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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주 목사 저 "지금도 쓸쓸하냐?"
▲ 이현주 목사 저 "지금도 쓸쓸하냐?" ⓒ 장승현
파주에 사는 여자 후배한테서 택배가 하나 부쳐왔다. 이현주 목사의 운문산답으로 표지도 그렇고 내용도 아주 깔끔한 책이었다.

특히 요즘 내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꼭 찝어서 보냈을까? 사람이 책 선물을 받다 보면 이렇게 정서를 잘 파악해 적중하는 경우가 있고 그냥 있는 책이거나 별로 읽고 싶지도 않은 책을 선물해 책꽂이에 처박혀 버리는 수가 있다.

이 후배는 대전 살다 울산 사는 선생님한테 시집가더니 미국 가서 살다 이젠 파준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 후배였다. 함께 활동하는 어느 카페에서 스쳐지나가다 그 후배가 하는 말이,

"형, 잘 지내요? 요즘 건강은 어떻고요? 지난번 시어머니 상 당했을 때 부조 보내줘서 고마워요. 형 아프다는 이야기 듣고 찾아가지도 못하고 미안해요. 참 주소가 어떻게 돼죠? 책이나 한 권 보내드릴께요."

이 후배는 대전민청 활동을 할 때 만난 후배다. 그때 그러니까 15년이 넘은 옛날 이야기다. 그때만 해도 반독재 투쟁과 민중생존권 투쟁으로 청년운동이 활성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대중사업으로 문예운동을 하던 시절, 한남대 강당에서 문병란, 김준태, 임헌영, 이호철씨 등을 불러 민족문학 강좌를 꾸준히 진행하던 때였다. 한남대를 졸업하고 조교로 일하던 그 후배는 학교에서 강좌를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곤 했다.

그때 친하게 지내며 만나서 술도 많이 먹고 많은 이야기도 했다. 그 후배의 별명이 어린왕자인 것처럼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후배였다. 그때도 아마 나한테 <어린왕자>라는 책을 선물해준 적이 있는 것 같다. 지금 무슨 내용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 후배 때문에 그때 난 처음으로 어린왕자를 알게 되었다.

"지금도 쓸쓸하냐?"

이 책을 그 후배가 보내줘서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 보면 외로움이란 나무를 비교했다. 나무들이 저마다 홀로 서 있지만 더불어 숲을 이룬다고 했다. 나무가 홀로 서 있으니 바람이 있고 다들 홀로 외로이 서 있는 것 같지만 함께 더불어 서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쓸쓸함에 대해 손님처럼 지극정성으로 대접하라고 했다. 쓸쓸함을 떨쳐 버리거나 움켜잡으려 하지 말라고 했다. 쓸쓸함이라는 손님은 때가 되면 떠날테니까.

쓸쓸함, 이놈이 내 곁에 다가온 건 지난해 7월이었다. 집을 짓는다고 정신없이 살아왔던 나날들이었다. 그동안 난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런데 지난 1년은 정말 무서웠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나는 숨을 멈춘 듯 앞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위암 수술을 받고 죽음이라는 벽에 맞닥뜨려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 내가 지금껏 살아오고 남겨놓고 떠나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나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놔두고 떠나간다는 사실이 정리되지 않는 상념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마음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리하자. 이 세상에서의 아쉬움은 떨쳐버리고 죽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담담하게 자연사하는 것처럼 스스로의 생을 끝맺음 하자. 이렇게 정하자 마음이 더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병치레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 죽을 병에 걸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가게 되었다. 가까운 지인들과 그리고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도 나를 점점 정리해 가는 걸 보고 병이라는 고통보다도 외로움이라는 것 때문에 더욱 힘든 시간들이었다.

정말 내 곁에서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 나를 정리해 가는 걸 보았다. 아마 심약한 내 마음이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이게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죽음이라는 게 캄캄한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죽음이란 이처럼 주변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또 이 쓸쓸함이라는 놈이 또 내 곁에 다가왔다. 이젠 친구가 되자고 한다. 너무 힘들고 주변의 사람들이 더 많이 떠나가고 난 뒤 이 쓸쓸함이라는 놈은 또 나랑 친구가 되자고 한다.

이 책을 읽고 홀로 서는 법을 좀 배웠다. 왜 인간은 홀로 서야 하고 혼자 버틸 줄 알아야 하는지 이 책을 보고 느꼈다. 명상서 같기도 하고 선문답 같기도 한 이 책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김재진 시인의 시를 하나 소개해보겠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 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느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넣고

떠나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종뉴스(www.sje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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