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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나이테처럼 세월의 흔적은 쌓여만 가는데 나의 내면은 너무 텅 비어서 부족함을 느끼던 참에 다양한 시대변화에 맞추어 요즘은 날마다 버스로 왕복 2시간 거리를 오가며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고 있다.
언제나처럼 그 날도 길을 나섰다가 오후에 집에 들어오는데 뭔가 휑하면서 텅빈 것 같은 허점함이 느껴져서 양 옆 화단을 보니 세상에 이럴수가!
심장이 벌렁벌렁해지면서 믿기지 않는 현실앞에 내눈을 의심할 정도로 황당하고 무자비한 모양새를 한 우리집 화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더 설명하면 엄청난 충격과 두려움으로 나를 보고 울부짖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원래 우리집은 현관을 중심으로 집 앞으로 화단이 있고 집의 옆쪽과 뒷쪽은 잔디밭으로 주기적으로 제초를 하게 되어 있는 구조이다. 주기적으로 제초를 해야 하는 것이 조금 번거로웠던지 며칠전 아들 직장동료가 이번에 자기집을 제초할 때 우리집도 같이 해줄테니 다음번에는 순서를 바꾸어해서 번거로움을 줄여보자고 했다길래 그런가 했더니 아뿔사!! 제초해주기로 한 사람이 화단인 줄 모르고 모조리 제초를 해버린 것이다.
순간 며칠전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그래도 그렇지 제초가 아니고 무엇이 쳐들어와서 악풀이를 하고 간 것처럼 화단이 베어져 있는게 아닌가? 제초구역과 화단을 구별못해도 그렇지 꽃은 눈에 보였을 게 아닌가?
도대체 나이가 몇살쯤 되었길래 이렇게 무지하단 말인가? 온갖 생각에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치밀었지만 애써 평정심을 찾으려고 내 마음을 다스리는데 언젠가 봤던 법정스님의 글이 생각이 났다. 스님께서 가끔 오가시는 길가에 붓꽃이 소담스럽게 피어있어서 예쁘게 보셨는데 어느날 풀과 함께 무자비하게 삭뚝 잘려있어서 꽃도 구별 못하는 그 무지함에 마음 불편하셨다고, 알고 보니 아랫마을 사람의 소행이였다는 마음을 표현하셨던 귀절이 생각났다.
지난번 오마이뉴스에 예쁜 모습을 선보였던 연산홍은 그때 모습을 마지막으로 내년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고 어쩌다 살아남은 둥글레와 무궁화는 제초기가 스친 자국에 줄기가 벗겨지고 부러졌다. 봄 지나 지금까지 기다렸다가 이제는 내 차례라고 꽃대를 길게 뽑아 올려서 몽우리를 맺었던 원추리는 가족과 꽃망울을 잃고 목이 잘린 채로 흉하게 하나만 살아남았고, 돌단풍, 옥잠화, 라일락, 해바라기, 창포, 초롱꽃 등등.
올 가을 바람불때 허전할 내 마음을 꽉 채워주리라 기대했던 그 많던 코스모스들 하며, 한번은 가운데 듬성듬성 잡초가 자랐길래 뽑아주려고 무심코 발을 들었다가 발 디딜틈이 없어 차마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앙증스러운 꼬맹이 야생초가 그리워진다.
사실 요즘같이 각자 바쁜 현실에 가족이라고 어디 충분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던가? 바쁜 가족 대신 수시로 눈 맞추며 얘기하고 꽃피우면 수고했다고 쓰다듬고 칭찬해주고 우유팩 씻은 물, 쌀 씻은 물 등 좋다는 것 다 챙겨주며 키운 정은 어떡하라고!!모르면 용감하더더니!
이젠 그 많던 꽃들은 어딜가고 화단에는 키가 큰 무궁화 한 그루, 올해 첫 열매를 맺은 감나무 한 그루, 사철나무 한 그루, 2년생 매화 한 그루만이 살아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아끼는 매화마져 베졌으면 나는 며칠 몸살을 앓았을 것이다.
다음날 사건의 주인공인 그 사람에게 속내는 감추고 어제 제초 고마웠다고 말했더니 대답은 제초해야 할 곳을 잘 몰라서 깔끔하게 했는데, 잘 됐지요? 하고 반문했다니, 서른 넘은 사람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살면서 별일 다 겪는다지만 저는 오랜동안 가꿔 온 화단이 싹뚝 잘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참 오늘 아침 마트 가는 길에 우연히 원추리 꽃대가 잘린 줄기에 잠자리가 앉아서 쉬고 있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아직도 마음이 짠하게 아프다. 며칠 관찰해보니 그간 자주 오던 새들마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