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내게도 여행 철학(?)이 있다. 도시에 도착한 첫날은 무작정 걷는다. 목적 없이 하루 종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하루가 다할 때 쯤이면 도시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머리 속에 남곤 하기 때문이다.
멕시코시티의 소깔로 광장과 시장·뒷골목을 돌아다녔다. 뭐라고 할까. 멕시코시티는 인생이 힘겨워도 꼿꼿한 자존심을 잃지 않은 중년 남성처럼 느껴졌다. 미국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던 멕시칸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 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에서 온 용이라고 해요. 기에르모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와우! 용! 나야, 기에르모! 으하하하! 지금 어디야? 멕시코에 온 거야?"
어쩐지 안쓰러운 기에르모와 선이의 사랑
기에르모는 밴쿠버에서 지낼 때 어학원 친구였다. 말이 많았고 언제나 장난기가 가득했다. 좀 싱겁기만 한 친구라 생각했는데, 전쟁반대 시위에서 우연히 만난 이후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그에게 물어보았다.
"넌 밴쿠버가 좋은가봐?"
"왜? 넌 아냐? 좋잖아. 깨끗하지, 안전하지, 피부색 차별 없지, 댄스클럽에 바(bar)에 전세계 요리에…, 없는 게 없잖아?"
그 무렵 아내와 난 밴쿠버의 비가 지겨웠다. 내리는 것도 아니고 안 내리는 것도 아닌, 우산을 쓰기도 뭐하고 안 쓰기도 뭐한 밴쿠버의 비. 그래서일까. 세상의 어떤 고민거리와도 무관할 것처럼 씩씩하기만 했던 그가 부러웠다.
일상으로 돌아온 그가 궁금했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좀 일찍 호스텔로 찾아왔다. 얼굴이 아주 좋아보였다. 밴쿠버에서 보았던 그가 아니었다. 잘 정돈된 느낌이었다. 확실히 그는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오, 아미고스(Amigos, 친구들)! 웰컴 투 멕시코!"
"반갑다. 너, 많이 행복해 보인다."
"으하하하! 그래? 나 사업 시작했거든!…. 그리고 여자친구가 생겼어."
"정말이야? 야아, 축하한다."
"너도 아는 친구야. 선이(Sunny)라고. 코리안. 우리 클래스였잖아."
"정~말?"
"어제도 통화했는데 보고 싶어서 내가 막 울었어. 흑흑! 나, 빨리 돈 벌어서 선이랑 결혼할 거야!"
사랑에 빠진 그는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과연 쉬울까. 지구 반대편에 사는 두 사람의 사랑이 어쩐지 안쓰러웠다.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중남미 나라 멕시코. 그저 못 사는 나라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맥주와 데낄라, 뭐로 할래?"
"멕시코에 왔으니 당연 데낄라지!"
광란의 도가니탕으로 변한 꼰띠나
그는 친구 한 명을 불러내 꼰띠나(contina)라고 부르는 전통 바로 데리고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확 끼쳐왔다.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빈틈없이 차 있고, TV에서는 축구 경기가 한창이었다. 한국의 선술집처럼 서로 등짝을 맞댄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마음에 들었다.
"잘 보세요. 먼저 엄지와 검지 사이에 소금을 살짝 얹고 그 위에 레몬을 짭니다. 그리곤 한입에 '흡' 빨아 먹고는 얼른 데낄라를 마시는 거죠. 한 번 해봐요."
기에르모의 친구가 가르쳐주었다. 그때였다.
"고~~~오~~~오~~~올"
아마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해본 사람은 알지 않을까. 아나운서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 기괴한(?) 소리. 꼰띠나는 광란의 도가니탕으로 변했다. 멕시코시티 홈팀이 골을 넣은 모양이다. "우와, 우와아!" 아내와 나도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옆 테이블의 아저씨가 나를 부둥켜안더니 마구 흔들어댔다.
"용, 다음 주말까지 있으면 안 돼? 춤추러 가게. 멕시코에 왔으면 나이트클럽엘 꼭 가봐야지!"
축구가 끝나고 밤이 깊어갔지만 얘기는 계속됐다. 그들은 경제가 어렵다고 걱정했다. 일자리가 없다고. 정치가 엉망이라고.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두 사람의 한숨이 자리를 데웠다. 그런데 웬일일까. 푸근했다.
'사람 사는 것 참 비슷하구나.' 살내음이 났다.
개업한 기에르모에게 '축 개업' 시계 선물하다
다음날 기에르모의 가게로 갔다. 직업군인들을 대상으로 군복·마크·탄띠 등의 소모품을 파는데, 바로 오늘이 개업 날이었다. 아내와 나는 작고 둥근 벽시계에 '축 개업'이라고 써서 선물했다.
"한국에서는 신장개업하면 벽시계와 양초를 선물해."
"그래? 왜? 아, 아무튼 좋아. 그럼 너희들 떠나기 전에 양초도 사주고 가야겠다. 난 절반의 성공은 싫거든!"
"그럼 이제 너의 성공은 우리에게 달렸다는 걸 알아둬."
드디어 아내와 내가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기에르모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 현지인을 만나서 함께 밥을 먹고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는 일.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다.
기에르모네 집은 5층 아파트였다. 형과 여동생은 분가했고 자기만 부모님과 함께 있다고 했다. 셋이 살기에 충분했지만 교사와 엔지니어로 평생 일한 것에 비하면 좀 작아 보였다. 저녁준비는 간단했다. 어머님이 샐러드와 타코(얇은 빵에 야채·고기 등을 넣어 말아서 먹는 만두 비슷한 음식)를 만들었고, 기에르모가 튀긴 닭과 맥주를 사왔다. 아버님이 물어보았다.
"음…, 한국에도 이렇게 큰 아파트단지가 있어?"
"아, 네…, 그럼요."
"거리에 자동차가 많이 다니나?"
"아, 예… 너무 많아서 탈이죠."
아버님은 한국이 자동차 생산국임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듯 질문을 계속했다.
"중국말을 사용하나?"
"아니요. 한국만 사용하는 우리말이 있어요. '한글'이라고. 그림처럼 예쁩니다."
"그래…, 지금 여행 중이라고. 미국은 가봤나?"
"예. 아시아·유럽·캐나다·미국을 거쳐 왔고, 이제 남미로 갈 겁니다."
기에르모가 1년 6개월째 여행 중이며 아프리카도 갈 거라고 덧붙이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이는 얼만지, 종교는 뭔지, 부모님은 건강하신지…" 이쯤에서 듣게 되는 예의 그 질문들이 쏟아졌다.
신은 멕시코에 모든 걸 주셨지만
이번에는 내가 질문했다.
"그런데 오늘날 멕시코는 어떤가요?"
"폭스 대통령이 미국에 모든 걸 다 팔아넘겼지. 농부는 파산하고 도시에는 일자리가 없어. 견제해야할 세력들도 예전과 다르고. 잘 나가던 교사노조까지 그러니 원. 멕시코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이네. 이번 대선에서는 어떻게든 해야 할 텐데…."
"사파티스타는요?"
"미국에 저항하는 멕시코의 상징이지. 2001년 3월 11일. 그들이 평화행진으로 멕시코시티에 들어왔던 날, 우리 가족 모두 그 자리에 있었네.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
"그랬군요. 저희도 사파티스타 평화캠프에 가볼 생각이거든요."
"정말인가? 자네들 혹시 마르코스를 만난다면 우리 가족의 인사를 꼭 전해주게나."
어머님이 또 정치 얘기만 한다고 아버님을 나무라시더니, 당신도 한 말씀 덧붙이신다.
"사실 신께서 멕시코에 모든 걸 주셨어요. 태평양 바다와 카리브 해, 화산과 정글과 사막, 석유와 가스, 부족한 것이 없어요. 디에고 같은 세계적인 화가도 태어나게 해주셨죠. 그런데 딱 한 가지, 신께서 실수를 하셨어요. 그건 미국을 이웃 나라로 만든 거예요!"
"아하하 하하!… 참 정치적인 가족이군요!"
헤어질 시간이 왔다. 어머님은 겨우 한나절을 함께 했을 뿐인데, 벌써 눈물을 글썽거린다. 아버님은 아내와 내 손을 꼬옥 잡으면서 기에르모에게 통역을 시킨다.
"이제 이 집은 너희들의 집이야. 언제라도 멕시코에 다시 온다면 꼭 들러야 해!"
마르지 않은 나그네의 눈물샘
언제나 헤어짐은 힘들다. 세상 모든 일은 반복해서 겪으면 익숙해지는 법이지만, 만남과 헤어짐은 그렇지 않을 모양이다. 아직도 나그네의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다. 지구 반대편의 땅에서 우릴 기억하고 기다린다는 사람들. 아내와 난 이번 여행길에서 평생 만날 사람들을 만나 평생 받을 사랑을 한꺼번에 다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멕시코시티를 떠나는 날, 나올 필요 없다고 했지만 기에르모는 호스텔로 찾아왔다. 우린 버스터미널까지 동행했다. 그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우리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야! 그렇지?"
"그럼, 언젠가는!"
그리고 그의 손에 양초를 쥐어주었다.
"네 나머지 절반의 성공을 위해서!"
덧붙이는 글 | [후일담] 기에르모는 우리가 떠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사업을 그만 두었다. 지난 멕시코 대선에서 좌파 후보의 선거운동을 위해서였다고 그는 변명하지만, 글쎄, 난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멕시코의 작은 좌파 정당에서 지금 일하고 있다. 그는 가끔 메일을 보내와 가족 소식을 전해주기도 한다. 몇 달 전에는 멕시코로 여행하던 내 친구를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님께 떠넘기기도 했다. 참, 그는 이제 더 이상 연애 얘기는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