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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기업, 단체의 CEO 및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전경련 여름 포럼에 조석래 회장이 개회인사를 하고 있다.
국내외 기업, 단체의 CEO 및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전경련 여름 포럼에 조석래 회장이 개회인사를 하고 있다. ⓒ 전경련

"국민을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

모처럼 상쾌한 소리다. 정치권 전반을 겨냥한 발언이다.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의 '쓴소리'다. 공감이 듬뿍 가는 발언은 그 뿐이 아니다. 조 회장은 다음과 같이 부르댔다.

"정치권은 특정 이익집단의 말만 듣지 않고, 국민과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도록 해야지 편향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정도경영 하라고 하는 만큼 정치도 정도정치를 해야 한다."

제주에서 열린 기업 최고경영자(CEO) 포럼 자리였다. 전국에서 온 CEO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 우리 재계가 비로소 눈을 떴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생게망게 한 일이다. 까닭을 들어보면 전혀 엉뚱하다. 정치권이 기득권 세력의 말만 듣고 국민 이익을 경시해서가 아니다. 현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을 어린애 취급한다고 비판하는 근거는 정반대다. "국민의 뜻인 시장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이란다. 신자유주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줄달음치고 있는 정치권이 그렇단다. 대체 더 어쩌란 말인가.

조 회장이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며 든 보기는 더욱 민망하다. 이랜드 사태다. 그는 "이랜드 매장을 점거해서 농성하는 것은 명백한 영업 방해"라며 법질서가 지켜지지 않아 손해 보는 게 엄청나다고 흥분했다. 전경련 회장 조석래의 눈에는 비정규직 여성들의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법 질서'만을 살천스레 내세운다.

조 회장은 "물가와 원자재가는 오르고 환율은 내려가니 마지못해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라며 "기업은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능력이 없다"고 단언했다. 과연 그러한가. 수많은 대기업이 엄청난 순이익을 내면서도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을 강제하는 현실은 무엇인가.

조석래 회장의 노골적인 대통령 선거 개입

기업은 정규직 전환 능력이 없다는 그의 주장은 일본과 비교하더라도 낯 뜨겁다. 1990년대 10년간 장기침체를 경험한 일본 기업인들은 최근 제조업을 중심으로 해외생산기지에서 회귀현상을 보이고 있다. 해외 법인 설립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까닭은 무엇인가. 국내 양질의 노동력, 원활한 부품공급이 주요 요인이다.

조 회장은 사뭇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재계에 대해서 안 좋게 얘기하고 자본을 매도하면 안 된다." 칭찬받을 일을 했는데도 매도하니까 기분이 나지 않는단다.

물론, 매도해선 안 된다. 다만 진실은 이야기해야 옳다. 조석래 같은 기업인이 전경련 회장으로 있는 한, 명토박아 둔다. 한국 경제의 내일은 암담하다.

심지어 그는 노골적으로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차기 대통령은 경제 제일주의에 입각한 경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단다. 그 또한 "바로 국민의 뜻"이란다.

누가 보더라도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다. 이명박과 박근혜 후보 사이에 벌어지는 검증공방과 관련해서도 그는 명백히 이 후보를 두남뒀다.

"그런 식으로 다 들추면 국민 중에 제대로 된 사람 없다. 우리 검증 공방에 대해 외국인들은 무리라고 얘기한다. 그런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으며 그런 사람이 행정을 제대로 하겠느냐. 이것도 우리가 졸업할 때가 됐다."

묻고 싶다. 과연 우리 국민 중에 '제대로 된 사람'이 없을까? 기가 막힐 노릇이다. 비정규직과 농민은 접어두자. 사회보장이 전혀 없는 살벌한 사회에서 중산층이 애면글면 아파트를 늘리는 일과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부동산 투기 검증은 차원이 다르다. 제대로 된 국민이 없다는 전경련 회장의 발언은 명백한 국민 모독이다.

게다가 조 회장의 친동생인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과 이명박 후보는 사돈관계다. 조 회장에게 참으로 당부하고 싶다.

"국민을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

그래서다. 정치인에 이어 경제인에게 모욕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가만 있는 국민의 인내심이 놀라울 따름이다. 하여, 하릴없이 자문해본다. 혹시 국민이 정말 어린애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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