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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가 시원찮아서 인지 아침과 별 차이없이 아직도 수북이 쌓인 두부와 도토리묵 등이 놓인 좌판
개시가 시원찮아서 인지 아침과 별 차이없이 아직도 수북이 쌓인 두부와 도토리묵 등이 놓인 좌판 ⓒ 김정애
어젯밤부터 장맛비가 내리더니 오늘(20일)도 종일 오려나보다. 아침 일찍 볼 일이 있어 나갔다 돌아오는 길, 역을 막 빠져나오려는데 방금 나오신 듯 두부 판을 정리하고 계신 아줌마와 눈이 마주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여느 때처럼 가게 앞으로 다가갔다.

지하철 7호선 도봉산역 계단 옆에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아주 작은 노점상이 나의 단골가게다. 몇 가지 안 되는 품목... 도토리묵, 청국장, 칼국수, 맷돌로 갈은 손두부가 전부다. 내가 사는 것은 늘 두 식구 먹을 1000원짜리 두부 한 모. 단골이라 해도 아줌마와 충분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 서로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두부로 인해 낯이 익어 눈이 마주치면 서로 반가운 미소를 보낸다.

아직 개시를 못했는지 두부 판은 떼어낸 흔적이 없었다. "방금 나오셨나 봐요? 1000원짜리 한 모만 주세요"하자 초등학교 때 필수품이었던 투명 플라스틱 30cm 자를 두부 판에 대고 행여 비뚤어질까봐 숨죽여가며 조심조심 칼로 줄을 그으셨다. 그 모습이 어찌나 순수하고 아름답던지...

흐트러짐 없이 네모반듯하게 잘려진 두부가 마치 아줌마 마음을 닮은 듯 예뻐 보였다. 가벼운 장애로 인해 몸짓은 다소 부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손님을 대하는 서비스 정신은 프로급이다. 1000원짜리를 사든 2000원짜리를 사든 누구에게나 늘 행복한 미소를 덤으로 얹어주신다.

"오늘 제가 개시를 하는 거 같은데 큰 걸로 할 걸 그랬나 봐요~"
"아유~ 별말씀을 다 하시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몇 번을 고개 숙여 인사를 하시며 까만 봉지를 건네주신다.

오늘처럼 아줌마의 환한 미소와 채 식지 않은 따뜻한 두부를 받아들고 돌아올 때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뭔가를 가슴 가득 안은 듯 작은 행복이 온몸으로 퍼져 옴을 느낀다.

그런데 내가 첫손님이었다는 게 자꾸 마음에 걸린다. 개시손님에 대한 징크스를 깨야 할 텐데... 궂은비는 그칠 줄 모르고 종일 내린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얼마나 파셨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운동도 할 겸 도봉산역을 향해 걸었다.

저만치 아줌마 모습이 보이고 가까이 갈수록 좌판이 다른 날에 비해 커 보인다. 순간 가슴이 뜨끔~! 아니나 다를까 개시가 시원찮아서였는지 아직도 수북이 쌓인 두부며 도토리묵을 보니 내 잘못인양 걱정스러웠다.

"아줌마~ 아직 많이 남은 걸 보니 손님이 적었나 봐요~ 개시가 좋았어야 하는 건데..."
"아유~ 별소리를 다 하네~ 걱정이 돼서 나왔느냐"며 또 활짝 웃으신다.
"아줌마~ 저 도토리묵 한 모만 주세요." 일부러 팔아주려거든 관두라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아니 예요~ 맛있게 생겨서요~"
"그럼 제일 큰 걸로 줘야지"하며 정말 제일 커 보이는 걸로 봉지에 담아주신다.

"맛있게 잘 먹을게요~ 많이 파세요~"

인사를 남기고 어스름 밤길에 우산도 없이 안개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내내 아줌마의 귀갓길 손수레가 가벼워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두부#손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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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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