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앞으로 다가온 일본 참의원 선거는 아베 신조 정권이 '얼마나 덜 지느냐'에 초점이 맞춰지는 양상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이미 떠나, 연립 여당이 그나마 아베 정권 유지가 가능할 정도의 의석을 건지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아베 정권 유지가 가능할 정도의 의석'이란 과연 몇 석을 말할까? 그게 어디에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분히 정치적 기준이다.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 총리 결정권은 중의원에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참의원 선거에서 아무리 대패했더라도 총리가 퇴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치가 반드시 이런 이론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에 통하지 않는 당수는 매몰차게 내침을 당하는 것이 정치의 속성이다.
전례도 있다. 1998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세제개혁에 대한 발언 때문에 자민당이 참패하자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퇴진했다. 이에 앞서 1989년 참의원 선거 때도 '리쿠르트 사건' 등의 영향으로 자민당 의석이 절반으로 줄자 우노 소스케 총리가 퇴진했다. 선거 후 당내의 거센 압력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아베 총리는 미리 '선긋기'에 열심이다. "선거에서 져도 퇴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권의 '입'인 시오자키 스히사 관방장관은 24일 "야당에 패배하더라도 아베 총리가 퇴진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나카가와 히데나오 자민당 간사장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총리가 그만두거나 남거나 하는 시뮬레이션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거들었다.
아베의 뒤를 이를 '차기 총리후보'가 뚜렷이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버티기' 자세에 벌써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은 정치가 과연 지금 그의 계산대로 움직여줄까?
'버티기' 들어간 아베... 그러나 정치는 생물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승패를 말할 때는 기존 의석을 유지하느냐가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이번에 개선 대상인 참의원 121석 중 연립여당이 차지하고 있던 의석은 절반이 훨씬 넘는 76석(자민 64, 공명 12)이다. 2001년 선거에서 당시 막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인기에 힘입어 여당이 이례적인 대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연립여당이 76석을 유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꿈도 꿀 수 없었다.
그 다음으로 승패의 기준은 절반의 '비개선' 의석을 포함한 참의원 전체에서의 과반수 확보라 할 수 있다. 연립여당은 비개선 의석에서 58석(자민 47, 공명 11)을 차지하고 있기 대문에 참의원 과반수를 확보하려면 이번 선거에서 64석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목표 역시 이미 멀어진 것으로 여론조사상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선거만 따져서 과반수인 61석 이상을 확보한다면 그나마 패배는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공명당이 현재 보유한 12석을 모두 다시 차지한다고 가정하면 자민당은 49석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공명당의 당선자 수가 줄어들면 자민당이 획득해야 하는 의석 수는 그만큼 늘어난다.
하지만 각 언론기관의 여론조사에서 자민당의 예상 당선자 수는 이미 선거전 중반부터 49석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 당선자 수가 98년 하시모토 내각 퇴진 당시의 44석 밑으로 내려간다면 아베 정권은 유지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강하다.
그런데 실제로 금주 들어 공표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44석 이하'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40석도 얻기 힘들 것이란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투표의향 조사에서 자민당과 민주당간 격차는 선거구와 비례대표 모두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벌어지는 경향을 보여, 아베 정권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지지율, 60%에서 20%대로 추락한 이유는
고이즈미 전 총리의 높은 인기를 이어받아 취임 초기 60%대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던 아베 정권이 불과 10개월 만에 이렇게까지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전임 총리와의 차별성을 엉뚱한 데서 찾으려 했다는 데 있다. 전임자와 차별성을 보여야 하는 것은 권력자의 숙명이다. 그러나 현명한 지도자라면 '계승'할 점과 '극복'할 점을 정확히 구분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베 총리가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중국과 한국을 선택, 고이즈미 총리 시대에 꼬진 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시도까지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내정에서는 차별화를 시도하는 사안마다 패착이었다.
고이즈미 정권 시절 우정민영화에 반대, '반 개혁세력'으로 몰려 자민당에서 쫓겨났던 국회의원들을 복당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자민당을 변화시키고, 정부를 변화시키고, 일본을 변화시킨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구 정치질서와 분명한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이런 자세를 '계승'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구태의연한 본래의 자민당 정치로 되돌아갔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연금기록 관리 문제의 경우 사실 지금 불거졌을 뿐이지 부실한 행정은 역대 정권에서 누적돼왔던 일이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이 정부 개혁에 대한 명확한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큰 문제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아베 정권 퇴진하면 '단명 정권' 이어질 가능성도
두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은 아베 정권이 국민의 관심과 요구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민의 관심은 연금문제와 세제개혁, 양극화 해소와 같은 생활과 밀접한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아베 정권은 그 동안 헌법개정과, 교육기본법 제정 같은 이데올로기적 사안에 주로 힘을 쏟아왔다.
뒤늦게 이를 깨닫고 선거유세에서 개헌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 등 전략을 바꿨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이미 떠난 뒤였다.
마지막으로 인사의 잘못을 들 수 있다. 정치자금의 부정한 사용이 문제가 되자 지난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쓰오카 도시카쓰 전 농림수산상을 비롯, 이달 초 이른바 '원폭투하 정당화 발언'으로 물러난 규마 후미오 전 방위상까지, 아베 총리가 요직에 등용한 인사들의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잡음은 단지 우연의 연속이 아니라, 유난히 친소관계를 중시하는 아베 총리의 스타일 때문에 자신과 가까운 우익 성향의 인사들을 대거 요직에 등용하다 보니 일어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약 자민당이 충격적인 패배를 해 아베 정권이 퇴진하게 된다면 향후 일본 정치는 90년대 초와 같이 '단명 정권'이 이어지는 혼란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 고이즈미와 아베처럼 높은 지지를 받는 지도자는 현재로선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29일 참의원 선거는 그런 의미에서 2000년대 후반 일본 정치의 진로를 결정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그 기준은 일단 자민당이 얻을 의석 수에 달려있다.
| | 참의원 선거 어떻게 치러지나? | | | 일본 국회 구성과 선거제도 | | | |
| | | ▲ 일본 참의원 의석분포 | ⓒ한은희 | 일본은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중의원이 의원정원 480명에 임기 4년. 참의원은 242명 정원에 임기 6년으로 구성된다.
법률안이나 각종 안건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중의원과 참의원의 일치된 결의가 필요하다. 특히 법률안의 경우에는 참의원 동의가 없으면 국회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총리 지명과 예산안 처리, 조약 비준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중의원 우위'를 인정하는 제도를 갖고 있다.
법률안의 경우 중의원에서 먼저 심의해 가결되면 참의원으로 보내진다. 참의원이 이를 가결하면 법률로써 성립하지만, 만약 내용을 수정할 경우에는 중의원으로 되돌려진다.
여기서 중의원이 수정안에 동의하면 법률로써 성립하지만, 양원의 결의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양원협의회'를 열어 조정을 거치게 된다.
끝내 양원의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중의원에서 출석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는 방법도 있으나 현실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총리 지명과 예산안, 조약의 경우에는 양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참의원이 일정 기간 내에 의결을 하지 않을 경우 중의원 결의가 곧바로 국회 전체 결의로 인정된다.
총리가 해산하면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중의원과 달리 참의원 의원들은 6년 임기가 보장된다. 중의원 해산 기간에도 국정운영이 누수 없이 이뤄지도록 한 장치이다. 참의원은 3년마다 절반씩 새로 뽑기 때문에 오는 29일 선거에서 선출할 의원은 총 121명이다.
이중 73명을 선거구별로 선출하고, 48명은 전국을 단일선거구로 한 정당별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선거구는 47개 광역자치행정구(都道府縣)로 나눠져, 각 선거구마다 1~5명씩 선출한다. 도쿄도에서는 가장 많은 5명을 선출하며, 29개 현은 1명씩 선출하는 소선거구다.
중ㆍ대선거구에서는 대게 주요 정당들이 의석을 고루 나눠 갖기 때문에 승패는 29개 소선거구가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참의원 비례대표 선출방식은 좀 복잡하다. 정당별로 많게는 35명까지 공인후보 명단을 내놓는데, 유권자들은 투표용지에 후보자명을 기입할 수도 있고, 정당명만 기입할 수도 있다.
후보자명 투표와 정당명 투표 수를 합친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당선자 수가 배분되며, 정당 내에서는 다득표 순으로 당선자가 결정된다. 물론 한 유권자가 선거구와 비례대표를 각기 다른 정당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중의원 선거는 완전 소선구제다. 전국을 300개 선거구로 나눠 1명씩 선출한다. 비례대표는 전국을 11개 권역으로 나눠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당선자를 결정한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