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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경기지사.
손학규 전 경기지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드디어 손학규씨가 '사고'를 쳤다. 아니, 이제야 손학규씨가 자신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이럴 때를 두고 사람은 두고두고 많이 겪어봐야 한다고 했던가? 역시 한나라당 3등 후보 출신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시대정신이 불분명한 사람은 결코 한나라당의 1, 2등 후보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손학규씨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손학규씨가 3일 아침 광주 무등파크호텔에서 열린 광주, 전남 경영자총협회 초청 금요조찬 연수회에서 광주정신을 얘기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손학규씨는 "새롭게 태동하는 통합신당이 아직도 80년 광주에 갇혀 우리 스스로를 묶어두고 있는 게 아니냐"면서 "이제 우리는 생각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70~80년대 생각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야 한다"며 "범여권이 내 것을 고집하고 작은 차이를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하니 역시 손학규씨다운 사고임에 틀림없다.

그렇다. 우리는 80년 광주라는 과거에 갇혀서는 안 되고 열린 사고를 해야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를 무턱대고 잊어서도 안 되며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가꾸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가야 한다는 것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손학규씨가 작은 차이라고 한 것은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 가야 한다고 본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70~80년대의 시대정신을 한 마디로 민주, 인권이라고 보며 그러한 시대정신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시대정신이라고 본다. 그러면 손학규씨는 그러한 70~80년대의 시대정신이 이미 실현되었기 때문에 거기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젠 낡았으니 폐기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손학규씨가 잊은 적 없다는 광주정신은 무엇인가

필자는 5·18 당시 시민협상대표를 맡아서 계엄군과 맞서 싸웠던 당사자로서 손학규씨가 말했던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던 진정한 의미의 광주정신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분명한 것은 80년 광주정신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살아있는 시대정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며 70~8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의 발언을 접하면서 '그가 지난 14년 동안 박정희 쿠데타 세력의 후예들과 한통속이 되어 민주정부 출범을 방해하고 오로지 기득권 세력의 정권유지를 위하여 온몸으로 충성을 했었구나' 생각하니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또 그가 이번 대선에서 광주정신을 실현하는 길은 한마디로 일자리라고 했다는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정한 광주정신은 그게 아니라고 본다. 광주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 인권, 평화였으며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과 민중이 고루 잘사는 대동세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광주정신은 27년 전의 외침이었지만 여전히 현재요, 미래의 소중한 가치라는 점에서 손학규씨가 광주정신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한 발언은 국민기만에 다름 아니고, 5월 영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며, 전라도민과 민주시민들을 우롱한 처사라 할 것이다.

손학규씨에게 요즘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5·18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무엇이고, 당시를 경험하지 않았던 많은 국민이 눈물을 흘리면서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손학규씨는 답해야 한다.

손학규씨의 시대정신으로는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다

손학규씨는 "더 이상 5·18 광주정신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결코 1980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광주정신은 광주를 털어버리고 대한민국과 세계를 향해 뻗어갈 때 더 빛날 것"이라고 했단다.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손학규씨는 광주정신을 이미 낡은 것 그리고 폐기해야 할 고루한 가치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70~80년대 민주화운동 경력을 들먹이며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과거의 민주화운동 경력이 과연 14년 동안 군부독재정권을 위하여 헌신했던 흔적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 경력으로 지난 14년을 덮으려고 한다면 치졸한 발상에 다름 아니다. 요즘 제기되는 손학규씨의 부끄러운 과거가 시대정신을 거역하는 엄청난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한나라당이 아니면 정치를 못할 것처럼 하던 사람이 경선에서 떨어질 것이 분명해지자 뻔뻔하게도 일언반구 반성도 없이 범여권의 후보로 둔갑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 모호함을 스스로 보여주는 행위로서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것쯤은 알았어야 하고 솔직하게 반성을 했어야 했다.

이제 많은 국민은 원한다. 한나라당의 3등 후보가 아닌 진정한 민주 개혁세력의 후보가 되었으면 하고 기대한다. 그럼에도 손학규씨는 여전히 10%도 넘지 않은 지지도만으로, 범여권 1위라는 자만심에서 비롯한 진솔하지 못한 언행으로 광주정신을 폄훼하고 있다.

광주정신은 광주시민의 정신도 아니요, 호남인의 정신도 아닌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시대정신이자 미래세대의 시대정신이며, 인류의 영원한 보편적인 가치다. 이를 훼손하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시대정신으로는 절대로 한나라당 후보를 이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 신문과 광주일보에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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