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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MBC PD수첩은 ‘꿈의 기업인줄 알았습니다 - 청년 구직자들의 악몽 같은 취업기’를 방송했다. 방송 내용에 따르면 문제의 기업 K사는 채용공고에 내근직, 신입 연봉 2096만원, 내집 마련 복지적금 등 좋은 조건을 내걸어 구직자들을 유혹했다. 그러나 실상은 면접 지원자를 전원 선발해 수습 3개월 동안 지방을 오가며 학습지 영업에만 매진시키고, 수습이 끝난 이후에도 내근직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피해자들의 주장을 실었다.

방송이 나가고 인터넷은 마비될 정도로 K사에 대한 비난으로 빗발쳤고, PD 수첩 게시판에는 ‘자신도 피해자’라고 밝히는 제보가 잇따랐다. PD수첩측은 이튿날 K사가 ‘교수닷컴’이라고 실명을 밝혔는데, 그 이유로 ‘방송을 본 후 금방 K사가 교수닷컴이라는 사실을 많은 시청자들이 알아차릴 만큼 이 회사의 실태가 많이 알려져 있어서 이니셜표기 자체가 더 의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점’, ‘이니셜로만 표기할 경우 큰 잘못이 없는 엉뚱한 학습지 회사가 오해를 받을 가능성’, ‘문제가 되고 있는 회사의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할 경우 계속해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실명이 공개된 후 교수닷컴 사이트는 방문인원이 폭발했고, 결국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교수닷컴 사이트가 문을 닫았을 때, 회사측이 일부러 접근을 통제하기 위해 꾸며놓은 짓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홈페이지를 들어갈 때 첫 화면을 ‘접속 불가능’ 페이지로 그려 넣었다는 것. 즉 정상적인 사이트 폐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구직자들을 상대로 취업사기도 모자라, 이제는 네티즌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고 비난했다.

현재는 교수닷컴 사이트가 아예 사라져버렸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도 예전 사이트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방송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비난글도 현저히 줄었다. 마치 기억 자체를 잃어버린 양 ‘교수닷컴’은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PD수첩이 ‘교수닷컴’의 실명을 공개했을 때만 해도,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보도했고, 의도와 달리 ‘청년들의 영업직 기피’에 관한 갑론을박도 펼쳐졌다. 한 언론에선 ‘교수닷컴측이 MBC를 상대로 과장된 보도로 피해를 입었다며 명예훼손소송 등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모든 논란은 하루만에 그쳤다.

다음날 언론들은 후속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교수닷컴에 대한 새로운 사실은 발견할 수 없었다. 교수닷컴의 모회사로 알려진 노벨과개미측의 후속대응을 물어봤다. 마케팅 관계자는 “명예훼손 부분은 오버된 기사”라고 지적했으나, ‘교수닷컴이 노벨과개미의 자회사냐?’ ‘교수닷컴은 영업을 중단한 것이냐?’ 등 나머지 질문에는 답변을 미루고, “교수닷컴에 관한 이야기는 말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교수닷컴이 만드는 ‘이키아이’ 학습지 홈페이지는 그대로다. 또 상담과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교수닷컴의 영업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수닷컴에 피해를 입었다는 네티즌들은 “이 회사의 사기행각이 예전 모습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교수닷컴 전신인 덕암출판사부터 구직자를 상대로 한 허위구인광고를 펼쳤고, 문제가 발생하자 업체명을 바꿔 영업했다는 주장. 실제로 일부 취업 정보 카페에는 덕암출판사를 조심해야 할 회사 명단에 올려놓은 게시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한상공회의소 비즈니스 정보사이트 코참비즈에 따르면 덕암출판사는 2003년 상호를 변경했고, 2004년 8월 (주)노벨과개미에 교재의 출판 및 판매사업과 주간학습지 출판사업을 양도했다고 나와있다. 노벨과개미와 교수닷컴의 대표이사는 똑같이 이형만씨로, 본사는 강남구 대치동 노벨빌딩이다.

회사명을 바꾼 2003년에도 덕암출판사는 KBS 시청자칼럼 ‘우리사는세상’에서 학습지 판매 횡포로 고발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네티즌들은 “이번에도 논란이 완전히 가라앉은 시점에, 사명을 바꾸고 나와 또 다시 구인모집을 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PD수첩 방송내용은 교수닷컴이 허위구인광고로 취업에 목매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쳤다는 인상을 풍긴다. 만약 사실이라면 명백한 법률 위반이다. 위법을 판단하기 위한 사실관계 조사는 노동부가 담당한다. PD수첩이 실명을 밝히고 한창 논란이 났을 때 노동부에 문의했다. 오래 전부터 피해자가 발생했고, 이 업체의 실명이 나갔다면 사실조사착수에 나섰을 거란 기대로 질문했지만, 처음 노동부측은 “잘 모르겠다. 해당 구청이 고소, 고발 접수와 모니터링, 단속업무를 한다”며 책임을 구청으로 넘겼다.

곧바로 해당구청인 강남구청에 문의했으나, 역시 ‘모르겠다’는 성의 없는 답변뿐이었다. 강남지청과 강남고용지원센터에서도 조사는커녕 고소고발 건 여부도 확인할 수 없었다. 오랜 전화통화 끝에 노동부 고용서비스혁신단으로부터 정확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혁신단 관계자는 “아직 위로부터 어떤 지시도 못 받았고, 해당 지역센터에서도 그 업체를 조사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은 난리가 났지만, 밖은 잠잠했던 것이다.

지난 5일 다시 노벨과개미측과 노동부 고용서비스혁신단에 상황을 물어봤다. 노벨과개미는 담당자가 회의를 들어갔다는 이유로 끝내 입장정리를 들을 수 없었다. 더구나 지난번 전화를 받은 관계자는 “명예훼손소송을 할건지, 안 할건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발뺌했다.

고용서비스혁신단 역시 전과 같은 입장이었다. 혁신단 관계자는 “방송에 업체명이 인지가 안 됐고, 고소고발도 한 건도 없었다”며 현재로선 조사불가 입장을 전달했다. 이 관계자에게 ‘PD수첩이 이튿날 업체 실명을 공개한 점과 인터넷에 피해사실이 줄을 잇는다’고 언급했고, 잠시 후 인터넷을 살펴 본 관계자는 “해당 지역센터에 사실확인을 요청했다”고 급선회된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피해를 호소하는 청년들은 구제 받을 수 있는 걸까? 그러나 아직 이 업체의 위법성 여부도 판단이 안된 상태. 한국청년센터의 정혜영 노무사는 “허위구인광고에 대한 위법성 판단은 까다롭고 단순치 않다”고 밝힌다. 채용시 근로계약서 내용과 업무가 일치한다면 허위구인광고 여부도 달라질 수 있고,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도 따져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와 사례는 다르지만 2002년 대법원의 허위구인광고 판례를 보면 ‘방문판매회사의 판매대리인을 모집할 의도로 허위구인광고를 한 자는 직업안정법상 근로자를 모집한 자가 아니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물론 이 경우는 방문판매 업체의 한정된 판단이지만, 허위구인광고 사용자에 대한 대법원의 보수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노동당국 역시 허위구인광고 건으로 실제 경찰에 고발하는 개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또한 허위구인광고를 단속하는 공무원도 각 센터에 1명에 불과하다. 교수닷컴 본사가 있는 강남구 역시 고용지원센터에 1명, 강남구청에 1명만이 허위구인광고 신고접수와 단속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이 관계당국으로 하여금 직접 단속업무보다 구직자 사전예방 홍보에만 몰두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런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오는 7월 20일부터 허위구인광고에 대한 신고포상제도를 실시한다. 그러나 이 역시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피해자들이 직접적인 보상을 원한다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는 게 유리하다. 방송이 나간 후 한 변호사는 소송을 청구할 피해자들을 모집했지만, 문의자는 단 2명 그쳐 소 제기 자체가 힘든 실정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교수닷컴’은 사측의 의도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사람들 기억 속에 재빨리 잊혀져가고 있고, 피해 구직자들의 상처도 억지로 봉합되는 분위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주간지 <월요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수닷컴#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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