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광부(廣夫)와 바다 종군작가의 야간 현장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동해안 수평선에 집어등이 점화하는 야밤은 멀리서 보면 참 아름답다. 더구나 만월이 중천(中天)에 뜬 하늘 아래 멸치 거룻배의 후리 소리를 먼 자취에서 듣는, 멸치 어방 축제는 자칫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허나 세계의 곤곤은 수틀의 이면이나 뫼비우스의 띠 속 같다. 태양보다 밝은 집어등은, 서로의 조명에 알록달록 색전구마냥 명멸한다. 밤바다의 파도소리가 들리는 해안을 따라 항구에 도착하면서 점점 확대되는 멸치를 터는 야간 어로 작업 중의 어부들의 얼굴이며 비닐 작업복과 쿡 눌러쓴 모자와 장갑을 끼고 그물을 터는 광경을 목격하는 순간, 멸치의 살점이 덕지덕지 징그러운 이물처럼 달라붙은 것에 어떤 싸아한 전율감을 느끼기도 전, 바다의 종군작가는, 이 전투적인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소리를 좋아하는 멸치 떼들
멸치 떼들은 소리를 좋아하고, 멸치 뿐이 아니라, 바다의 어군들은 대개 고래처럼 소리를 좋아한다. 소리로 서로를 부르고 심해에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수만리 멀어져 있어도, 이 소리에 의해 숱한 어군이 이동한다고 한다. 이는 과학으로 도저히 풀수 없는 신비다.
멸치들이 소리를 좋아하는 것을 잘 아는 어부들은 소리로 멸치를 잡는데, 뱃전에 탕탕 함마를 두드리는 함마 소리로 멸치 떼를 몰고, 함마 소리에 멸치 떼가 그물에 걸리면, 그 어떤 그물보다 미세한 그물(자망) 속에서, 아무리 비늘이 벗겨지도록 몸부림쳐도, 그 그물 속을 씨알 작은 멸치 떼들이 빠져나가지 못한다.
에헤야 뒤에야(후렴)
여기여뒤여 방에여
동깨코란근 등곱은여로
서깨코란근 소여콧들로
당선에서 멜발을 보고
어로 작업을 감독, 지휘하는 배는 멸치떼를 보고
망선에서랑 후림을 놓으라
그물을 싣고 나가는 배는 멸치 후리는 그물을 놓으라
닷배에서 진을재왕
닻배는 그물을 드리우고, 방진망(防陳網)을 죄어가며
후리소리-일부
'후리 소리' 속에 만선의 기쁨 출렁인다
멸치를 털 때도 후리 소리의 후렴에 박자를 맞추어 턴다. 후리 소리는 멜(멸치떼)이 들어와 멸치잡이 그물을 잡아당기면서 부르는 노동요. 일명 <멜후림 소리>, <멜후리는 노래>, <닷댕기는 소리>라고도 한다.
후리 소리에는 거친바다에서 하는 어로작업의 애환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환한 녹등과 적등이 번갈아 깜박이는 멸치 배 위에서 멸치 그물을 잡아당기는 어부들과 그물을 털어내는 삶의 풍경은 핍진하다. 이 핍진도 한순간 황금 어장의 기쁨으로 눈 녹듯 사라진다.
만선의 기쁨은 야간 어로 작업의 고단함을 충분히 잊게 한다.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유화를 보는 것처럼 김 작가가 포착한 <멸치작업>들은 짭쪼롬함 바다냄새와 뒤섞인 어부들의 땀냄새와 퍼득이는 어군들의 떨어져 나간 살점을 발라 그린, 바다의 싱싱한 초상(肖象).
웃베리 멸치 후리는 그물 위쪽 코를 꿰어 잡아 당기는 동아줄 멜나간다
한불멸치 후리는 그물 아랫쪽 코를 꿰어 잡아 당기는 동아줄 멜나간다
그물코이 삼천코라도
베릿베웃베리의 뱃줄 주장이로다
당선에 망선에 봉기를 꼽앙
공원제장 노인덜은
밥주걱심어근 춤을 춘다
우리 옛조상 단일을
잊어불지말아근 뒈살려보자
어기여 뒤여 방에여
풍년왓구나 풍년왓구나
<민요시학연구- 좌혜경>
바다와 싸워 이기는 파도, 파도와 싸워 이기는 어부들
삶은 누구나에게 치열한 생존 전쟁이고,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조차 가만히 들여다 보면 생존을 위해 전투적으로 존재방식을 찾아간다.
모든 인간에 대한 하나로 집중되는 사랑에 비해 인간의 삶은 쌍방향으로 나아가고, 인간은 이로 인해 평정성을 잃는다. 이러한 평정성을 일관되게 추구해 온 김재문 작가. 그의 작업은 너무나 치열하다. 치열한 리얼리즘의 예술에서 왕왕 미학성을 논한다. 그러나 삶보다 치열한 예술은 없고, 이 치열한 삶의 현장은 절묘한 순간의 포착에서 사진의 경우 미학성과 리얼성이 함께 형상화된다.
온 몸의 하얀 재를 남기고 사라지는 <내일은 죠 2>처럼, 김 작가의 작품에 군더더기의 설명은 불필요하다. 예술이라는 허명 하에 퓨전되는 사진과 그 경계는 다르다. 혼신을 다해 살아가는 치열한 삶의 예술을 해석없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사실 바다와 싸워 이기는 자는 파도지만, 파도와 싸워 이기는 자는 어부들이고, 바다의 힘든 어로작업 현장을 함께 뛰어다니는 작가의 작품에는 거친어부와 싸우면서 순간을 포착해 내야 하는 사투의 어려움이 서려있다.
바다 노동자의 삶의 미학 돋보여...
김 작가의 카메라는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발품의 신인이다. 작가는 올해 부산시 사진대전람회에서 영광의 '대상'을 안았다. 시상식은 오는 8월 25 일 부산시민회관에서 가질 예정이다. 그의 카메라 시선은 뼈 속까지 스치는 삶의 아픔보다 맹목적일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바다의 노동자의 일상이나, 근로자들의 삶과 주변의 밑바닥 인생 등에 주관심을 가진다.
한 작품마다 혼신을 바치는 일련의 "멸치작업"에 관한 작품 앞에서, 내 인생은 그 누구보다 치열한가 자문케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리를 좋아하는 바다의 어군들은 한 점의 살점이 뼈를 남길 때까지, 왁자한 작업소리에도 별빛처럼 털린다.
멸치들 지느러미 퍼득이며 자유를 외친다.
살점이 터지면서 비로소 바다를 노래하는가.
노획을 꿈꾸는 어부들의 그물은
신의 아킬레스의 실사로 짠
촘촘한 바다의 감옥
소리를 좋아해서 감옥에 걸린 멸치 떼들
그 뼈아픈 후회처럼, 어부들은 끊임없이
후렴에 맞추어 멸치 그물을 턴다.
해풍은 박자를 맞추어 별빛을 턴다.
털고 털어서 한 점의 먼지가 없을 때까지,
우리의 세상은 서로의 거짓을 털어야 하리.
그물에 걸려보지 않는 이상
나는 진정한 자유를 알 수 없으리라.
소리의 지독한 사랑에 걸린
멸치 떼들 낭자한 피를 흘리며
푸른 바다를 끊임없이 생선비늘처럼 턴다.
아파할 겨를도 없이 파도는 얻어터지고
부서지면서 캄캄한 밤바다를
눈부신 새하얀 희망처럼 털고 있다.
은빛 비늘이 반짝반짝 털려 나가는
어리석은 멸치 떼를 보며 이제야 안다.
내 안의 나도 알 수 없는 당신이,
정치망보다 무서운 절망의 그물을
부산하게 털고 있다는 것.
<"멸치작업"에 부쳐> 자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