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에 위치한 시사기자단 사무소는 하루 종일 시끌벅적하다. 저마다 일에 열중하다가 갑자기 '회의'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한켠에서는 봉투접기 같은 예상치 못한 잔 작업이 눈 깜빡 할 사이에 벌어졌다가 끝난다. 사람들도 많이 찾아온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방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대선 예비주자들일 것이다.
최근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와 천정배 의원이 다녀갔고, 어제(7월 10일)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등이 방문했다. 손학규 의원은 영리하게도 포스트 잇을 한 봉지 남기고 갔는데, 다들 그것을 쓰면서 손학규 전 지사를 생각할지는 미지수이다.
정동영 의원도 세심하게 준비를 했다. 커다란 수박 세 덩이를 사온 데다 역시 기자 출신이라 취재용 수첩을 한 봉지 사들고 왔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강렬한 인상은 전혀 엉뚱한 사람의 차지가 되었다. 사진 기자가 정동영 전 의장의 수박 한 덩이를 데커레이션 하듯 썰어낸 것이다. 다이아몬드 형으로 먹기 좋게 썰어낸 모습에 동료 기자들은 '총각이 이렇게 수박을 잘 썰어도 되느냐'며 타박을 놨다. 말은 그렇게 해도 다들 집에 가서 그 모양으로 수박 써는 연습들을 할 것이다.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유명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유명하지 않을 뿐더러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다. 여기서 문제. 생전 얼굴 한번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았지만, 이 사건 때문에 매일같이 보게 된 사람이다. 기자들이 월급 때문에 투쟁한 것이 아닌 것처럼 그 역시 돈을 원해서 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니다. 그게 누굴까? 바로 '독자'이다.
임태빈(26세·건국대 국어국문학·행정학 4학년)씨는 독자 서포터스를 자청해서 4학년 1학기의 귀중한 방학을 '헌납(?)'한 시사모 회원이면서 열혈청년이다. 한마디로 시사기자단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이다.
그와 인터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할 일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뷰 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기자는 머리를 짜내어 '메신저 인터뷰'까지 시도했으나 허사였다. 조르고 졸라 딱 30분간 인터뷰가 허락되었다. 그에게 서포터스 활동 중 생각나는 일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캐물었다.
서포터스 활동하러 간다고 했더니 아버지 왈 "그거 빨갱이 아냐?"
- 기자들과 참 친한 것 같다. 혹시 여기서 아는 사람 있는 거 아닌가?
"생면부지이다. 다 알고 있는 일 아닌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알게 된' 사람들이다."
- 취업준비로 한창 바쁠 텐데 감히(?) 서포터스를 자청한 이유는 무엇인가?(웃음)
"졸업을 앞둔 이 시기가 매우 중요한 시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취업'으로 한정짓는 것은 좀 곤란하다. 넓은 의미로 '사회'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고 싶다. 친구들은 저마다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토익 공부하는 친구도 있고, 학원 다니는 친구도 있고, 학과 공부를 더 하는 친구도 있다. 나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고, 그 형식이 '시사기자단 서포터스'가 되었을 뿐이다."
- 집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나?
"아버지의 반대가 심하셨다. 하루는 서포터스 하러 집을 나서는데 아버지께서 '어디 가냐?'고 묻길래, '시사기자단 서포터스' 하러 간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거 삼성기사 삭제 때문에 파업하는 기자들 아니냐?'하고 또 물으시는 거다. 그래서 '맞아요'하고 대답했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그 사람들 빨갱이 아니냐?'라고 언성을 높이시는 게 아닌가. 황당했지만 짧게 답변을 드렸다. '나 빨갱이 맞아요!'."(웃음)
- 친구들은 어떤가?
"다들 '잘 해보라'고 했다."
- 알고 잘 해보라는 것과 모르고 잘 해보라는 것은 다른 거 아닌가?
"월급도 주지 않는데, 그런 거 해서 뭐하냐 하는 친구들은 분명 모르고 하는 말일 거다. 그런데, '알고' 잘해보라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심정적 도움과 실질적 도움
- 어떻게 해서 서포터스를 하게 되었나?
"시사저널 사태를 알게 된 것은 오래 전이었다. 하지만 대학생 신분이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얼마 전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오프라인 모임 때 처음 갔는데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스스로 부채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서포터스 모집공고를 보고 바로 신청을 하게 되었다."
- 그때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는 말인가?
"상황도 상황이지만, 기자들이 투쟁을 할 때는 마땅히 도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기자들처럼 머리띠를 매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심정적으로 도움을 줄 뿐이었다. 하지만 창간 이후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나도 실질적으로 도울 방법이 생겼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지원하게 됐다."
- 서포터스 활동을 하면서 독자들의 전화를 많이 받아 보고 사이트 방문자의 반응도 살펴보았을 텐데 어떤가? 독자들 중에는 '심정적'으로 돕는 사람이 많은가, '실질적'으로 돕는 사람이 많은가?
"그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나? 다만 그들이 전에는 도울 방법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후원금도 낼 수 있고, 정기구독도 신청할 수 있고, 소액투자도 할 수 있다. 그것도 안 되면 격려 전화도 할 수 있다. 이것을 보았을 때 '새매체 창간'은 잘한 결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은 '시사모'가 아닐까 한다. 시사모는 매체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매체를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가진 매체는 행복하다. 시사기자단이 행복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언론은 '구조'에 갇혀 있어
- 독자로서 요즘 언론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 인쇄량 기준으로 등수 안에 드는 언론들이 시사저널 사태에 침묵하는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언론사 역시 직장 아닌가. 조직과 개인 간의 갈등이 있을 거다. 언론사의 논조가 있듯이 기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분위기나 구조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자유로운 기자들이 얼마나 되겠나? 그것이 조금 넓혀지면 '자기검열'이 되는 거고, '카르텔'이 되는 거 아니겠는가?"
- 그러면 언론사는 '제조업'이나 다름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인가?
"잘 모르겠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언론'이 아닌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정동영 전 의장과 김원웅 의원 등 유명인사가 다녀갔다. 그래서 인터뷰 내용도 '정치인' 이야기로 급선회했다.
"여기서 일하면서 정치인 등 유명인사를 자주 보게 된 점은 생소한 경험이다."
- 정치인들이 시사기자단에 연이어 방문을 오는 모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기자는 '악의'를 가지고 질문했다.)
"세상사 계산 없는 '액션'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게 있지 않을까.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는 '직함'이나 주위의 '시선'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 뿐, 거기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 나름대로 진정성이 있다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정치인들 중에 이곳에 방문하기는커녕 관심조차 두지 않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여기에 방문하는 정치인들은 분명히 '의식'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그런가. 한나라 당 대권후보들은 잘 안 보이고, 범여권 인사들만 찾아오는 것 같다.(웃음)
"......"
- 마지막으로 앞으로 새 매체 어떤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는가. 임태빈 씨가 보았던 전 시사저널 기자들의 미덕에 대해 이야기를 해 달라.
"(전) 시사저널의 미덕은 뭐니뭐니 해도 팩트 중심의 객관성과 탐사보도, 전문보도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살려내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언론도 시장이라면 '수준 높은 매체'가 사랑받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나?"
다시 전화가 울려 인터뷰는 급하게 마무리되었다. 정동영 전 의장은 방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몇 개의 포즈를 남기고 돌아갔다. 얼마 후 약속이나 한 듯 김원웅 의원이 방문하고 또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국회의원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일개 시민기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겠지만, 그보다 기자가 '뉴스'로 다루고 싶었던 것은 '이름 없는 독자'였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뇌리 속에 서성거렸던 광고의 문구를 떠올린다. 약자들을 친히 방문해준 정치인들, 정말 고맙다. 이 광고문구만 같았으면 더욱 고맙겠다.
"한 번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 믿음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