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신일 강남대 총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해 이찬수(교양학부) 교수 해직 사태와 관련해 '현대판 종교재판에 멍드는 사학'을 연재한 기자입니다.
윤 총장님은 이 교수에게 '종교재판'을 단행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총장님은 지난해 1월 이 교수의 재임용을 거부했습니다. 그가 '불상에 절을 하는 등 기독교 창학 이념에 어긋나는 행동·강의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자는 총장님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교육부에 이어 법원도 총장님에게 "교수를 '마음대로' 해고하면 안 된다"고 선고했기 때문입니다.
총장님은 지난해 5월 "재임용 거부를 취소하라"는 교육부의 결정에도 행정소송으로 맞섰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이 교수를 강단에서 내쫓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났고 이번달 27일 재판 결과가 나왔습니다. 판결문을 읽어 보셨습니까. 윤 총장님은 졌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것은 부당하다"며 이 교수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교육부·법원 모두 "학교 측 평가는 주관적·자의적이라 불합리하고 사립학교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판결문의 주요 내용을 조목조목 살펴보십시오.
[판결내용①] "기독교 정신은 임용 기준으로 부적합"
"강남대가 이 교수의 재임용을 거부한 이유로 들고 있는 '창학 이념에 반하는 행위'는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다. 사립학교법(52조의2 7항)이 재임용의 기준으로 정한 '학생교육·학문연구·학생지도'와 관련된 사항이 아니다." - 판결문에서
행정법원이 강조한 부분입니다. 총장님이 '이 교수의 강의·행동이 기독교적이지 않으므로 해고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자의적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총장님 '마음대로' 이 교수를 해고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법은 교육·연구·지도에 있어서 불성실한 교원만을 해고하라고 일렀습니다.
총장님은 "사립학교는 (기독교) 건학이념에 따른 교육을 할 수 있고, 그것을 강제한다고 해서 위법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위법'이랍니다. 또 총장님은 "불상 앞에서 절을 하는 것은 창학 이념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이므로 재임용 거부는 타당하다"고 우겼지만, 재판부는 이 또한 '위법'이랍니다. 결국 총장님의 모든 주장은 '위법'임이 판명됐습니다.
또 총장님은 극히 일부(4명)의 수강생이 이 교수의 강의 내용에 대해 '비기독교적'이라고 평가한 서류를 근거로 해고를 합리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창학 이념'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이기 때문에 객관적이어야 할 '재임용 평가 기준'은 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창학 이념이라는 모호하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잣대를 내세워 교원의 생존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사무국장도 "헌법은 종교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면서 총장님에게 "법원 판결이 나온 이상 성숙한 자세로 사태를 해결(복직)하라"고 당부했습니다.
[판결내용②] "불상 앞에서 절했다고 해고시키나?"
"이 교수가 불상 앞에서 절하는 장면이 EBS(교육방송) <똘레랑스>를 통해 방송된 뒤, 이 교수는 해명서를 내고 잘못을 시인·반성했다. 게다가 이 교수의 재임용 심사는 그로부터 약 2년 뒤에 있었기 때문에 재임용 탈락의 직접 원인이 됐다고 보기 어렵다."
소위 '절[拜]' 파문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위 판결문은 이 교수가 타종교에 대해 존중하는 예를 갖췄다는 이유로 해고된 것은 부당하다는 뜻입니다. 타종교를 인정하는 것이 기독교에서는 '원죄'가 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게다가 이 교수가 <똘레랑스>에 출연한 것은 2003년,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은 2005년 말께입니다. 무려 2년여의 시간차가 있었습니다. 이 교수로부터 경위서(사실상 반성문)까지 받아가며 묻어뒀던 사건을 2년 뒤 새삼 꺼내 해고의 이유로 삼은 점, 자못 궁금합니다.
이에 대해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기본 인식조차 갖추지 못한 채 창학 이념을 운운하는 것은 전형적인 엔똘레랑스(불관용)"라면서 "구성원이 가진 성찰 이성의 성숙도가 낮은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홍 위원은 "강남대는 몰상식하다"며 총장님을 거칠게 몰아 세웠습니다. "왜 강남대는 스스로 이번 일을 해결하지 못하고 법의 판결에 의지하냐"는 말입니다.
홍 위원이 지난해 강남대에서 이 교수 사태와 관련해 '똘레랑스(관용)'를 설파하려 하자, 총장님은 그를 학교 내로 발도 못 붙이게 했습니다. 대학이야말로 종교·사상·학문의 자유를 지켜야할 마지막 보루임을 모르시고 한 행동인지 묻고 싶습니다.
또 홍 위원은 "광신자가 열성을 보이는 것도 수치지만, 지혜 있는 사람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는 18세기 프랑스 지성 볼테르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총장님 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에 침묵하는 강남대 내부 구성원 모두를 겨냥한 말입니다.
[판결내용③] "이 교수는 '종합대학·교양학부' 소속"
"강남대는 신학대학이 아니라 종합대학교이고, 이 교수는 신학부 소속 교원이 아니라 교양학부 소속 교원이다." - 판결문에서
총장님이 재임용 여부를 판단할 때, 기독교 정신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뜻입니다. 강남대는 종합대학입니다. 신학대학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 교수는 교양학부 소속으로서 1학년 교양필수 과목인 '기독교와 현대사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학'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강남대 내부에서는 "이 교수가 신학부 교수였다면, 그가 비기독교적 강의를 하는 것은 논란거리가 되지만 이 교수는 교양학부 소속"이라면서 "강남대의 기독교 정신이 지나치게 보수화되고 경직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손상훈 사무국장은 "종합대학·교양학부 소속 교수를 기독교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자 배타적인 태도"라며 총장님을 비판했습니다.
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강생 중에는 기독교에 반감을 가진 학생이 있고, 이 교수의 강의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면서 "이 교수가 창학 이념에 반하는 행위를 했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그 만큼 (재임용) 평가에는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기자가 지난해 강남대로 현장 취재를 나갔을 당시 경천관 101호 뒤편 책상에서 "2006.9.13. 기독교와 현대사회, 쇄뇌(세뇌)당할 것 같아, 짜증나"라는 낙서를 발견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길 바라는 한 학생의 호소가 책상에 날카롭게 새겨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여기에 "나도"라며 댓글도 달았습니다.
이 교수의 강의 시간에 쓰여진 낙서는 아닙니다. 이를 알려준 학생의 말과 강의실 배정표 등을 토대로 확인해 본 결과입니다. 기독교 교리를 토대로 강의하는 교양학부 아무개 교수의 수업 시간에 새겨진 낙서였습니다.
법률 대리인 "대법원까지 갈 듯"... 강남대의 '포용성'은 어디에
기자는 31일 오전 총장님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행정법원 판결에 대한 학교 측 입장과 향후 대응방안을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총장님은 기자의 얘기를 다 듣기도 전에 "그 쪽과는 할 얘기가 없다"면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언론을 담당해야 할 강태우 대외교류홍보팀장은 전날(30일) "휴가를 다녀와서 재판 결과에 대해 아는 바 없다"면서 "학교 측 입장도 알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오늘(31일)은 오전·오후에 걸쳐 수차례 전화해도 받질 않습니다. 문자도 보냈지만 묵묵부답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법률 대리인은 이번 판결에 대해 "종교 사학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판단"이라고 좋지 않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이어 "학교 측은 항소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항소심에서도 지면 대법원까지 가지 않겠느냐"고 예상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 소송은 적어도 3~4년 동안 진행될 것이라고 합니다. 총장님이 '버티기'에 나서겠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이 교수는 판결에 대해 "사회 양심에 따라 판결이 내려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도 "당연한 결정을 내리는 데 지나치게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종교적 포용성·개방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면서 소송을 계속 진행할 뜻을 내비쳤습니다.
윤 총장님. 강남대는 종교간 화해의 토대 위에서 성장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남대는 독실한 불자인 차재윤씨가 1948년 이천시 땅 30만 평을 기부함으로써 4년제 종합대학(1975)으로 발돋움하는 기초를 다졌습니다.
또 학교 설립자인 고 이호빈 목사는 불상 앞에서 예를 갖추며 "타 종교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습니다. 이런 포용성이야 말로 진정한 '창학 이념'일 것입니다. 그러나 총장님은 불상 앞에서 절을 했다는 이유로 이 교수를 내쫓았습니다.
그렇다면 강남대의 창학 이념에 반하는 행동을 한 사람은 바로 윤 총장님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