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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가끔은 내 속에 숨겨진 것들을 찾아 탈출을 꿈꾸며 잠시라도 틀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어쩌면 나의 저녁 나들이도 그와 유사한 맥락일 것이다.
아파트단지를 나와 중랑천변에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북으로 향하다 보면 이름 모를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서울특별시의 경계를 벗어나면 도심을 떠나 깨나 멀리 떠나온 듯 밤하늘엔 쏟아질 듯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과 하천변엔 무언가를 낚고 있는 태공망의 모습도 쉽게 볼 수가 있다.
여유로운 저녁시간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주위 풍광에 취해 마냥 걷다 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재밌는 광경을 발견하기도 한다. 얼마를 걸었을까 아파트 담벼락 나무 사이사이에 아직은 쓸만한 자전거 여러 대가 묶여 있었다. 분명 단지 내에 자전거를 보관하도록 만들어진 곳이 있는데 무슨 이유로 여기에 이렇게 놓여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저 것들도 나처럼 일상에서의 탈출을 시도한 것일까? 생각할수록 재밌는 광경이었다. 혹, 누군가 작품전시회를? 그러나 그럴만한 장소도 아니거니와 아무런 안내표지도 눈에 띄질 않았다.
자리를 일탈하여 제멋대로 놓여진 자전거를 보니 순간 어릴 적 기억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그때만 해도 미장원이 흔치 않아 여자아이들 머리도 이발소에서 잘랐기에 아버진 이발을 하러 가실 때면 어김없이 자전거 뒤에 날 태우고 다니셨다.
20분은 족히 달려야 하는 거리, 움푹움푹 파인 비포장도로를 곡예를 하듯 고른 길을 찾아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달리실 때면 더욱 힘주어 아버지 등에 꼬옥 매달려갔다.
머리를 자르고 집에 돌아올 때면 내가 좋아하는 이것저것을 사 주시곤 번쩍 들어 자전거 뒤 안장에 앉혀 주신다. 상큼하게 잘린 상고머리를 나풀거리며 마치 매미처럼 아버지의 널따란 등허리를 감싸 안고 눈을 감으면 박하향 같은 은은한 포마드 냄새가 바람결을 타고 코끝을 간질이고 그때의 기분은 두둥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만 같았다.
이처럼 내게 남다른 아련한 추억이 있어서일까~ 자전거를 보면 우물 속처럼 깊은 기억 저 밑바닥 어딘가에 묻어둔 어릴 적 그때가 어제 일처럼 되살아난다. 눈물이 글썽이도록 되돌아가고픈 시간이지만 머릿속 그림으로밖엔 그릴 수 없는 동화 같은 이야기.
나를 태우고도 힘 안들이고 쌩쌩 달리시던 젊은 날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어느새 팔십 둘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신 우리 아버진 딸이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자전거의 추억을 기억이나 하실까?
더 세월이 가기 전에 아니 당장 내일이라도 좋아하시는 육회를 안주로 약주 한 잔 따라드리며 아버지 기억 속에도 그때의 추억이 남아 있는지 과거로 가는 기차를 타고 추억여행을 떠나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