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입장한 관객들은 마치 밴드 콘서트에 온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디션>은 6명의 출연진들이 직접 밴드의 음악을 연주하는 라이브 뮤지컬이니까요. '먹고 살기 어려운' 밴드 '복스팝'의 멤버들은 집요한 작전을 펼친 끝에 새 보컬을 영입하고 거대 콘테스트의 오디션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예기치 않은 변수가 터지며, 그들은 혼란 속으로 빠져듭니다.
스토리 구조는 사실 탄탄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허나 <칠수와 만수>에서 열연한 박정환씨를 비롯한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가 그 허물을 덮는군요. 무엇보다 이 공연이 뮤지컬임을 생각한다면, 극장에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들으며 관객들은 즐거워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귀에 '착착' 감기는 매력적인 멜로디를 들려주기 때문이죠.
<오디션> 공연이 모두 끝나도 바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세요. 이 열정적인 출연진들은 앵콜 곡을 연이어 부르며 '올 스탠딩'을 요구하고, 관객들은 그 요구에 기꺼이 응하니까요.
2. 뮤지컬 <젊음의 행진>(~8월 12일,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
제목을 보고 바로 옛날을 회상하는 이가 있나요? 그렇다면 '8090'세대겠네요. 81년부터 94년까지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뮤직 쇼프로 '젊음의 행진'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그 추억의 프로가 공연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혼자 오지 않았네요. 또 하나의 '8090'문화 아이콘인 만화 주인공 '영심이'와 함께 관객을 찾았답니다.
무대 위에는 33살이 돼버린 영심이가 '젊음의 행진' 최종 리허설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수투성이였던 영심이의 일상은 16년이 흘러도 여전한지, 공연장은 갑자기 정전이 되네요. 그와 거의 동시에 조우한 동갑내기 왕경태는 소방안전점검 공무원이 돼 있네요. 다급한 가운데에서도 경태를 만난 영심이는 옛날을 회상하고, 경태와 같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잊고 있던 애정을 싹틔웁니다.
언뜻 유치해보일 수 있는 이 공연의 가장 큰 미덕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의 영심이와 과거의 영심이를 자연스럽게 이으며, 그 과정에서 '그때 그 노래'들을 부드럽게 풀어준다는 것. 무대는 쉴 새 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데, 그 속에서도 변함없는 것들은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김완선)', '보이지 않는 사랑(신승훈)', '그대에게(무한궤도)' 등 추억의 노래들이거든요. 때로 무대 상황에 맞게 개사한 노래들이 흘러나와 객석에 웃음을 주기도 하고요.
또한 '롤러장'에서 이뤄지는 미팅이나 학교 교문 앞에서 벌어지는 '지각생 잡기 소동' 등, 영심이가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들을 보면서 아마 '8090' 관객들은 심히 공감 하실 거예요. 출연진들의 연기력과 가창력도 박수를 쳐 주기에 손색이 없네요.
3. <조선형사 홍윤식> (~9월 2일,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2관)
'금일 아침 일찍이 서대문 죽첨정 정목 금화장 근방 흙과 씨럭이 내다버리는 곳에 어린애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 동체는 간곳을 모른 채 그 두부만이 발견이 되었다….'
연극 초반부 객석으로 날아드는 신문의 기사입니다. 자, 배경을 먼저 알아두세요. 1933년, 경성 죽첨정(서울 충정로)에서 갓난아기의 머리가 발견되어 기괴한 사건에 휘말리는 경찰서의 이야기입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일본에서 온 조선인 형사 홍윤식을 중심으로, 이노우에 수사반장과 임정구 등이 범인을 색출하려 애씁니다.
작품은 중반부까지 '버디연극'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솜씨 있게 미스터리를 조율합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실 거예요. 객관적인 증거로 과학적 수사를 펼치는 홍윤식과, 반대로 심문과 의중에 집착하는 임정구의 대립은 <살인의 추억>의 서태윤-박두만을 연상케 하죠.
하지만 이 연극은 둘의 대립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또한 '누가 범인인지'를 밝혀내는 목적도 없습니다. "조선은 원래 과학적이지 못하다"며 이노우에 수사반장은 '과학적 수사방식'을 강조하죠. 허나 그가 주장하는 과학은 진정한 과학일까요?
'도까비'들이 출현하는 후반부부터 수사반장의 궤변을 관객들은 목도합니다. 드러난 진실을 외면하고 억지로 짜 맞추기 위한 과학을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미신은 정말 미신인지, 과학은 '비과학'과 공존할 수 없는 것인지…. <조선형사 홍윤식>은 객석에 거대한 물음표를 던집니다.
4. <진짜, 하운드 경위> (~8월 5일, 대학로 정보소극장)
<진짜, 하운드 경위>는 관객들에게 게임을 제안합니다. "이거 추리극 이라며? 뻔하겠네. 근데 왜 시작을 안 하지?" 객석에서 속삭이는 말이 아녜요. 무대 위 방경호가 옆자리에 앉은 문명주에게 말하고 있군요. 관객들은 연극평론가 두 사람이 '본다'고 설정돼 있는 추리극을 보는 동시에, '극중극'을 보면서 두 사람의 변화하는 심리극에 맞닥뜨리게 된답니다.
1막까지는 두 연극이 구분됩니다. 바깥세상과 단절돼 있는 멀둔 저택에서 시체가 발견돼요. 누구의 소행일까요? 극중 인물들이 우왕좌왕 하는 가운데, 애초 범인을 의심받았던 사이먼 개스코인이 총을 맞게 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습니다. 사이먼을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왜? 이렇게 진행되는 1막은 의도적인 작위성을 보여줍니다.
'극중극' 바깥에서 진행되는 두 평론가의 리얼한 연기는 논외로 하더라도, '나 연극하고 있다'고 온 몸으로 소리치는 듯 보이는 배우들의 연기는 그래서 약간 지루함을 안겨줄 수도 있겠네요.
허나 2막에서부터 관객들은 놀라합니다. '극중극' 무대에 울리는 전화를 무대 밖 '관전자'인 방경호가 받기 시작하면서부터요. 두 평론가는 본격적으로 연극에 참여하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이 주고받는 말들은 1막 '극중극'의 대사와 딱딱 맞아 떨어지고, '극중극'을 보면서 두 평론가가 독백했던 자신들의 상황과도 연결됩니다. 연극에 뛰어드는 방경호는 사이먼과 똑같이 총을 맞아 살해당하고, 이제 나머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죠.
연극은 무겁지 않게, 유쾌하게 끝나요. 마지막 범인이 밝혀질 때 관객들은 계속 깔깔대고 웃으니까요. 그러나 발랄한 폭소 가운데에서도 현명한 관객들은 곱씹게 되겠죠? 진실과 거짓, 실재와 환상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하고요.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에도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