다고 말한다. 두 딸은 장성하여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고 또 하나의 딸이 바로 자신의 회사다. 25년 전 부인과 둘이서 정말 아무 것도 없이 지하방에서 시작한 지금의 회사가 직원 50명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자식처럼 정성을 다했다는 이야기다.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식품에 상품으로서의 문제가 생길 때,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회사의 생산품이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재단을 만들었을까? 재단이 만들어진 것은 20여년의 노력 끝에 회사가 이익이 남기 시작하는 등 일정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러나 그와 부인은 돈을 많이 벌어서 이 일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직 제대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 못할 때부터 아이들한테는 '유산은 한 푼도 없다'고 했단다. 어릴 때부터 유산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온 아이들은 이제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이들 부부에게 자신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자신들이 벌어들일 수 있게 해 준 사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다닐 때 자신들은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는데, 그게 오늘 돈을 벌게 해 준 지식을 배울 수 있게 해 준 원천중의 하나라는 생각에 벌어 들인 돈을 다시 장학금으로 내놓고 있다.
어디 돈 뿐인가? 코넬에서 배웠던 지식 역시 자신들이 돈을 벌게 해 준 원천. 그래서 다시 그 때 배운 지식을 기초로 회사에서 다시 연구 개발로 풍부해 진 지식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5년 전에 코넬대에 Joh Professor ship을 약속했다. 자신들이 현장에서 보다 풍부하게 획득한 지식을 어떤 형태로든 다시 학교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신들의 특수한 지식이 아니라 보편적 지식으로 공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회사의 에너지의 많은 부분은 태양열에 의한 것이다. 회사 옥상에 집전판을 만들었다. 물론 미국 내에서 대안에너지에 대한 지원을 해 주고 있는 단 두 개의 주 중의 하나인 뉴저지주(다른 한군데는 캘리포니아)에 회사가 있다는 것도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그가 태양열을 선택한 것은 에너지도 제대로 나누고, 쓸데없는 낭비를 막아야 자신을 살게 해준 지구에 자신의 몫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공장 내부도 절전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나눔도 배우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의 인생계획은 온통 나누는 일과 관련 있다. 돈을 벌기도 전에 아이들한테는 유산을 넘기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 하고, 자신들이 갖게 되는 부와 지식을 어떤 방식으로 나눌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를 실제 계획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그의 인생계획이다. 5년 전에 약속한 Joh professor ship도 돈이 있어서 약속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나누기 위해 돈을 벌고 있다. 자신들이 스스로 약속한 나눔을 위해 그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며 웃는다.
지금 자신들이 세운 재단도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재단의 본격적인 활동이야 말로 이들의 은퇴계획이다. 은퇴하고 난 이후 자신들의 삶의 계획을 세우고 그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는 상근자도 없고 특별한 사무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이들 부부가 회사 일 짬짬이 재단 일도 하는 셈이다. 은퇴하면 회사를 매각하고 그렇게 생긴 돈으로 재단을 본격적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재단에 대한 공부도 할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은 민간 가족재단이지만 자신들의 은퇴 이후에는 본격적인 자선재단으로 발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돈을 벌기 전부터 자신들의 삶을 나눔을 위한 삶으로 생각하고 돈을 벌면서 은퇴 이후의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 셈이다.
나눔도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또 한번 하게 된다. 이들 부부의 부모들 역시 평생을 사회봉사와 관련한 영역에서 살았고, 부부 모두가 그런 부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영향 탓인지 이들 부부의 큰딸도 비영리단체에 근무하고 있다.
수많은 미국의 민간 가족재단들 사이에 이처럼 성공한 기업가인 한인들도 나름대로 몫을 하려고 있다. 그 사람이 한인이든 멕시칸이든, 엥글로 색슨이든 미국이란 사회에서 벌어서 나누어야 한다는 철학이 넓게 자리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조 사장도 말하지만 빌 게이츠가 상속세 폐지를 반대한 것은 옳은 일이라는 것이다. 세금을 덜 받으면 그만큼 복지 혜택은 축소되는 것이고 그만큼 사회적 비용을 들이게 된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로 보면 이득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미 떠나 온 지 오래되었지만 한국 사회도 이런 흐름이 확산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지금 미국으로 유학 오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변화를 보게 되는 데 최근의 유학생들의 개방적인 태도나 적극성을 보면 그만큼 사회가 발전했음을 느낀다고 한다. 확실히 자신들이 떠났던 시절의 한국과는 달라졌다며 한국사회의 변화에 놀라워하면서도, 지금 한국 사회에 정치적 리더들은 많은지 모르지만 정작 필요한 '사회적' 리더들은 적은 것이 문제로 보인단다.
한국 사회가 급속히 발전한 것에 맞추어 그만한 사회적 의식도 함께 성장해 가는 사회가 되려면 어느 영역이든 그만한 사회적 리더들이 많아야 하지 않겠냐며 사회적 리더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사회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소신이 뚜렷한 기업인들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연말에 내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눔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 뚜렷한 기업인이 늘어나는 것도 한국 사회의 사회적 의식의 성장의 한 지표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