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서울 홍익대학교 근처 대안문화공간 아이공에서 린다 벵글리스 기획전이 열렸다. 뤼스 이리가레이가 '두 입술로 말하라'고 썼다면, 린다 벵글리스는 1970년대의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두 입술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작품 < Now > 에서 여성의 음순을 상징하는 입술 사이로, 혀를 내밀어 스크린 속의 자신을 애무한다. 또한 <여성의 감성(Female sensibility),1973>에서는 라디오 토크쇼를 배경으로 두 명의 여자가 혀로 서로의 몸을 지루하게 핥고 있다. <놀라운 바우와우>에는 양성이 한 몸에 있는 강아지가 등장해서 성기를 흔든다.
순간 페미니즘 이론가인 쥬디스 버틀러의 말을 인용해 혼잣말을 한다.
"모든 성적(sexual) 규범은 우습다."
물론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성적 규범이 우스웠던 건 아니다. 챠도르나 은장도, 정조대와 할례(성기절제)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에게 성(性)의 자유는 넘어서면 죽는 규범이었다. 간통한 여자는 멍석에 말아 죽였던 시대도 있었다. 굳이 직접 죽이지 않아도 자립할 수 없는 상태로 남편에게 버림받으면 죽은 목숨이 되기도 했다. 즉, 성적인 부자유는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부자유와도 연결되었다.
이로부터 탈출하려는 여성들의 시도는 미술계에도 꾸준히 있었는데, 린다벵글리스 전을 기획한 아이공 김연호 대표의 소개로 만나본 두 명의 한국의 여성 미술가들은 비디오 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에 눈 뜬 작가들이다. 시공간을 재현하여, 다시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은 여성, 잊혀진 소수자의 경험을 재구성하도록 돕는다. 한편으로 세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비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하나의 권위 있는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피해가고 있다.
한국의 미술가 정은영 작가는 밤의 시간과 여성들의 신체적 징후에 주목했다. 2006년 '유랑하는 병들' 전시에서 꽃들은 신경질적으로 발광했으며(<꽃놀이>), 세탁기가 돌아갈 때에는 기침이 계속 터져 나왔다(<천식>).
본인도 천식과 두통에 시달린다는 정은영 작가는 여성들에게 병리적으로 히스테리적 징후가 많다고 말한다. 자크 라캉은 아예 '여성은 남성의 증상'이라고 쓰기도 했다. 후자의 말에 성차별 함의가 있는가를 떠나, 여성들에게 잔병치레가 많은 건 맞다. 영화 <링>의 사다코처럼, 누구든 갇혀 살면 미치거나, 아프다.
"엄마가 말했다. 미장원 집 여자가 죽었다더라. 그 여자가 두통이 심해서 매일매일 두통약을 먹었대. 한 십여 년을 그랬다던가. 두통약을 그렇게 먹어대면 그냥 골로 갈 수 있다더라고. 왜 그 남편이 일도 안하고 백수 건달이잖아. 종일 서서 일해 번 돈은 허권날 다 가져가고 말야. 얻어 맞기도 엄청 맞았대. 게다가 파마약 냄새는 좀 독하니? 그러니 두통이 안 올 수가 있나. … 여자가 죽은 건 정말 두통약 때문이었을까. 매일 두통약을 먹은 건 그 여자만이었을까. 그날 죽은 건 그 여자뿐이었을까." (정은영 - <그 여자의 두통약> 중)
<그 여자의 두통약>은 2006년 라오스에서 한 달 정도 체류할 때 우발적으로 만든 작품이다. '버려지는 모서리'에서 낮은 시선으로 하이테크놀로지를 지워버리고, 질을 떨어뜨려 영상을 잡았다. 라오스는 산업기반이 거의 없어 관광으로 먹고 사는 지역이다.
작가는 수도가 없는 마을에서 마약중독자 아이들과 성노동의 현장을 맞닥뜨렸다. 극단적인 지구화의 폐해 속에서 정은영 작가는 어릴 적 죽은 미장원 여자를 생각했다고 한다. 비체처럼 존재하는, 모든 지워진 존재, 소수자를 은유하는 죽은 여자가 그의 영상에 담긴다.
"기침이나 두통은, 미술이 표현의 폭을 넓히듯이 '또 다른 언어’로 다가옵니다. '또 다른 언어'는 세상을 지배하는 로고스적인 언어들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의 언어죠. 일례로 어느 식당에서 일하던 조선족 아줌마가 있었는데, 그 분은 시민권도 없고, 말도 못 알아들어 이미 유령 같은 존재였습니다. 언어의 체계 자체가 다르고 이해 받지 못하기에, 뻑하면 울거나, 감정적이 되곤 하는 거죠."
정 작가에게 유령의 목소리라는 이 말은 한편으로 희망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두통에 시달리던 작가가 두통약을 주워 삼기는 대신, 그 소리를 좇아 가방을 싸들고 아버지의 집 밖 어딘가(elsewhere)로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언어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던 주변의 이야기가, 정 작가에게 여행의 나침반이 된다. ('여행이, 아마도 긴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간밤의 여행자>)
침과 오줌, 생리혈. 기관을 흔드는 비천한 목소리
정은영 작가가 유령의 목소리를 녹취한다면, 한국의 또 다른 미술가 장지아 작가는 오물을 주워 모은다. 장지아 작가의 작업에는 비통한 몸부림과, 터부를 깨는 통쾌함이 동시에 있다. 2007년 <오메르타:침묵의 계율>이란 이름으로 열린 전시회에는 서서 오줌을 누면서 담소를 나누는 모델과 작가의 영상(OMERTA), 작가 자신의 오줌을 한 달 동안 받아서 만든 오줌나무 (OMERTA:P-tree)가 전시됐다. 작품을 보고 난 뒤 관객에게 전해지는 열병은 마치 그의 배설물을 맞은 듯한 아주 정제된 간접적인 폭력이자, 날음식의 가공된 향기를 전해준다.
고정된 해석을 거부하는 장지아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개인적으로 읽어달라고 말한다. 다만 자신의 작업을 스크랩한 포트폴리오를 넘기다가 "이때는 정말 힘들게 살았군요"라고 회고할 뿐이다. 나는 그의 삶에 어떤 여정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가 제도적인 사이클과 무관하게 살았다는 것, 조교를 하던 시절에 단조로운 삶에 길들여진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는 경기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건, 사회는 여성들이 뭔가 몸부림을 치면 더 가학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여성이 자신의 입을 빼앗긴 채 오므린 다리와 다소곳이 모은 두 손, 양순한 표정과 가녀린 음성, 뼈에 붙은 몇 조각의 비계덩어리와 함께 자신을 가둬왔다. 그리고 가두는 행위는 일명 미친 여자들을 치료한다는 근대적 정신의학에서도 똑같이 반복됐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페니스 중심의 가족삼각형으로 모든 것을 해석했다. 그 안에 있는 여성은 남근을 선망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이를 뒤집는 장지아 작가의 작업은 때로 "미친 여자"라는 평을 들을 만큼 도발적이고, 으스스하다. 오죽하면 지키지 않으면 죽는 마피아의 계율인 '오메르타'라는 제목을 작품명으로 빌려왔을까. (린다 벵글리스의 <중얼거림(Mumble), 1972)>은 흑백 영상 속의 남자를 찍으며 "그 남자는 사실 거기 없었다"고 지적하고, "로빈 토리아노는 아래층에서 직물을 짜고 있다"고 화면 밖을 알려준다. 식스센스의 반전처럼, 장지아의 <약물을 통한 신체오감의 이상변화(2002)>에서도 미친 건, 환자가 아닌 의사다.)
오메르타에서 여성의 누드를 타고 흘러내리는 오줌은 성기 결합 중심의 섹슈얼리티를 벗어난다. 수도관 주변부로 늘 흐르고 있는 웅덩이와 간헐적인 개울처럼, 사람의 성욕과 생존도 흘린 침(Princess sad(2004)), 생리혈(꽃도장(2004))처럼 존재한다. 장 작가는 이것이 '기관을 벗어나는 주변부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정은영 작가가 유령의 목소리에서 희망을 읽듯이, 장지아 작가의 경우에도, 가학성과 피가학성, 도착, 모든 죽음의 영역이 삶과 맞닿아 있다. <오메르타(OMERTA)>에서 오줌을 누는 토르소를 선보였던 5명의 배우들은 제 나름대로의 해방감을 만끽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OMERTA:P-tree의 가장 맑은 오줌 위로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 장지아 작가는 말한다.
"왜 이렇게 가학적인 작업을 하느냐고 묻죠, 전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 희망적인 부분과는 다른 것. 혹은 금기시되는 것을 다룹니다. 내가 작업하기 힘들지만 말하고 싶은 어떤 것들이죠."
역시 '그로테스크'하다는 받던 기형도의 시집 말미에 김현은 발문을 달았다.
"가거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아라."
나 역시 여성 작가 2명의 이 괴로운 작업들 뒤로 발문을 달고 싶다.
"건강하라, 살아서 울어라. 구더기나 빙어, 여자로 태어나 천 년을 돌아라."
이들의 선전을 빈다. '서서 오줌누는 여자들'이라는 장지아 작가의 기사에 악플을 달던 자, 사다코가 어깨를 톡톡 치리라.
"다음은 네 차례야."
| | 비디오 아트로 자유를 꿈꿨던 언니들 | | | 아이공이 추천하는 비디오 아티스트 | | | | 샹탈 아케르망 : 폴란드 홀로코스트 생존자 가족의 딸로 태어났다. 1968년 18살이던 샹탈 아케르망은 부엌을 폭파시키는 장면이 등장하는 <우리 마을을 날려버려 Saute ma ville>를 만들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자기 정체성 탐구, 가사노동, 언어로부터의 여성의 배제, 정착하지못하는자로서의(유대인) 정체성의 문제등의 주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여성의 실존과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작업해왔다. 9월 경 아이공 미디어 극장에서 기획전을 열 예정이다.
조안조너스 : 여성주의 비디오 퍼포먼스의 대모격인 조안조너스는 1960년대 중반부터 비디오, 모니터를 활용한 작업을 시작했다. 미학적 비디오로 발전시킨 작품은 비디오 모니터와 퍼포먼스의 상관관계 속에서 재현의 방식을 새롭게 구축한다. 영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실험성을 발견할 수 있다. 10월 경 아이공 미디어극장에서 기획전을 열 예정이다.
카이두 : 한국 실험영상의 불모시대였던 1974년 여성 감독이 국내 최초로 실험영화를 표방하며 만든 그룹이다. 여성영화인 최초의 모임이자, 실험영화 최초의 그룹인 카이두는 한옥희(58), 김점선, 이공희(51)를 중심으로 영화의 새로운 담론과 문법을 생성했다.
차학경 : 1970년대 제2의 마야데렌이라 불리우며 실험영화의 새로운 문법을 만든 차학경은 아시아, 이주자, 여성이라는 소수자의 언어를 영상으로 새롭게 생산한 감독이다. 새로운 영화 장르인‘비디오시’의 새로운 영화 문법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받아쓰기:Dictee> <기관:Apparatus>(1980) 등의 책을 펴냈다. 이 중 <받아쓰기 : 딕테(Dictee)>에서는 만주 출신으로 교사였던 어머니와 유관순, 잔 다르크 등의 생애를 시와 산문, 사진 등을 결합하여 엮어냈다. / 김홍주선 | | | |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단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