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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6자회담이 지난 2월 13일 6개국의 합의로 타결된 가운데,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폐막 회의에 앞서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고 있다.
북핵 6자회담이 지난 2월 13일 6개국의 합의로 타결된 가운데,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폐막 회의에 앞서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북한이 한반도 평화와 안전보장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유엔 대표가 참가하는 가운데 북·미 군사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통일부는 북한이 왜 남한을 빼고 이런 제안을 했는지 의도를 파악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 판문점대표는 13일 담화를 발표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보장과 관련한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쌍방이 합의하는 임의의 장소에서 아무 때나 유엔대표도 같이 참가하는 조·미 군부 사이의 회담을 진행할 것을 제의한다"고 밝혔다.

북 판문점 대표는 "우리의 핵문제란 본질에 있어서 미국의 핵문제"라며 "우리 인민은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 속에서 살고 있으며, 남조선으로부터 미국의 핵무기 철수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시종일관 주장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이 핵문제를 구실로 앞으로도 계속 우리에게 압력을 가해온다면 부득불 미국의 핵공격과 선제타격에 대비한 응당한 수준의 대응타격 수단을 더욱 완비해 나가는 데 총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며 "이렇게 되는 경우 2·13합의 이행이나 6자회담이 하늘로 날아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전협정의 많은 핵심조항들이 거세되고 효력을 상실했으나 조·미 쌍방은 정전협정의 문구와 함께 그의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한 정전협정 제17항의 요구에 따라 이러한 제의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 판문점 대표는 "조선인민군 측은 미국과 유엔이 다 같이 조선정전협정의 조인 일방으로서 조선 반도에서 새로운 평화보장체계가 수립될 때까지 정전협정에 의해 지닌 의무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평화체제 논의 기선잡기용"

전문가들은 이번 북한의 담화가 여러 가지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봤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비핵화 과정과 한반도 평화 체제 논의가 동시에 진행된다"며 "북한 핵시설의 폐쇄가 곧 이뤄지게 되는데 북한은 이 때쯤 이런 제안을 함으로써 평화체제 논의에 있어 주도권을 쥐려는 생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9·19 공동성명에 따르면 6자회담 참가국들은 비핵화 과정과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간다.

현재 6자회담은 사실 북미간의 양자회담에서 사전 조율된 사항을 나중에 논의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6자회담은 각국 외교부 대표들이 참석해 열리기 때문에 사실상 정치·외교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런 6자회담 상의 한반도 평화체제 포럼이 열리기 전에 북미 사이에 군사 실무적인 분야에서의 회담을 열어 내용을 미리 조율하고 이 과정에서 기선을 잡겠다는 게 북한의 의도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북한은 이번 담화에서 정전협정 존중 의사를 밝혔다"며 "북한은 정전협정을 끌어들이는 것이 주한미군이나 미국의 핵무기 문제를 논의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전협정 13항에는 ▲한국 경외로부터 증원하는 군사인원을 들어오는 것을 정지 ▲한국 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장갑차량·무기 및 탄약을 들여오는 것을 정지 ▲교체의 목적으로 군사장비를 들여올 때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에 보고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정전협정 60항에는 "정전 협정 효력 발생후 3개월 안에 쌍방의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 군대의 철거 및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건의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북한은 이런 정전협정상의 문구를 들어 한미 군사훈련·주한미군 장비 증강·북한을 겨냥한 미국의 핵무기 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특히 중국 군대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귀국했으나 주한 미군은 계속 남아있다. 정전협정을 들어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압박할 수 있다.

남한 배제 의도?

지난 2005년 7월 26일김계관 북한측 대표와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대표가 1단계회담 개막식에서 밝은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지난 2005년 7월 26일김계관 북한측 대표와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대표가 1단계회담 개막식에서 밝은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전수영
일각에서는 이번 북한의 담화가 한국을 배제하거나 압박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보고 있다.

정전협정 서명에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고 이를 들어 북한은 남한을 배제한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주장해왔다. 물론 한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서 남북이 서명하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장하는 '2+2'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이 정전협정문에 입각한 북미 군사회담을 열자는 제안한 것은 남한을 배제하려는 의도로 보일 수도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북한의 이번 제안은 정전협정이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데 따르는 군사문제를 다루자는 뜻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5차례나 남북 군사회담을 했는데 한국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상전'인 미국하고 직접 협상하겠다는 압박 카드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획정의 경우 북한은 남북 군사회담에서 이 문제에 집중했으나 남한 정부는 절대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NLL은 1953년 당시 마크 클라크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설정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북한 입장에서는 유엔군 사령관(즉 주한미군 사령관)이 NLL을 그었으니 이들과 직접 담판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셈이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통일부는 북한의 의도 파악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등에 따르면 비핵화 과정과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본격 시작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또 남북한 간에는 장관급·장성급 군사회담이 열렸다. 당장 오는 이달 24~26일에는 6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 열린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 군사회담을 열자고 제안한 것은 상당히 뜬금없는 일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왜 우리를 빼고 이런 제안을 했는지 좀 더 진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요구가 6자 틀에서 논의하는 한반도 평화 논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깊이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제안이 남북한 군사회담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진행상황을 예의 주시하겠다"며 "한반도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문제는 남북 간 대화를 중심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평화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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