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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철의 여인' 심상정. 그는 왜 운동에 발을 디디게 되었을까.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내가 찍은 남자들은 영락없이 죄다 운동권이었다, 저 세계를 좀 알아야겠다는 소외감에서 시작했다."

그의 시작은 소박했다.

- 대학(서울대 역사교육과 78학번)에 들어가 7㎝ 이하 하이힐은 신어본 적이 없다고 들었다.
"나를 줄줄 따라다니는 남학생들이 많았다(웃음). 보통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들의 꿈과 다르지 않았다. '연애 열심히 해봐야겠다, 참고서 아닌 소설책 많이 읽어봐야겠다, 여행 다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래 못 갔다. 일단 내가 마음에 좀 든다 싶은 남자를 찍으면 영락없이 죄다 운동권이었다. 진짜다(웃음). 뭔가 얘기가 통할 것 같은 남자들은 나중에 알고 보면 전부다 학회 출신이더라. 소외감을 느꼈다. '아, 내가 저 친구들과 만나려면 저 세계를 좀 알아야겠구나'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 하나는, 내가 읽고 싶은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책을 왜 당당하게 옆에 끼고 다니지 못하나 싶었다. 전투경찰이 학교 안에 와 있던 시절이다. 5월에 도서관 시위가 있었는데 그걸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선배가 피 흘리며 경찰에게 끌려가는 것 보면서. 내가 대학에서 추구하려던 낭만과 지성을 포기하지 않고 충실하게 쫓아가다 보니 결국은 군사독재를 맞설 수밖에 없었다."

"유시민은 대학 때도 톡톡 튀었다"

▲ 심상정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 인터뷰.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유시민 의원과 대학동기라고 들었다. 같은 곳에 있었나.
"지금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게 결국 그 출발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유시민씨는 학생운동이 뿌리고, 나는 노동운동이 뿌리다. 그 분은 반독재민주화투쟁이었고 나는 근본적인 사회경제적인 변화를 추구해왔다. 대학 때부터 유시민씨는 톡톡 튀었다. 정치변화에 민감하고 치고나가는 분석이 예리하고 탁월했다. 하지만 비주류 음지에서 오랜 기간 역량을 쌓아가는 인내가 필요한데 그런 공간에서는 같이 하지 않았다. 그런 공간의 차이가 현재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 같다."

-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유 의원이 선거 하루 전날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에게 노무현 지지를 호소해 당원들에겐 '악명'이 높은데.
"학교 다닐 때 같은 학년으로 같은 운동권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나하고는 한번도 같은 곳에 서보질 않았다. 그런 차이가 민주노동당과의 악연으로까지 이어졌고, 또 대선 후보로 경쟁해야 할지 모르는데 이제는 제대로 진검승부를 해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김문수 경기도지사와는 노동운동을 함께 하지 않았나.(85년 당시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문수 지사와 함께 서울노동운동연합을 결성. 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을 때 김 지사는 지도위원이었고, 심 후보는 조직·투쟁국장을 맡아 수차례 수배와 구속을 반복했다)
"90년대 초반 동구권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이른바 '386세대' 많은 분들이 '어, 이거 아니구나' 하고 운동을 접을 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삶의 달라진 게 없는데 소련이 망했다고 왜 노동운동을 그만두어야 하나. 김문수씨와 치열하게 부딪쳤던 점이다.

같은 전노협에 있었지만 김문수씨는 민중당 쪽이었고 나의 목표는 민주노총 건설이었다. 당시 김문수씨가 '민주노총 건설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하면서 자기와 같이 정치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내가 아직 장 지지라는 소리는 안 했다(웃음). 함께 운동했던 상당수는 노동자의 삶에서 운동을 시작한 게 아니라 또 다른 주류로 가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주의가 실패로 돌아가고 다시 비주류로 간다는 게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 손학규 후보를 평가한다면.
"한나라당에서 유배당한 정치인이다. 우선 한나라당과 후보 단일화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정체성이 같은데도 소수파라고 뛰쳐나온 것은 대통령이 될 사람으로서 결격 사유다. 민주노동당이 가장 상대하기 쉽다."

- 한명숙 후보는?
"후보 개인은 존경할만한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국무총리로서 보여준 국정운영은 실망스럽다. 노 대통령의 정치와 다른 개인의 자질을 보여주었는가. 여성운동을 오래 해왔으면서도 KTX 여승무원 문제와 같은 너무나 명명백백한 아픔도 하나 해결하지 못하지 않았나. 노무현 정치와는 다른 특별한 비전과 추진력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본다."

"김문수, '내 손에 장을 지진다'더니?"

ⓒ 오마이뉴스 이종호
심상정 후보의 패션 변천사는 그의 인생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1978년 대학 신입생 시절의 스커트와 하이힐. 미대 다니는 언니에게서 패션감각을 익혔다. 얼마 못가 시작된 운동의 나날, 25년 노동운동을 하면서 감청색 조끼와 청바지에 익숙했다. 2004년 국회의원 심상정이 된 뒤엔, 치마를 입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2007년 대통령 후보가 되더니 색상마저 확 달라졌다. 밝고 선명하다. 무난한 자연색에서 튀는 원색으로 바뀌었다. '강한 민주노동당'을 표현하고 싶다고 한다.

- 심상정 패션이 화제다. 취향이 바뀐 건가, 선거운동 전략인가.
"원래 내가 패션감각이 좀 있다. 오랜 노동운동으로 감각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웃음). 주변에서 대선후보에 걸맞는 행세를 하는 주문이 많다. 능동적으로 부응하는 중이다. 얼마 전 정책토론회 때 진홍빛 정장을 입고 단상에 올랐더니 당원들이 '와~' 환호성을 질러 나도 깜짝 놀랐다."

- 그 색상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사람들이 빨주노초파남보 원색을 돌아가며 입으라 하길래 제일 먼저 선택한 게 주황색이다. 민주노동당의 상징색이다. 당원들이 입는 점퍼가 주황색인데 영 똑부러지는 맛이 안 난다. 당을 좀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어서 진한 진홍색을 골랐다.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심상정이 민주노동당에 가장 잘 어울리는 후보라는 얘기 아니겠나(웃음)."

- 보는 즐거움을 위해 간혹 '쇼'를 좀 해라(웃음).
"나도 해보니까 재밌더라. 우연한 선택이 아니었다. 시간도 없는데 근처 백화점에 가서 두 시간 동안 세 바퀴를 돌았다. 주황색이 몇 종류가 있었는데 '저 색깔이 민주노동당 색인가? 아니 너무 옅어. 좀더 진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서 여러 벌 입어봤다. 당원들 반응이 어떨까 걱정했는데 다들 열광하니 나도 기쁘더라. 민주노동당의 과감한 변화를 다양하게 연출해 봐야겠다."

- 옷값은 어떻게 조달하나. 민주노동당 의원 월급으로는 안될텐데.
"당연히 안 된다. 대통령 후보 되고 나서 여러 벌 샀다. 이게 끝이 없는 일이더라. 옷에 맞추려면 화장이 안되고, 헤어스타일도 맞춰야 되고, 또 구두에 가방에…. 대단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월급을 치장하는 데 써도 모자랄 판이다. 이번 연말정산으로 목돈 들어온 게 있었다. 친정 식구들이 사다주기도 한다. 본선이 걱정이다. 계절이 겨울이니까 또 장만해야 되지 않겠나(웃음)."

눈물 많은 '철의 여인', 가장 최근에 흘린 눈물은

- 주변에서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 많지 않나.
"많다. 스트레스다. 토론회와 논평을 자주 내다보니 화면에 딱딱하고, 날카롭게 비춰졌나 보더라. 방긋방긋 웃으라는 주문이 많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후보들 중에 가장 젊으니 진취적이고 공격적으로 하라고 한다. 복잡하다."

- 자기 자신이 중심을 잡아야 할텐데.
"결국 국민들이 심상정을 지지하는 이유는 '진짜 똑부러진다' '실력 있다' '기득권층에게 휘둘리지 않고 확실히 하겠구나' 그런 기대가 아닐까 싶다. 심상정은 곧 신뢰다."

- 잘 우시나. 작년 국회재경위 국정감사 때 이건희 회장 등 삼성증인 채택이 좌절되자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눈물이 나왔다. 너무 억울했다. 내가 원래 눈물이 많다. 연속극 보고도 많이 운다. 근데 참고 있는 거다."

- 최근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나.
"이랜드 농성장에서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끌려나올 때였다. 아줌마들이랑 얘기하다가도 많이 울었다. 이 아줌마 조합원들이 난생 처음 농성하는 사람들인데 농성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막내 아들 기말고사 잘 봤는지, 학원 갔다가 늦게 오는 딸이 집에 잘 들어왔는지 걱정이 늘어놓는다. 그러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부 눈이 벌개진다. 나도 아이 엄마니까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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