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번 주는 상주에 갔다 오자!""상주? …. 좋지. 그런데 자전거로 가기에 너무 멀지 않을까?""내가 지도로 알아보니까 생각보다 멀지 않더라고."
남편이 어느새 지도를 펼쳐보이며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하나하나 짚어주어요. 경북 구미에서 '상주'하면 딱히 먼 길은 아니지만,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니 가장 가깝고 위험하지 않은 길을 잘 골라야 합니다. 여기서 상주까지 가는 길은 여러 군데가 있어요.
선산, 무을을 거쳐 옥산, 청리를 지나가는 길이 있고, 선산 대원저수지를 거쳐 옥성면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구미시 해평면을 지나 낙동을 거쳐 가는 길도 있어요. 몇 달 앞서 이오덕 선생님이 일하셨던 청리까지는 가본 적이 있어 이번에는 낙동을 거쳐 가는 길을 골랐어요.상주에 닿는 대로 거기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경천대'와 그 둘레를 살펴보려고 마음먹고 지난 8일,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어요.
비가 올까봐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잔뜩 흐리기만 할 뿐이었어요.우리가 자주 다녔던 해평면 일선리 앞을 지나 도개면으로 들어섰는데, 길이 매우 한가로워요. 지금 이 둘레에 곧게 뻗은 새 길이 나서 상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여기로 가요. 자동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대요.
그러나 우리는 풍경도 구경하면서 위험하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갈 수 있는 옛길을 따라서 가요.틈틈이 논과 밭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면 낯선 사람을 보고 조금은 굳은 듯하다가도 바로 환하게 웃으세요.작은 마을을 몇 군데 거쳐서 지나가는데, 아늑하고 푸근한 시골 풍경에 자꾸만 눈길이 가요. 갈 길이 멀어서 빨리 가려고 애쓰지만, 이런 풍경 때문에 조금씩 늦춰지기도 하지요. 그래도 무척 즐겁고 신이 나요.그다지 높지 않은 오르막을 올라와 고갯마루에 서니, '상주시'라는 알림판이 보여요.
"야호! 이제 드디어 상주다!"
이 길로 그대로 가면 의성군으로 가고, 왼쪽 낙동강 위에 걸쳐 있는 '낙단교'를 지나면 곧장 상주로 갈 수 있어요.
"잠깐 쉬었다 가자!"
상주와 의성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잠깐 쉬려고 내렸는데, 어디선가 자장면 냄새가 솔솔 나요.
"우리 짜장면 한 그릇 먹고 갈까?"
"캬! 맛있겠다. 냄새가 사람 잡네."
곁을 둘러보니, '옛날큰손짜장'이라 쓴 간판이 보여요.
"가만, 지금 몇 시지?""음 10시 반, 왜? 배고파?"
"지금까지 몰랐는데 여기 오니까 배가 고프네. 우리 짜장면 한 그릇 먹고 갈까?"
"벌써?……."
하긴 아침을 여섯 시에 먹었으니 배고플 때도 되었어요.
"에이, 모르겠다. 먹고 가자! 이제 여기 다리만 건너면 금방 닿을 거니까 배부터 채우자."
참말로 우스워요. 아침을 아무리 일찍 먹었어도 그렇지 오전 열 시 반에 점심을 먹다니요. 하긴 자장면은 간식(?)으로도 먹으니까!
"우와! 진짜 맛있다. 손짜장이라더니 참말이네? 면발도 쫄깃쫄깃하고 무엇보다 느끼하지 않아서 좋다.""참말로 맛있다.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짜장면 가운데 가장 맛있다!"
자장면 한 그릇을 잠깐 사이에 모두 비웠어요. 배가 고픈 탓도 있겠지만 참말 맛있어요.자, 이제 다시 서둘러야 해요. 오면서 정겨운 풍경을 만나면 멈추어 구경하고, 사진 찍고, 이젠 자장면까지 먹고, 어느 세월에 상주에 닿겠는가? 또다시 부지런히 밟아 갑니다.'낙단교'라는 다리가 놓이기 앞서는 여기가 '낙동 나루터'였다고 해요. 지금은 낚시꾼만 몇몇이 보여요. 여기를 지나 고갯마루를 두어 번 넘어서다 보니 이윽고 상주에 들어왔어요. '경천대 국민관광지'라는 알림판이 길을 벗어날 때마다 보여서 찾기가 무척 쉬워요. 한 5km쯤 더 들어갔을까요? 웬 돌탑이 눈에 띄어요.
아니! 여기도 왕릉이 있었네?
"와! 이거 뭐지?"
신이 나서 달려가니 바로 '화달리삼층석탑'(보물117호)이에요. 통일신라 때 탑이라고 하는데, 아주 남다른 게 하나 있어요. 돌탑 몸 돌에 불상(석조여래좌상)이 기대어 있는데, 희한하게 머리가 없어요. 아무리 불상이라지만 어쩌다가 저런 모습으로 앉았을까 싶어 안쓰럽기까지 했어요. 게다가 탑도 모서리가 많이 부서졌고 금이 가 있기도 해요.이 돌탑 곁으로 돌아가니 커다란 무덤이 있어요.
"어! 여기도 무슨 왕릉인가?"
다가가서 살펴보니, '사벌왕릉'이라고 해요.아하! 맞았어요. 여기도 얼마 앞서 다녀왔던 의성에서 본 조문국의 '경덕왕릉'처럼 '사벌국'이란 작은 나라를 다스렸던 왕의 무덤이었어요. 상산 박씨의 시조인 박언창(신라 경명왕의 여덟 왕자 가운데 다섯째)이 사벌국을 다스렸던 왕이라네요. 왕릉 곁에는 사벌왕을 기리는 신도비도 있어요.
정기룡 장군의 얼이 서려 있는 '경천대'
왕릉을 지나 조금 더 가니, 우리가 보고 싶었던 경천대가 바로 보여요. 일요일이라 그런지 식구들과 손잡고 함께 나온 이들이 많았어요.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대에는 아이들이 신이 나서 무척 즐거워해요.작은 놀이공원도 있고, 야영장도 따로 있어요. 또 옛집 풍경을 그대로 본떠 놓은 드라마 촬영장도 아주 볼만 해요.무엇보다 이곳은 낙동강을 발 아래에 둔 절벽이 매우 멋스러워요. 바로 '육지의 이순신'이라고 하는 '정기룡 장군'이 하늘에서 멋진 말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해요.
'경천대'에서는 놓치면 안 되는 멋진 풍경이 하나 있어요. 바로 옥주봉 전망대에서 낙동강을 내려다보면, 절벽과 어우러진 아주 넓은 들판이 있는데 꽤 멋스럽고 아름다워요. 꼭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봐야 제 맛이에요.여길 가려면, 돌탑과 푸른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돌계단을 올라가면 되는데 우리는 자전거로 가야 해서 다른 길을 찾았더니, 마침 '산악자전거길'이 따로 있더군요.
자전거 도시답게 산에도 자전거 타기에 아주 좋은 길이 많이 있어요. 이런 관광지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즐길 수 있다는 게 퍽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까지 했답니다. 산길을 따라가면 제법 오르막이라서 힘들기는 해도 꼭대기에서 보는 풍경에 가슴이 뻥 뚫리고 시원하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몇 안 된다고 하니까 여러분들도 꼭 한 번 가보세요.구미와도 가까운 상주에서 보낸 하루가 퍽 즐거웠습니다. 오고 가며 만나는 여러 풍경들이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예요. 더구나 마을마다 숨어 있는 얘깃거리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매우 신나고 값진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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