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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진혼제에서 김금화 만신이 진혼굿을 하고 있다.
사도세자 진혼제에서 김금화 만신이 진혼굿을 하고 있다. ⓒ 장지혜
"목말라, 목말라. 문열어줘, 문열어줘"를 연신 외쳐 데는 김금화 만신.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굿으로 유명한 김금화 만신이 이번에는 사도세자의 넋두리를 하기 위해 이곳 수원화성 신풍루 앞에 섰다.

12일 저녁 7시, 조선시대 비운의 왕세자 사도세자가 창경궁 영춘헌에서 억울한 누명으로 뒤주에 갇힌 채 죽어간 지 245주년 되는 날이기도 했다.

사도세자의 옷을 걸친 채, 1m나 되는 뒤주에 갇힌 양 답답하다며 연신 슬픔을 호소하고 울부짖는 김금화 만신은 어느새 뒤주에 갇힌 28세 젊은 나이의 사도세자가 돼 있었다.

사실, 굿판 구경은 처음이었다. 사도세자의 첫 진혼굿이라 관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굿 하나로 무형문화재가 된 그녀, 김금화가 궁금했다.

'주당을 물리고 구청을 맑게 정화한다'는 신청울림으로 시작한 사도세자 진혼제는 상산부군맞이, 초부정림, 제석굿, 성주굿을 거쳐 김금화 만신의 진혼굿과 작두거리로 이어졌다. 진혼굿에서 삼베를 찢어나가며 선보이는 화려한 춤사위에 77세란 그의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이어 식의 하이라이트인 작두거리. 3m 높이의 작두로 맨발이 된 그녀가 올라갔다.

진옥섭은 <노름마치>란 자신의 책에서 김금화를 '작두 타는 비단 꽃 그 여자'로 묘사하고 있다.

좁은 길을 걸으라. 구원을 얻으리라. 성경 말씀이다. 좁은길이라. 그럼 세상에서 가장 좁은 길은? 아마 작두날 위일 것이다. 한치의 면적도 없지만 그 위에서 걷고 춤추는 여자가 있으니 길이다. 너비 또한 시퍼런 극한으로 줄였으니 분명 세상에서 제일 좁은 길이다. - 노름마치 중

김금화 만신이 작두거리를 하기 위해 작두로 올라가고 있다.
김금화 만신이 작두거리를 하기 위해 작두로 올라가고 있다. ⓒ 장지혜
1931년 황해도연백 태생인 그녀는 1982년 한미수교 백주년 기념 문화사절단으로 국제문화행사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월드컵기념굿, 백남준 타계1주년 진혼굿과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 진혼굿을 하는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만신이다.

그녀는 사도세자의 넋을 기린다는 말에 선뜻 굿을 승낙했다고 했다. 3m 높이의 작두 날 위에서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고 있는 '작두 타는 비단 꽃 여자' 김금화 만신이 그렇게 눈앞에 있었다.

그녀의 온몸으로 내뱉는 구슬픈 노랫말과 화려하게 뽐내는 춤사위는 구경꾼과 그곳에 모인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 아들 정조대왕이 지은 화성행궁 앞에서 사도세자도 그 넋을 위로받고 극락왕생 했을 것이다.

굿판은 그렇게 우리가 풀어내야 할 것을 풀어내게 한다. 몸속에서 피어오르는 신명같은 것이 그것이다. 혈구의 앙금 앙금에 머물던 흥들을 풀어내지 못하면 멋대로 뭉쳐서 몸에 담석으로 남는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될지 모르는 그 응어리를 풀라고 굿판이 있는 것이다. 혈전이나 삶의 앙금이 다 빠지는 피부 호흡의 체험, 이쯤이면 굿은 굿(Good)이다. - 노름마치 중

3시간 넘게 진행된 굿의 끝자락에서 김금화 만신은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당은 많아도 도대체 무당만한 당이 없어. 싸우지들 말고 나라를 위해서 화합해야지..."라며 나라 만신답게 넉넉한 마음씨와 입담도 과시했다.

김금화 만신이 사도세자의 흉내를 낸 것인지, 사도세자의 넋이 김금화 만신에게 들어간 것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굿판에 구경꾼들은 모두 울고 웃었다. 그러면 된 것이다.

모두가 울고 웃었던 굿판, 사도세자 진혼굿은 그야말로 굿(Good)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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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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