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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한은희

치료사들의 열악한 근무 조건, 그것까지도 견뎠지만...

재활병원 안의 시계가 매 시간의 정시와 30분을 가리킬 때, 환자들과 환자 보호자들 그리고 치료사들은 치료대에 모인다. 병원이 짠 시간표대로 30분으로 정해진 치료시간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표대로 밀어닥치는 환자들을 받느라 치료사들은 거의 종일을 꼼짝없이 치료대에 묶여있게 된다.

2일 재활병원 1층에서 만난 환자 보호자 서경주(40·6세 딸 작업치료중)씨는 물리치료사들의 작업시간에 불만을 토로했다.

"주로 오후 2시부터 치료가 집중적으로 시작되는데, 90%가 5분도 안 쉬고 치료하고 있어요. 병원에서 짠 스케줄이 30분하고 정시하고 나뉘어져 있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들 오줌누러 갈 시간도 없고.

제가 치료받을 시간에 선생님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면 5분이잖아요. 제가 돈내고 치료받아야 할 시간인데 노동자들이 쉬어야 할 시간을 제가 감당하는 거예요."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조씨의 경우 노동환경은 더 심각했다.

"베드사이드 피티(bed side physical therapy)라고 있어요. 15분씩 환자 치료를 하는건데, 병실에 직접 찾아가야 하는 거라서 주로 비정규직이 가요. 내가 봐야 하는 환자는 환자대로 보고, 또 베드사이드 피티는 이것대로 해야하는 거죠. 혼자서 많을 때는 운동치료 환자 10명 하고, 베드 사이드 피티만 20명을 본 적도 있어요."

조씨의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각종 차트를 정리하고, 소모품이나 비품들을 관리하며 기기들을 체크를 한다. 원래 정해진 노동시간인 8시간을 넘기는 일은 허다했다.

이렇게 1개월을 일하고 그가 번 돈은 인턴이었을 때 약 60여만원, 계약직이었을 때 약 150여만원 정도였다. 그러나 1년차 정규직 물리치료사가 한 달을 일하고 버는 돈은 약 300만원 정도다. 당시의 기분을 조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 나는 내년이면 저걸 받을 수 있다. 지금 내가 이렇게 받고 일하는 건 당연히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다. 지금 이런 게 다른 사람들도 거쳐간거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자고 생각하죠. 먼저 들어온 사람이 벌써 정규직 월급을 받고 있고…. 회의가 들죠. 나는 뭔가? 나는 저 사람들과 뭐가 다른가? 일은 똑같이 하고 어떻게 보면 더 많이 하고 있는데…."

그는 정말 정규직이 되기에는 자질이 부족했을까?

그래도 "선배들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조씨는 다른 선배들의 업무 부탁을 처리했고, 묵묵히 계약기간을 견디며 평가자인 정규직 선배들 사이에서 정규직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정규직 공채에서 떨어졌다.

"미리 짐작했어요. 흘러가는 분위기가 그랬으니까요. 이미 내부에서는 다 알고 있는 셈이었죠. 낙담은 그 전에 다 했죠.

그런데 발표를 듣고 나니까 여기 왜 내가 그동안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근데 그것보다는 병원을 마치고 나서 그 주에 쉬고 월요일에 아침에 일어나잖아요. 그 때가 기분이 이상하죠. 이상했어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출근할 데가 없고 내가 원해서 나온것도 아니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는데 결과는 이렇게 나오고 내가 갖고 나온 것은 없고…."

조씨에 대한 정규직 선배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지난달 31일 연세대학교 구내 청송대에서 만난 김진만(가명·30대, 물리치료사)씨는 "조원호씨는 점수도 아주 높았고, 일도 잘했다"며 "그 해에 뽑힐 수 있었을텐데 너무 아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씨는 또 "우리가 파업에 나선 이유는 비정규직 문제 때문"이라며 "비정규직의 현실을 10년 이상 지켜보면서, 이미 우리는 그걸 거쳤지만 후대에는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나왔다"고 강조했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주성기(가명·40대)씨는 "인턴제도의 처음 의도는 좋았지만 지금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걸 보면 그 원래의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볼 수 있다"며 "계약직은 '인건비 절약용'으로 이용당하는 것으로 이들의 업무 강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병원 내 '치료행위'를 하는 비정규직의 문제는... 결국 환자에게로

뇌성마비 6세 딸이 재활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는 한 어머니는 현재 장기화되고 있는 연세의료원의 파업 사태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비정규직은 병원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이지, 환자는 생각하지 않은 행태라고 생각을 해요. 자기들의 이익 실현을 위해서 비정규직을 하고 싶으니까 선생님들이 2년정도 있다가 다시 또 나가시고 새로 들어오시고 이러니까 치료를 받는 환자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바뀌는 게 별로 안 좋죠.

차라리 2년 정도 지나서 비정규직 선생님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서라도 고정적으로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을 하려면 원래 있던 선생님들을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병원 "230억 남는데 500억 쓰라고?"

"우리는 그동안 7월 1일 비정규직 법안 시행과 관련해서 워크숍도 하고, 노조에 브리핑도 여러차례 했다. 또 7월부터는 정규직의 70%이던 비정규직의 임금을 85% 수준으로 인상하고, 복지혜택도 정규직과 동일하게 부여했다.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남궁기 연세의료원 홍보실장은 노조측의 비정규직 문제제기에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이와 같이 설명했다.

남 실장은 "우리가 한 해 1조원을 투입해서 얻는 이익이 230억"이라며 "노조 측이 주장하는 1200억 이야기는 회계용어를 잘못 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년 이상된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간호 1등급 상향 조정을 위해서 간호 업무 인력을 더 뽑게 되면 최소 500억 정도가 든다"며 "그것은 적자 예산 짜서 가라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인턴제도에 불만을 표시하는 환자들에 대해 "세브란스 병원의 존재이유는 환자 치료가 아닌 학생 교육을 위한 실습의 장"이라며 "우리도 미국 같으면 고용의 융통성이 있어서 채용을 많이 할 수 있겠지만, 현재의 시스템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세의료원#연세대학교#세브란스병원#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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