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소개되는 일본학 지식 가운데에 일본 우익의 관점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정보들이 왜곡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거나 혹은 제국주의침략 시기 일본의 전쟁 책임을 은폐하는 등의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한 예를, 지난 2006년에 국내의 한 출판사가 발행한 한상일·한정선 지음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라는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참고로, 한상일(국민대) 교수와 한정선(고려대 아세아연구소) 연구원은 한국 및 미국·일본에서 학위과정을 밟은 일본사 학자들이다.
두 학자가 공동으로 집필한 이 책은 형식적 측면에서는 상당히 참신하고 신선한 시도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정선 씨가 쓴 서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 책은 만화 등 비주얼(visual)매체에 익숙한 오늘날의 세대에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20세기 초반까지의 일본 시사만화를 중심으로 당시의 일본사회를 스케치하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주로 문헌사료에만 의존하는 '딱딱한' 기존 역사학계의 분위기에 비춰볼 때에, 이러한 시도는 색다르고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역사학적 접근법을 보다 풍부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상의 참신함'을 희석시키고 있는 것은 '내용상의 구태의연함'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제국주의 시기 일본의 대외침략을 정당화하는 등 최근 학계의 진보적 경향과는 배치되는 측면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비판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이 되고 있다. 한국 역사학계가 사회의 전반적인 진보경향을 학문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위 책은 젊은 30대 학자인 한정선 연구원이 주도적으로 집필한 책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과거 범죄를 은연중에 은폐하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어서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물론 한일관계 부분에서만큼은 이 책 역시 일본을 비판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을 제외하면, 설령 일본을 옹호하는 학자일지라도 대개의 경우에는 한일관계 부분에서만큼은 일본을 강도 높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한 부득이한 접근법인 셈이다.
내심으로 일본을 옹호하는 학자들의 '본심'은 한일관계가 아닌 다른 부분에서 드러난다. 예컨대, 일본과 청나라의 관계 혹은 일본과 러시아의 관계에 대한 기술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일본의 청나라 침략을 정당화하거나 일본의 러시아 침략을 합리화하는 등의 방법을 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본의 과거 행위를 옹호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법을 취하게 되면 한국인들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자극하지 않고도 일본을 옹호할 수 있으므로, 많은 학자들이 이런 방법으로 은연중에 일본의 과거 범죄를 은폐하는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 역시 이러한 접근법을 구사하는 책의 일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과거 일본이 대륙침략을 위해 저지른 러일전쟁이 '일본이 살기 위해 선택한 부득이한 카드'였음을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을 은연중에 옹호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일본의 러일전쟁 개전이 불가피했음을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이 취한 접근법은 다음과 같은 3단계로 정리될 수 있다.
1. 의화단사건 진압전쟁(1900년)을 계기로 만주에 군대를 주둔시킨 러시아는 그 영향력을 조선으로 확대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고 이는 일본에게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144쪽)
2. 러시아가 조선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는 증거는 1903년 2월 조선정부가 취한 일본어음 유통금지조치다(144쪽).
3. 이 같은 러시아의 팽창정책에 맞서 일본은 러시아측에게 만한교환론(滿韓交換論, 만주는 러시아가 갖고 한반도는 일본이 갖자는 논리)을 제시하는 등 협상을 통한 해결을 모색했으나,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일본은 사활을 건 전쟁을 선택하게 되었다(146쪽).
이러한 접근법에 따르면, 일본은 단지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러시아에 대해 부득이한 선제공격을 가한 셈이 된다. 일본이 러일전쟁을 개전한 데에는 제국주의적 야심이 없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럼, 위의 접근법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그 문제점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의화단사건 진압전쟁 이전에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는 이미 만한교환에 관한 묵시적 합의가 성립되었다는 것이 일본 학계의 견해다.
일본 역사학자인 찌바 이사오가 일본의 저명한 학술지인 <사학잡지> 105-7호에 기고한 '만한불가분론 대 만한교환론의 형성과 다각적 동맹 및 협상망의 모색'이라는 논문에 의하면, 일본과 러시아는 이미 1898년에 '일본은 한반도를 갖고 러시아는 만주를 갖기로 하는' 만한교환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실제로, 1898년 4월 25일에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로젠-니시 협정은 러시아가 일본에게 한반도에서의 경제적 자유활동권을 인정하는 것을 내용으로 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이미 러시아는 조선에 있는 러시아 훈련교관 및 재정고문들을 철수시켰다.
당시 러시아가 조선을 일본에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직전인 1898년 3월 27일에 만주에 있는 여순·대련을 점령함으로써 굳이 한반도에서 부동항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만주를 점령한 러시아가 일본에게 한반도를 양보했기 때문에, 일본과 러시아 간에 만한교환원칙이 적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위 논문의 내용이다.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이미 1898년에 만한교환원칙이 사실상 현실화된 점을 고려할 때에, '일본이 러시아에게 만한교환론을 제시하는 등 협상을 모색했지만, 그것이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이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의화단 진압 이후에 러시아가 조선에 야심을 품었음을 입증하기 위해 조선정부의 일본어음 유통금지조치만을 제시한 것은 너무 빈약한 입증방법이라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로젠-니시 협정 이후로는 러시아가 조선 무대에서 발을 뗐고 일본이 단독으로 조선을 장악했다. 그리고 여순·대련을 점령한 러시아로서는 굳히기 전략을 취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사실 당시의 러시아는 여순·대련을 지키기에도 벅찬 상태였다. 왜냐하면, 여순·대련 점령 이후 영국·일본·청나라 등이 가세한 반(反)러시아 연대가 결성되어 러시아가 국제적 고립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런 러시아가 만주에 이어 조선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했다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을 갖기 힘들 것이다.
일본 시사만화 한 군데에서 '조선의 일본어음 유통금지조치는 러시아의 배후 조종에 의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하여, 단지 그것 하나만으로 러시아가 조선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셋째, 일본이 의화단사건 이후 러시아의 팽창정책 때문에 부득이하게 러일전쟁을 벌였다는 주장은, 이미 1888년경부터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모순되는 것이다.
1880년대 후반에 일본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완성되면 극동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이므로, 횡단철도가 완공되기 전에 러시아와의 대결을 끝내야 한다'는 판단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와 싸움을 벌이기 전에 먼저 청나라와의 대결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판단이었다.
이러한 전략적 판단에 기초하여 일본은 1888년 1월 무사 출신인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의견에 따라 러시아를 '국방상 주적'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889년에는 청나라를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방곡령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1894년에는 동학전쟁 진압을 명분으로 조선에 군대를 보내 결국 청일전쟁 승리를 일궈내기도 하였다.
이 부분에 관한 보다 자세한 기술은 한국사연구협의회가 1984년에 발행한 <한로관계 100년사>에 실린 김원수의 '청일전쟁 및 삼국간섭과 러시아의 대한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성과를 본다면, 일본은 이미 1880년대 후반부터 '장래에 청나라와 러시아를 상대로 연달아 전쟁을 벌인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일전쟁(1894년)과 러일전쟁(1904년)이 10년 간격으로 발발한 것은 청나라와 러시아를 차례로 무너뜨린다는 일본의 전략이 그대로 실현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와 같이 일본은 이미 1880년대부터 대륙침략을 위한 사전준비를 하나씩 진행했는데, 단지 의화단사건 직후 러시아의 영향력 강화에 놀라서 일본이 부득이하게 러일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엄연히 배치되는 것이다.
위와 같이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라는 책은 일본의 제국주의침략을 그저 일본의 생존을 위한 부득이한 자구책이라고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일본이 동아시아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치밀한 사전준비를 했던 사실이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동 지은이들에게도 변론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 일본 시사만화에 나타난 일본인들의 정서를 소개하는 데에 기본 취지가 있었다고 변론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의 일본 국민들은 러일전쟁이 일본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전쟁에는 다 명분이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에 침략국 국민들은 자국이 정당하다고 믿기 마련이다. 침략국 국민들이 '우리는 정당하다'고 믿고 있었다고 하여 그 전쟁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여론을 조작한다는 것은 굳이 자세히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침략전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국민 여론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주도하는 지배층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느냐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왜 러일전쟁을 일으켰는가를 분석하려면, 전쟁을 준비한 당사자들인 집권층의 의도를 살펴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국민여론을 조작하는 지배층의 숨은 의도를 지적하지 않는다면, 시사만화 한 장면만으로 일본 국민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은 균형 잡힌 태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시사만화를 통해서 드러나는 일본 국민의 의도는 나쁘지 않았을지라도 그 배후에는 이러저러한 지배층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고 독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균형 잡힌 역사학자의 태도일 것이다.
역사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읽게 되면, 아마 상당수의 독자들은 ‘일본이 러일전쟁을 일으킨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구나’라며 동조적 인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책임 있는 역사학자라면, 그런 시사만화를 제시할 때에 간단한 코멘트라도 달아서 독자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물론 이 책의 공동 지은이들이 의도적으로 일본을 변호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동 지은이들이 그런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은 자료 수집상의 오류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 따르면, 공동 지은이들은 도쿄대학 히라이시 나오아키 교수의 주선 하에 도쿄대학 및 근대일본법정자료센터에 있는 시사만화를 열람하였고, 일본인 다니구치 히로노부로부터 만화 해석에 관한 설명을 들었으며, 일본인 다키자와 마코토로부터 만화와 관련된 2차 자료를 얻었다고 한다.
이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의 지은이들은 오로지 일본측이 제공해주는 만화 자료와 해설 자료만을 갖고 책을 집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내용 역시 당연히 일본측의 관점을 반영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국주의침략의 역사에 관한 한 일본인들은 문제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제공하는 자료는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누구나 다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닐까. 이는 마치 판사가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계속해서 소개해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본측과 일정 정도의 협력을 하는 것도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자료의 수집과 평가만큼은 어디까지나 한국 학자 스스로가 직접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일본 근현대사나 한일관계사를 한국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소개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자료 수집 및 평가 과정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면, 아무리 일본을 옹호하는 결론이 도출된다 하여도 그 점을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전체 동아시아가 일본의 과거 범죄를 청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이때에 국가 간에 정보 교류를 매개하고 있는 학자들이 엉뚱한 실수를 저지른다면, 그것은 단순히 학문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역사에 대한 범죄로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인이 애국주의라는 명분하에 자국의 국익만 추구해서는 안 되듯이, 지식인이 세계주의라는 명분하에 타국의 부당한 대외전략에 이용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지식인에게는 조국이 없어야 한다고 하려면, 한국은 물론 일본에 대해서도 냉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