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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골폭포의 위용에 여름이 옷을 벗다!
석골폭포의 위용에 여름이 옷을 벗다! ⓒ 김연옥
일상이 바쁘고 팍팍할수록 여유를 짐짓 부리고 싶은 것일까. 지난 8일 나와 첫 인연을 맺은 산악회인 경남 산사랑회 사람들을 따라 무작정 밀양시 억산(944m) 산행을 떠났다. 오전 7시 30분에 마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8시 50분께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석골마을에 내려 산행을 시작하였다.

이 집, 저 집 풋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정겨운 마을 풍경이 내 눈길을 끌었다. 머릿속으로 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점점 빨갛게 익어 가는 사과들을 그려 보는 것도 즐거웠다. 그런 평화로운 상상을 하게 해 준 농부들의 수고가 새삼 고마웠다.

신라 진흥왕 때 비허 스님이 세웠다는 석골사(石骨寺). 아마 그 절로 가는 길에 들려오는 석골폭포의 우렁찬 소리에 발길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는 시원한 물줄기를 그저 바라만 보아도 더위로 축 처진 마음이 유쾌해진다. 추락하는데도 황홀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폭포이리라.

여기부터 시작이라는 것인가

내리꽂히는 황홀함에 길들여져 왔으나
물이 뛰어내린 자리에 발 담그며 환호했으나

폭포는
물의 계단

폭발하는 바닥의 빛!

- 함순례의 '폭포'


용이 못된 이무기의 한이 서려 있는 억산의 깨진 바위.
용이 못된 이무기의 한이 서려 있는 억산의 깨진 바위. ⓒ 김연옥
억산(億山)은 경남 밀양시 산내면과 경북 청도군 금천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동쪽으로 영남알프스의 하나인 운문산(1188m)이 있고 서쪽으로는 위용이 넘치는 구만폭포가 있는 구만산(785m)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산 이름에 왜 하필 억(億) 자를 붙였을까. 궁금증이 났지만 내게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없어 아쉬웠다.

억(億)이란 수는 내가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여전히 머릿속으로 쉽게 계산이 되지 않는 큰 수이다. 그래서 이따금 재산 증식을 생각할 때면 막연히 마음에 자리 잡게 되는 숫자이다. 그런 점에서 억산은 기대와 만족을 모두 안겨 주는 산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억산은 결코 튀는 산은 아니다. 오히려 주변 여러 산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나이를 먹으니 부쩍 '함께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이 서로 달라도 존중하며 여럿이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성숙한 태도가 아직도 내게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범봉 바위.
범봉 바위. ⓒ 김연옥

연자줏빛 싸리나무꽃을 실컷 볼 수 있었다. 산행의 피로를 잊게 해 주던 어여쁜 꽃이다.
연자줏빛 싸리나무꽃을 실컷 볼 수 있었다. 산행의 피로를 잊게 해 주던 어여쁜 꽃이다. ⓒ 김연옥
그날 산행은 딱밭재로 가서 범봉을 거쳐 억산 정상에 이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일행 몇몇과 길을 잘못 들어서 범봉(962m)으로 바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 길이 가파른 편이라 꽤 힘들게 범봉에 오른 뒤 팔풍재, 깨진 바위를 지나 억산 정상에 이른 시간이 12시 20분께였다.

한눈에도 압도되는 듯한 웅장함이 느껴지던 깨진 바위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일 년만 더 있으면 천 년을 채워 용이 될 수 있었던 이무기가 있었다. 어느 날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자 탄식을 하며 달아나던 이무기가 꼬리로 억산 산봉우리를 내리쳤는데 그만 산봉우리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는 거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한이 서려 있어 그런지 깨진 바위는 가파르고 험했다.

그날 억산 산행에서 연자줏빛 싸리나무 꽃을 실컷 볼 수 있었던 것 또한 즐거웠다. 요즘에는 싸리비를 보기가 힘들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다녔던 시절에는 학교 마당을 청소할 때 싸리비로 쓸던 기억이 나서 친근한 느낌이 든다.

억산 정상에서.
억산 정상에서. ⓒ 김연옥

ⓒ 김연옥
우리 일행은 억산 정상에서 맛있는 도시락을 먹었다. 나는 그날 늦잠을 잔 탓에 도시락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도 여기저기에서 챙겨 주어 생각지 않게 음식을 얻어 먹는 즐거움도 있었다. 그리고 오후 1시께 하산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쩌다 일행과 떨어져 버렸다.

처음엔 느긋한 기분으로 걸어가다 등산객들이 점점 보이지 않자 갑자기 무섭고 불안해졌다. 한참 동안 그렇게 정신없이 혼자서 갔는데 수리봉(765m) 정상 가까이에서 사람들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그때가 2시 40분께. 그들은 나와 반대로 억산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너무도 반가웠다.

수리봉 정상에서. 사람이 산보다 더 아름다웠다.
수리봉 정상에서. 사람이 산보다 더 아름다웠다. ⓒ 김연옥
거기서 석골사까지 다시 돌아가는데 35분 남짓 걸렸다. 나는 시원한 석골폭포 앞에 도착해서 한참 앉아 있었다. 일상의 번잡함과 산행의 피곤함으로 축 늘어진 무거운 내 마음이 점차 환해지는 듯했다.

석골폭포 앞에서 휴식을 하는 사람들. 마음도, 몸도 가벼워지리라.
석골폭포 앞에서 휴식을 하는 사람들. 마음도, 몸도 가벼워지리라. ⓒ 김연옥

#밀양시#억산#폭포#산행#이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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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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