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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민 교수의 연구실에는 전공 서적만큼이나 음악 CD, DVD가 많다.
ⓒ 안소민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음악 소리가 연구실 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제목은 언뜻 떠오르지 않지만 엔야(아일랜드 가수)의 것이 분명하다. 연구실 벽면 가득 채우고 있는 영문 전공서적과 음악 시디, 오디오, 그리고 전통 한옥 문살로 멋스럽게 꾸며진 공간배치가 어울리지 않은 듯하면서도 묘하게 잘 어울린다.

이 곳은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이종민 교수 연구실이기도 하면서 그가 보내는 '음악편지'의 산실이기도 하다. 이종민 교수를 지난 4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종민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전문.

- '음악편지'를 보내는 교수님이라서 오늘도 아마 음악을 듣고 계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음악을 듣고 계시는군요.
"음악이야 제 생활의 한 부분이지요."

- 주로 어떤 음악을 들으시나요? 어떤 장르를 좋아하세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듣습니다(웃음). 요즘은 한국음악과 월드뮤직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음악의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월드뮤직에 많은 관심이 가게 됩니다."

- 우문이지만 음악은 언제부터 즐겨 들으셨나요? 음악에 관련된 즐거운 추억이 있다면요?
"사실 고등학교 때는 음악을 좀 의식적으로 들으려 했어요. 대개의 취미생활이 그렇듯 처음에는 약간의 수련과 학습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클래식 위주로 열심히 들었죠. 그 때는 오디오가 귀할 때라 대학입학금보다 더 비쌌거든요. 대학교 입학하고 처음 받은 장학금으로 독수리표 전축을 덜컥 구입했죠. 잘못 구입한 바람에 얼마 안 가서 망가졌지만.

그리고 그 후로 1년간 가정교사를 했는데 그 집이 꽤 부자였던지 전축이며 레코드판이 많이 있었죠. 그 때 팝송을 즐겨들었던 기억도 나고. 그 후에는 누나 집에서 통학을 했는데 누나가 한창 신혼이었거든요. 그런데 전축이 신혼방에 있는 거예요, 신혼방에 떡 허니 자리하고 앉아서 음악을 들었죠. 눈치를 주든지 말든지. 그렇게 음악을 치열하게 들었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 정말 치열한 음악생활을 하셨네요(웃음).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음악 듣기가 참 편해졌죠. 너무 흔해서 넘쳐나기도 하고."

2000년 우연히 보냈던 한통의 음악편지

▲ 오늘도 음악편지를 띄우는 이종민 교수
ⓒ 안소민
- '음악편지'를 쓰신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사실 누군가에게 꾸준히 편지를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더구나 음악편지 작업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어떤 연유로 음악편지를 보내게 되셨나요?
"그 때가 2000년 6월이었어요. 지인에게 음악과 함께 메일을 보냈던 것이 시작이었죠. 그런데 그 메일을 받은 지인이 너무 좋다 그러면서 여러 사람에게 음악편지를 보내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해왔어요. 생각해보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해서 제 메일주소록에 등록되어있던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죠."

- 그러니까 그 '음악편지'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그냥 우리가 흔히 보내는 편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요. 거기에 제가 고른 음악을 함께 첨부하는 것이죠. 그리고 음악설명도 곁들여서. 음악설명이래 봤자 제가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니까 전문적인 내용은 아니고 기본적인 설명과 제 감상을 적은 것입니다."

- 지금껏 횟수로 8년째 보내고 계십니다. 그동안 재밌는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뒷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지금이야 MP3가 있어서 주고받기가 편하지만 8년 전만 해도 음악파일을 다운받거나 열어보는 게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용량도 많이 차지했죠. 그래서 처음에 메일 보냈던 분들 중에는 자기 컴퓨터 용량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면서 제발 보내지 말라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흐뭇해하고 반가워했습니다."

-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요?
"음악을 잘 들었다고 답장을 보내주신 분들도 있었구요, 고맙다고 컴퓨터를 사주신 교수님도 있었죠. 어떤 의사선생님은 푸짐한 회로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마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이 편지쓰기를 통해 북한어린이를 도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2002년 동지제안'으로 시작된 북한 기아돕기운동

- 북한어린이 돕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그러니까 대통령선거가 끝났던 2002년 겨울이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새날, 새 시대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었던 무렵이지요. 그날 연구실로 출근한 저는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슨 일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낸 것이 굶주리고 있는 북한어린이 돕기였습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도울까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음악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모금활동을 통해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더군요. 그래서 음악편지 수신자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날이 마침 동짓날이었거든요. 그래서 제 스스로 편지제목을 '2002년 동지제안'이라 붙이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물론 음악도 함께요."

때 맞추어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니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적절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또한 '동지'에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同志)'이라는 의미도 있어 이런 운동의 이름으로는 썩 어울린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루에 100원, 한 달에 3000원. 그렇게 큰 액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100명만 모아도 30만원이 됩니다. 이 돈이면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인 50명의 한 달분 양식을 구할 수 있습니다. 결코 간단한 금액이 아닌 것입니다. - '2002년 동지제안' 중에서

▲ 음악편지를 통해 모은성금은 2004년과 2006년, 2007년 각각 천만원씩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측에 전달됐다. 우측은 '남북어린이어깨동무' 권근술 이사장.
ⓒ 이종민
▲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어린이들. 둘은 쌍둥이인데 여자아이가 영양실조에 걸려있다.
ⓒ 이종민
- 동짓날 보냈다고 해서 동지제안이군요. 같은 길을 걷는 사람도 동지라고도 하잖아요.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말이네요.
"그런 셈이죠. 동지는 우리 문화에서는 작은 설날이라고도 하며 또 거듭남, 새출발,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죠."

- 모금활동은 순조로웠나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전북지역뿐 아니라 전국 각처에서 음악편지를 받으시는 분들이 모금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처음에는 후원금이 모이는 데로 한 달에 한 번씩 30만~40만원씩 한 사회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러다 '남북어린이어깨동무'라는 한 단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활동사항과 취지 등 여러 자료들을 검토해본 결과 제가 애초에 가지고 있던 취지에 딱 맞아떨어지지 뭡니까. 그래서 2004년 12월 그동안 모았던 후원금 1000만원을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측에 보냈습니다. 그 후원금은 원산에 있던 두유공장의 첫 번째 원료를 구입하는데 쓰이게 되었지요."

- 와~ 동지제안이 빛을 발한 순간이네요. 그 후의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계속 음악편지를 통해 모금활동을 계속했지요. 그러다 2006년에 6·15선언 기념으로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1월경까지 모은 돈이 대략 700만원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6월까지 1000만원을 모을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다시 편지를 썼습니다."

- 음악편지 동지들에게요?
"아뇨. 이번에는 전북대 교직원 게시판에 편지를 썼어요. 제목은 '저에게 점심 한 끼 사주시겠습니까'였습니다.

- (웃음) 점심이라구요?
"저를 만나서 점심을 사주려면 시간 맞춰야지, 약속잡아야지 번거롭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점심 사줄 그 돈을 제 통장으로 넣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돈으로 북한 어린이를 돕겠다는 것이죠. 3000원이면 북한 어린이 두 명에게 한 달간 두유를 후원할 수 있는 금액이거든요. 그렇게 해서 당초 계획했던 대로 6월에 맞춰 1000만원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돈으로는 평양에 있는 두유공장 첫 원료를 구입하는 데 썼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두번 다, 첫 원료를 구입하는 데 썼군요."

- 반응은 괜찮았나요?
"제가 하는 일(북한기아돕기)이 이미 교내에 다 알려져 있어서 많은 분들이 선뜻 응해주셨습니다."

"누구나에게 있는 선한 마음줄기, 잘 모았을 뿐"

-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교수님의 어떠한 것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했을까요?
"대단한 것은 제가 아니라 십시일반으로 후원을 해준 수많은 분들이지요. 저는 그것을 모아서 보낸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사실 사람들 마음속엔 크거나 작게 이웃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다 있거든요. 그런데 그 방법을 잘 모릅니다. 괜히 오해를 살까 노파심도 들구요. 전 그 여러 사람들의 그 선한 마음줄기를 잘 모아서 길을 터준 것뿐입니다. 매월 4일에는 한 달동안 모인 후원금과 내역을 공개하는 메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당연한 알 권리니까요."

- 음악편지 외에도 전주문화를 알리는 데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주는 무형문화유산 그 자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판소리, 한지, 음식, 서예, 한방 등 전통문화유산의 보고입니다. 여기에 조선왕조의 발상지이기도 하면서 후백제 37년간의 수도이기도 했던 역사적인 곳입니다. 전주의 이러한 특성을 잘 살려서 외부에 알리는 것이 저의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 한옥마을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라는 문구도 교수님께서 만드신 것이라고 하던데요?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전주를 방문했을 때 권양숙 여사가 '한국적인 도시네요'라고 했던 말에 착안해서 지었던 것입니다. 영어문구 'Feel Korea in JeonJu'도 제가 만들었습니다. 제 전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지요.(웃음)"

- 좀 전에 한국음악에 관심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한국음악의 발전에 월드뮤직의 접목을 생각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무슨 뜻인지요?
"제 딸아이가 국악을 하는데 전 다른 장르의 음악도 많이 들을 것을 권합니다. 제 생각엔 한국음악이 발전하려면 월드뮤직에서 활로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즉 다른 세계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수용해야 한국음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봐요.

요즘 퓨전 국악들 많이 하는데 무조건 국악에 신시사이저나 서양악기를 버무린다고 퓨전국악이 되지는 않거든요. 우선 국악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고유 특성을 살리면서 혼합해야 진정한 퓨전이 되지요. 김수철이나 김영동 같은 뮤지션들이 우리 음악의 나아갈 길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 무척 바쁘실 텐데요. 강의 준비까지 하시려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어요.
"사실 그 어떤 일보다 강의 준비가 제일 우선입니다. 당연하지요. 본업이니까요. 학생들 가르치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즐겁고 보람 있습니다."

- 동지 모금은 지금도 유효하죠?
"물론입니다. 언제든지 제 홈페이지에 들어오셔서 음악 메일을 신청하시면 됩니다. 그렇다고 강요는 아닙니다. 그저 음악만 감상하고 싶은 분도 오셔서 신청하실 수 있으니까요."

<음악, 화살처럼 꽂히다>

이종민 교수가 2000년 6월부터 보내기 시작한 음악편지 중 32편을 골라서 모은 것. '테오도라키스에서 김영동까지'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함께 이 교수가 바라보는 세상살이, 사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마치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단짝 친구가 보내준 편지와 같이 친밀한 마음이 절로 우러난다. 더불어 이 교수가 들려주는 음악이야기도 즐겁다.

국악, 클래식, 가요, 뉴에이지, 가곡, 팝송, 영화음악 등 실로 다양한 음악이야기는 책 읽는 즐거움을 한껏 높여준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에게도 꼭 한번 추천해주고 싶은 책. 현재 이 교수는 두 번째 음악편지 모음집을 준비 중이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음악과 어떠한 사연들로 독자들 곁에서 나직나직 읊조릴지 자못 기대된다.

지은이 이종민/서해문집/9500원 / 안소민

덧붙이는 글 | 1. 이종민 교수의 음악편지는 음악저작권법과 관련하여 음악메일에 더 이상 음악을 첨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 이 교수의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클릭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 이종민 교수 홈페이지 바로가기

2. 이 교수의 동지제안에 뜻을 함께하고 싶은 분은 언제든지 동참할 수 있다. 1구좌당 매월 3000원이다.


태그:#이종민, #음악편지, #전북대학교, #남북어린이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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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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