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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 수레에 묻어
내 청춘 수레에 묻어 ⓒ 김대갑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저 자리에서 다문다문 찾아올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 서푼 벌이라도 조금씩 벌어서 집에서 기다릴 손자나 할멈에게 과자나 쌀을 사 주실지도 모른다. 도대체 할아버지는 저 수레를 얼마 동안이나 사용했을까? 한눈에 보아도 수십 년은 족히 됨직한 수레였다. 어쩌면 저 수레는 참 고마운 수레일지도 모른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에 그나마 일용할 양식이라도 제공해주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와 헤어지면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머리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에 나오는 어떤 장면 하나가 스치듯이 떠오른다.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그 연작 소설의 주인공은 난장이였고, 난장이의 직업은 수도설비 기능공이었다. 몸짓에 비해 너무나도 큰 배낭을 힘겹게 끌며 난장이는 각 집을 돌아다니며 수도설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난장이를 별로 믿지 않았다. 그 작고 가냘픈 몸으로 무슨 일을 하느냐며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난장이는 훌륭한 설비기능공이었다. 잘 안 나오는 수도꼭지를 간단한 기구 하나로 콸콸 나오게 만들었다. 그 얼마나 신기한지. 막혔던 체증이 한꺼번에 쑥 내려가는 느낌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다양한 숫돌과 우산대의 만남
다양한 숫돌과 우산대의 만남 ⓒ 김대갑
저 할아버지도 그런 시원함을 사람들에게 안겨줄 것이다. 칼끝이 무뎌져 무나 고기를 자를 때 힘들게 고생하던 주부들의 노고를 일거에 해결해 줄 것이다. 숫돌에 간 칼날로 가족들에게 줄 음식을 썩썩 자를 때의 쾌감이란!

우리 어릴 때의 동네 풍경은 참 소박했다. 아침에는 두부 장수들이 작은 종을 딸랑거리며 두부나 콩나물을 팔았다. 그보다 더 이른 시절에는 재첩 국 장수가 '재첩 국 사이소'를 외치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오전 나절에는 개나 고양이를 사러 오는 개장수들이 '개 팔아라, 고양이도 산다'를 외치며 골목을 지나다녔다. 오후가 되면 소금 장수의 '소금 사시요잉'이라는 외침이 담 너머로 들려왔다. 그리고 비가 오기 전이나 비 갠 오후에는 우산기술자들이 수레를 끌며 우산을 고쳐주겠다고 외쳤다. 참 정겹고 그리운 외침들. 그 많은 외침들은 어느새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저 할아버지는 참 재주도 많다. 칼도 갈 수 있고, 우산도 척척 고치니 말이다. 칼과 우산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지만 쇠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가능한 기술 결합이겠지.

다시금 그 난장이를 떠올린다. 작은 목소리로 골목을 돌아다니며 '수도꼭지 고쳐요'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이 풍경화처럼 뇌세포를 자극한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대의 언어들, 소박한 사람들의 바람을 담았던 외침들, 그리고 좁은 골목길. 그 추억의 언어를 생각하며 비 갠 오후의 하늘을 쳐다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칼갈이#난장이가 쏘아올린 공#난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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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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