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벌어지는 불꽃놀이가 볼 만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독립기념일이 되면 거리에는 성조기가 걸리고, 퍼레이드가 진행되며, 쇼핑몰들은 세일에 나서고, 핫도그 먹기 대회 같은 이벤트도 만들어지지만 그 중 불꽃놀이가 눈요기에는 제일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말이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미 전역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모양이다. 내가 살고 있는 뉴저지에서도 한다는 데, 이왕이면 뉴욕으로 나가보자고 마음먹었다. 뉴욕에서는 이스트리버 쪽에서 하는 모양이다. 오후 무렵부터 이스트 강을 따라 달리는 FDR도로(맨해튼의 강변도로)를 막는다는 것을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모양이다.
불꽃놀이 구경에 나서다
마침 시민행동 상근자 두 사람이 미국을 방문 중이라 함께 나섰다. 오후 내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시작 시간에 맞추어 이스트 강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인터넷에서 볼 때는 시작시간이 밤 7시라고 본 것 같아서 사람들이 몰릴 것을 예상해 6시가 좀 되기 전에 34번가 동쪽 끝에 도착했다.
그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두 친구가 잠시 커피를 사러 간 사이에 옆에 앉아 있던 흑인아저씨가 밤 9시에 시작하는 데, 사람들이 3시간 전에 몰려나온다며 내게 말을 건다.
"아, 7시 아니냐?"
"9시다."
헉, 3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비도 오는 데…. 9시에 행사가 시작되기 때문인지 아직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이 아니구나…. 두 친구가 커피를 사가지고 오자 FDR도로로 올라갈 수 있게 경찰들이 안내를 시작한다. 이 도로는 서울로 치자면 강변도로나 올림픽대로쯤 되겠다. 이스트강이 제대로 보이는 위치를 개방하는 셈이다.
하여간 올라갔다. 위치는 좋은 곳이다. 오랜 시간 기다릴 것을 각오하고 온 사람들이라 의자, 비옷, 먹을 것, 담요 등 각종 장비로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오는 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가족끼리 친구끼리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다. 기다리는 동안 계속 비가 와서 서서 기다리기에 쉽지 않다. 화장실도 가고 싶고….
우리는 결국 집에 가서 TV로 볼까, 이왕 온 김에 더 기다릴까 고민하다가 1시간이라도 쉬고 오기로 결정했다. 도로 도심으로 나와 좀 쉬었다가 1시간 전쯤 다시 나섰다. 같은 장소로 갔는데, 안내하는 방향은 다르다. 많은 사람이 몰리게 되니까 그동안 다년간의 경험으로 노하우를 가진 뉴욕경찰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방식인 모양이다.
일정한 규모의 사람을 모아서 먼저 온 사람들은 가장 좋은 위치로 보내고 그 위치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지 않도록 시간대 별로 나누어 늦게 온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 분산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나름 치밀하게 정돈하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수만 명의 사람이 몰려드는 곳인데, 처음 위치보다 좋지는 않지만 그 곳이나 우리가 보는 곳이나 모두 적절한 인원들이 몰려 있어서 서로 보려고 하다가 부딪히고 쓰러지고 무너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게 되어 있는 셈이다. 사람이 몰려서 일어나는 불상사는 원천봉쇄구나 싶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을 했다.
게다가 우리 같으면 이 정도 인원이 몰리는 장소에는 항상 볼 수 있는 게 노점상인데, 하나도 없다. 경찰의 통제로 아예 들어 올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다들 먹을 것을 싸오거나 자리를 잡고 나면 일행 중 한사람이 나가서 피자나 콜라를 사오기도 한다. 긴 시간 기다리려면 배를 채워야 할 테니까….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불꽃...그리고 시민들의 축제
딱 30분간 진행된 불꽃놀이는 훌륭했다. 정말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불꽃들이 마치 사람들한테 다가오는 것 같은 이미지를 연출하기도 했다. 또 몇 가지 이모티콘도 만들어 내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어 사람들의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며칠 전에 귀국한 아이가 보고 싶어 했던 장면이기도 하다. 아이를 위해서 사진 진짜 많이 찍었다.
30분간 단 한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불꽃놀이는 그야말로 물량공세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많은 화약이 터진다. 나중에 뉴욕 메트로에서 확인해 보니 이 날 30분간 보여주었던 불꽃의 수는 4만 개. 어바웃닷컴에서 말하기로는 12만 개의 불꽃을 볼 수 있다고 하니 터지는 화약이 기준인지 뭐가 기준인 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엄청난 물량공세임엔 틀림없다.
1776년 영국으로 독립을 선언한 것을 기념하는 날인 이 날의 가장 중심적인 행사가 불꽃놀이다. 독립전쟁 이전부터 불꽃놀이를 즐겼다는 사람들이니 독립선언 다음 해부터 기념 불꽃놀이가 이어진 게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이틀 전인가 공항 가는 길에 나오는 전광판 메시지를 보니까 개인이 하는 불꽃놀이는 위험하며 불법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말하자면 제한된 공간과 주체만이 공공행사로 할 수 있는 모양이다.
미 전역의 많은 도시가 불꽃놀이를 하지만 그 중에 크고 유명한 것은 뉴욕의 이스트리버, 보스턴의 찰스리버, 워싱턴의 내셔널 몰에서 진행되는 불꽃놀이다. 이 행사들은 TV에서 중계도 하며 공연도 함께 이루어진다. 뉴욕은 NBC가 중계를 했고 뉴욕팝오케스트라와 브로드웨이의 스타들이 공연을 했다. 뉴욕의 불꽃놀이를 주관하는 곳은 미국의 유명한 백화점 MACY'S다. 이스트강 위에 떠 있는 선박들에는 백화점 이름이 선명하다.
우리들의 기념행사엔 무언가가 빠져있다
우리도 광복 6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당일 행사 뿐 아니라 전시회, 각종 이벤트 등으로 상당히 많은 사업이 진행되었고, 광복 60주년 기념사업회의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민간 행사도 적지 않았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출한 돈도 만만치 않았고, 민간 행사들 중에 일부는 기업협찬 문제로 논란이 된 사업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많은 사업과 행사가 있었지만 그동안의 광복절 행사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세종문화회관의 기념식 말고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마도 60주년 행사를 계기로 우리도 나름대로 광복절을 전 국민이 기념하는 무엇으로 만들어 보려 한 것 같고 그래서 당시 국민의 축제라는 이름도 쓴 것 같은데, 여전히 식순이 뻔하고 누가 초청되는가만 언론을 통해 알 수 있는 기념식이라는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아 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 하면 불꽃놀이로 기억되는 것, 독립을 자축하고 즐기던 전통이 화려한 불꽃놀이 행사로 남아 있는 셈이다. 독립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버리며 싸웠지만 온전히 우리 힘으로 이루지 못하고 강대국들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탓에 이런 기념문화가 생기지 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하지만 어쨌든 광복절이든 무엇이든 공동체가 기념해야 할 날에 딱딱한 기념식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우리가 기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문화가 없다는 아쉬움이 드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