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양대 앞 카페에서 앨버트와 인터뷰를 했다
한양대 앞 카페에서 앨버트와 인터뷰를 했다 ⓒ 차예지
- 앨버트, 이번 학기 버거킹 교수님(우리가 같이 듣는 수업의 교수님의 별명이다) 수업 성적 잘 나왔어요? 뭐 나왔어?
"응, 잘 나왔어. A+."

- 와, 진짜? 좋겠다!
"그런데 한국은 대학에서 점수를 너무 잘 주잖아. 여기 A는 미국 A와 다른 것 같아. 미국에서 B가 평균이고 A는 매우 잘한 거야. 그리고 A+는 석사 2년 동안 손으로 꼽을 정도지. 예전에 입학처에서 아르바이트 했었는데 한국 대학에서 보낸 성적표는 다 A 밖에 없더라고. 다 상위 2%에 추천서는 온통 칭찬 일색이라 미국 대학에서 한국 대학 성적을 믿을 수 없어해."

- 그래요? 미국 대학생들은 되게 '빡세게' 공부하나 보다.
"맞아. 나는 미국에서 학부 때 하루에 4~5시간 공부했어. 대학원생일 때는 하루에 거의 천 페이지 정도 교과서를 읽느라고 너무 고생했어.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공부를 적게 시키는 것 같아. 한국이 발전하려면 대학과 대학원 학생들을 좀 더 공부시켜야 하지 않을까?"

- 그 대신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미국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하잖아요. 아이비리그 가는 얘들도 서울대 가는 얘들보다 덜 공부하지 않아요? 앨버트는 아이비리그인 펜실베니아대 나왔죠? 고등학교 때 밤에 몇 시에 잤어요?
"난 새벽 2시나 3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났어. 미국도 일류 대학 가려면 열심히 해야 해. 게다가 미국은 공부는 기본이고 리더십과 품성, 그리고 스포츠 능력까지 보니까 팔방미인이 되어야 해. 난 동아리 4개의 회장에다 동아리 3개 부회장이었어."

- 전에 우리나라 민사고 학생들이 과외활동을 중요시 여기는 미국 대학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난 미국 얘들은 시간이 많아서 동아리 할 시간이 있는지 알았는데.
"아니야. 공부랑 과외활동을 다 하려면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어."

- 미국은 SAT(미국수학능력시험) 보고 대학 들어가죠? 앨버트는 몇 점 받았어요?
"음… 1600점 만점에 내 점수는 1570점이었어."

- 굉장하다. 고등학교 때 전교 일등이었나봐?
"아니야. 난 전교 3, 4등 정도 했어. 고등학교가 백인들 많이 다니는 좋은 지역에 있는 학교였어."

- 부모님이 무척 자랑스러워 하셨겠어요. 하버드도 합격했었다면서요?
"부모님이 이 나라에서 꼭 성공해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어. 백인들보다 성공하려면 엄청나게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지. 하버드도 합격했는데 하버드는 일년에 2만 달러씩 내야 한다고 하더라고. 일년에 2만 달러면 이자까지 합치면 졸업할 때까지 돈이 엄청 들잖아.

유펜은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어. 그래서 부모님은 하버드 가라고 하셨는데 유펜으로 왔어. 지금 생각하면 유펜으로 오길 잘한 것 같아. 하버드 나온 친구들이 하버드는 학부보다는 대학원에 지원을 더 많이 해준다 하더라고.

유펜의 분위기는 고대랑 비슷한 것 같아. 프린스턴은 전통적으로 부잣집 얘들이 많고 예일은 와스프(WASP:백인중산층이자 미국 주류층) 출신이 많지. 부시 대통령 같은 사람 말이야. '오 저런 가난한 사람들 좀 봐'(Oh, look at the poor people) 이런 류의."

- 부모님은 어떻게 미국에 이민 오시게 되었나요?
"어머니는 경희대 간호대를 졸업하시고 서울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시다가 존스 홉킨스 의대 병원 간호사로 미국에 오셨어. 아버지는 한양대 경영대 나오시고 미국에서 회사 다니시다가 그만두고 사업을 하셔(이날 우리는 앨버트 아버지의 모교인 한양대를 구경하러 갔었다). 어머니가 한국에 잠깐 들어오셨을 때 아버지를 만나서 두 분이 미국에서 함께 사시게 되었지."

- 동생 있죠? 동생은 뭐해요?
"남동생은 대학생이야.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에 다니다 조지아공대로 옮겼어."

- 동생도 공부를 잘하셨나봐요(조지아공대는 미국 공대 순위 중 두 번째에 오른 학교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학벌이 별로 안 중요하다고 하던데 정말이에요?
"좋은 학교를 나오면 회사에 들어갈 때 유리하지. 하지만 안 좋은 학교를 나오면 '저것도 학교냐'라고 말하는 한국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야. 미국 대학생들은 자기 학교 이름이 써 있는 티셔츠를 많이 입는데 그건 사람들은 모두 다른 능력이 있으니까 최선을 다했으면 우리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앨버트가 졸업한 펜실베니아대
앨버트가 졸업한 펜실베니아대 ⓒ www.upeen.edu
- 그렇군요. 미국에는 기부입학제가 있죠? 그것 공평하지 않은 제도 아닌가요? 예전에 학교 수업 시간에 기부입학제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 교수님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반대했었어요.
"하지만 그 기부금으로 다른 학생들 장학금을 줄 수 있잖아. 미국의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우리 학교 같은 경우 부모님과 내가 얼마나 등록금을 낼 수 있는지를 학교에 알려주면 학교와 정부에서 나머지 돈을 보조해줘."

- 그럼 만약 앨버트는 집이 부자라 등록금을 다 내고 나는 집이 가난해서 등록금을 10%만 내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닌가요?
"등록금을 다 낼 수 있을 정도의 부자들은 어차피 돈이 많으니까 그런 것 별로 신경 안 써. 그리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사실 아이비리그 학교들 같은 경우에는 학교가 돈이 넘쳐. 유펜 같은 경우도 60~70억 달러가 학교 돈이고 예일은 24억 달러, 하버드는 30억 달러나 있거든. 등록금 같은 거 안 받아도 될 정도지."

- 그런데 기부입학으로 들어 온 얘들은 티가 나나요?
"응, 티나. 예전에 수업 시간이 이런 일이 있었어. 교수님이 수업 하면서 하루에 1달러도 못 벌어서 밥도 못 사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하니까 어떤 여학생이 질문을 하는 거야. 돈이 없으면 신용카드를 쓰지 않으면 되지 않나고! 학생들 모두 어이 없어 했지."

- 완전 마리 앙투아네트네요.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냐고 하던.
"그 얘는 큰 회사 CEO 딸이라던데. 200만 달러를 아버지가 학교에 기부해서 새로운 단과대학을 만들어준다나. 학교에 부자가 많기는 하지만 부자인데도 공부 잘하는 사람이 더 많아. 99%는 똑똑한 사람들이고 1% 정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지.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기브 앤 테이크니까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이 내는 돈으로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유명한 교수들을 데려오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아버지의 모교인 한양대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앨버트
아버지의 모교인 한양대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앨버트 ⓒ 차예지
- 그렇군요. 앨버트는 한국에 온 게 교환학생으로 온 게 처음이었어요? 왜 한국에 오게 되었나요?
"작년 6월 23일에 한국에 왔는데(앨버트는 한국에 들어온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여름방학 때 한 달 정도만 있다가 돌아가곤 했어. 서울에 할머니가 계시거든. 한국이 재미있는(interesting) 곳이라고 생각해서 오게 됐어.

북한 핵문제가 진행중이고 이웃의 중국은 떠오르는 강대국이잖아. 또 일본은 이미 세계의 강대국이고 미국과 일본이 서로 중국을 자기 세력 안에 넣으려고 하잖아. 그래서 한국이 중요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미국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르거든. 그리고 백인들은 아무리 한국에서 공부해도 한국을 진실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고대에 오게 된 건 다니고 있는 학교와 교환학생 협정이 맺어져 있어서 오게 된 거고. 고려대 국제대학원 팸플릿에 '미래의 리더들이 기다리고 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어. 그런데 한국에 막 와서는 첫 인상이 별로였어. 버스나 지하철 탈 때 치고 가면서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하더라고. 그런데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곧 떠나려니 아쉽다."

- 한국에서는 영어로 말하면 많이 쳐다보잖아요. 신경 쓰이지는 않았어요?(사실 내가 앨버트랑 영어로 얘기하면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괜히 주변이 신경 쓰였다) 한국말 못해서 어려운 점은요?
"아니, 별로 신경 쓰이진 않았어. 학교에서는 직원들이 대부분 영어를 잘 알아듣고 모르면 내가 한국말 섞어서 하면 되니까 별로 어려운 점은 없었어."

- 한국말은 집에서 배웠나요?
"아니. 우리 집에서는 부모님이 한국말을 따로 가르쳐주시지 않았어. 부모님이 미국에서 적응하시려는 생각에 영어를 한국말보다 우선시 하셨던 것 같아. 하지만 두 분은 주로 한국말로 이야기하시니까 부모님 얘기하시는 것을 듣거나 한국어 도우미(conversation partner)나 여자친구에게 배웠지."

- 언어 배우는 데는 이성친구 사귀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더라고요. 어학연수 할 때 보면 외국인 이성친구 있는 얘들이 말이 참 빨리 늘던데요.
"맞아. 그래서 내 여자친구도 처음에는 영어를 잘 못했는데 나중에 영어가 많이 늘었어.(웃음)"

-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전에 어떤 주한미군이 자신이 한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느꼈을 때 중 하나가 '이유 없이 일본이 싫어졌을 때'라고 하던데 앨버트는 어때요?
"난 특별히 일본을 싫어하지 않아. 주변에 일본인 친구도 많고."

- 한국 역사 배운 적 있어요?
"응. 있어."

- 그러면 일본이 식민지 시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에 대해 알겠네요? 최근에 마이크 혼다라는 일본계 미국인 의원이 미국 의회에 위안부 문제 결의안을 제기한 것 알고 있어요?
"그것은 물론 일본이 잘못한 거지. 잘못한 것은 잘못한 거야. 그런데 제3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과거에 묶여서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

(나는 이 부분에서 약간 생각의 차이를 느꼈다. 나는 같은 한국인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미국인'으로서 교육받은 앨버트는 미국인의 시선에서 한국을 보고 있었다.)

- 이번 8월에 졸업이죠? 졸업 후에는 뭐할 계획이에요?
"지금은 방학 동안 영어 보조 교사로 일하고 있고 이 일이 끝나면 미국으로 돌아가서 펜타곤(미국 국방부)에서 일하고 싶어."

- 완전 멋진데요. 저 나중에 아메리칸 대학으로 교환학생 지원할 건데 가게 되면 우리 자주 봐요.
"그래, 그러자."

우리는 2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혹은 잘못 알고 있던 미국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풀릴 수 있던 자리였다. 비록 그가 국적이 미국이고 미국에서 자랐지만 교포가 아닌 '미국인'이었다면 이렇게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것 같았다.

인터뷰가 끝난 후 앨버트는 미국인 친구들이 시외버스 타는 것을 도와준다며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펜타곤에서 일하고 싶다는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빌며 우리는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고려대#교환학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