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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만큼 같이 늙어버린 아버지의 사진기
ⓒ 정희웅

"집에서 틀어박혀 공부할 것 아니면 남자새끼가 나가서 운동이라도 좀 해야지."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항상 나를 보곤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제 밤새 게임한다고 눈이 벌겋다는 영화 <살인의 추억> 송강호의 대사와 같은 면박도 늘 따라다녔다.

그때에 아버지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당당함과 떳떳함이 가득했다. 비록 몇 달 째 생활비도 못 벌어다 주시고, 그로인해 어머니와 늘 다퉜어도 당신 특유에 허풍만은 여전하셨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조금만 기다리면 큰돈을 벌어주시겠다는 그 말씀을 나는 사실 단 한 번도 믿어본 적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난 당신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을 부끄러워 한 적도 단 한번 없었다.

스무 살. 아들놈이 머리가 커져 대학에 들어가고 그럴수록 당신에 어깨도 무거워 질 때쯤, 어느 순간 당신이 집에서 하시는 일이라곤 TV를 보시는 일 밖에 없고 모든 경제적 부담을 어머니가 감당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 태어나 처음으로 당신에게 격렬하게 반항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당신은 여전히 나에겐 넘지 못할 벽이었으며 동시에 든든한 기둥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신은 자신의 인생이 떳떳했으며, 그러기에 당신은 나에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가 충만하셨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시는 요구는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 옳은 일이었으며, 동시에 신상필벌 그대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군 생활하면서 배운 담배를 내 방에서 몰래 피다가 당신에게 처음 들켰을 때, 이 새끼 몸에 나쁜 담배 따위를 핀다고 나에게 고등학교 그 시절처럼 나에게 면박을 주셨고, 20년을 넘게 담배를 피었던 당신의 금연 경험을 비교하며 담배에 폐해를 알리는 -더 정확히는 KT&G의 상술을 비판하는- 모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시고는 나에게 강력하게 금연을 권했다.

나는 아직까지 자식 놈에게 이렇게나 큰소리를 치시는 당신이 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나에게 최소한의 옳은 길을 인도하는 그 모습이 고마웠다.

시간은 많은 것을 앗아간다

어제 끊으셨던 담배를 다시 문 당신의 뒷모습을 다시 보았을 때, 나는 처음 그 생각이 들었다. 하얀 러닝셔츠에 축 쳐진 어깨를 하신채로 식구들의 눈치를 봐가며 하얀 연기 사이로 뻐끔뻐끔 허공을 바라보시던 당신의 모습은 못내 서러웠다.

나는 그 모습을 외면하려 자꾸만 눈을 돌렸지만, 당신은 여전히 피우시던 담배 필터 끝까지 태우셨으며 그 이후 식구들의 눈칫밥이 두려우신지 일요일에도 하릴없이 집을 나섰다.

내가 당신의 그 뒷모습에서 느낀 서러움은 비단 무거운 세월에 짐 속에 굴복해 버린 당신의 의지력 때문도 아니고, 당당하던 당신의 허풍을 더 이상 듣지 못한다는 이유도 아니었다. 자식에게 금연에 의지를 그렇게나 강력하게 말씀하시고는 당신이 먼저 나에게 보여준 꺾인 모습이 못내 미안하실까봐 그렇게나 당신의 뒷모습이 서러웠나 보다.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의 이름은 언제나 저에게 복잡한 심경을 불러일으킵니다. 언젠가 세월이 더 흘러 더 이상 당신이 저를 나무라시는 큰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때가 되어도, 그때도 당신이 저에게 ‘사내새끼, 담배 피지 말고, 나가서 운동이라도 좀 해라!’ 하는 소리를 듣고 싶은 건, 저의 욕심일까요.

비록 어깨는 쳐지고 어느새 머리에 흰머리가 나셔도, 못난 아들 저에게만은 언제나 옳은 일을 윽박지르듯 내 뱉으시는 당신으로 영원히 남아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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