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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성 후인씨가 죽기 전날 남편에게 쓴 편지 중 일부. 천안경찰서와 천안이주노동자지원센터는 지난 6일 후인씨의 편지를 공개했다.
베트남 여성 후인씨가 죽기 전날 남편에게 쓴 편지 중 일부. 천안경찰서와 천안이주노동자지원센터는 지난 6일 후인씨의 편지를 공개했다. ⓒ 오마이뉴스
"나는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따뜻한 가족도 원한다. 당신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도 다른 여자들처럼 남편에게 잘해주고 싶다. 그런데 당신은 왜 나에게 무관심해."

남편은 따뜻한 말 한 마디 대신 폭력을 가했다. 다른 가정의 아내처럼 남편에게 잘해주고 따뜻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지만, 한 베트남 아내의 소박한 꿈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달 4일 충남 천안시 문화동의 한 주택에서 시체로 발견된 베트남 여성 후인 마이(20)씨가 죽기 전날 남편에게 쓴 편지가 공개됐다.

후인씨는 편지를 통해 "남편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남편에게 잘해주고 싶다"며 한국말을 하지 못해 겪었던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의 편지는 경찰과 결혼이민자 관련 시민단체에 의해 번역된 뒤 지난 6일 공개됐다.

또한 후인씨는 죽기 전에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당신을 용서하겠다"는 말을 남편에게 남겼다. 후인씨는 남편과의 불화 때문에 한국에 온 지 2개월만에 베트남행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음날 남편의 폭행으로 죽게 될 것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전혀 몰랐다.

천안경찰서는 지난 5일 오후 대전시 동구의 한 쪽방에서 은신 중이던 남편 장아무개(46)씨를 살해 혐의로 붙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 받고, 장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늑골 18개가 골절된 상태였던 후인씨의 사체는 죽은 지 8일만에 집주인에 의해 발견됐다.

"당신보다 어리지만, 부부가 정 주면서 살아야지..."

후인씨는 죽기 전날 남편에게 쓴 5장짜리 편지에서 "나는 지금 남편 때문에 너무 슬프다, 한국에 올 때 한국생활을 몰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나에게 (이유를) 물어봐야지. 당신, 나한테 삐쳤느냐. 어려운 일을 의논하고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여자를 아껴주는 방법인 것을 아느냐. 남편을 이해할 수 없고 힘들 때, 몸이 허약할 때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 기분이 안 좋고 불편해 보인다."

후인씨는 남편과의 소통을 간절히 원했다. 그는 "따뜻한 가족을 원한다, 당신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나도 다른 여자들처럼 남편에게 잘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당신은 나에게 무관심하다"며 장씨를 탓하기도 했다.

그는 "기분이 안 좋으면 '이혼하자'고 하는데, 이것은 안 된다"며 "나의 꿈은 한국에서 행복한 가족과 슬플 때나 기분이 좋을 때, 어려울 때 서로 이해하고 의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당신보다 나이는 적지만, 정을 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결혼할 때는 다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장단점이 있다"고 남편을 타일렀다.

후인씨는 결혼 전 베트남에서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냉동식품회사, 가구공장, 농사일 등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편지에서 "베트남에서 힘든 일을 많이 했지만, 생활비로 다 쓰고 남은 돈이 없다"며 "한국에 와서 남편의 이해를 받기만을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으로 가게 되면, 당신을 용서하겠다"며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는 편지 말미에 "당신의 꿈이 이뤄지고, 잘 살기를 기도하겠다"면서 "나는 베트남에 가서 일을 시작하고, 부모님에게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움 요청할 곳만 있었어도..."

편지를 공개한 천안이주노동자지원센터는 "후인씨가 죽기 하루 전에 작성한 편지를 서랍 속에 넣어둬 남편이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고 밝혔다. 후인씨의 사체가 발견됐을 당시, 그의 여권이 찢어진 채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다.

김기수 천안이주노동자지원센터 사무국장은 "결혼이주여성이 남편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만 있었어도 이런 참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인씨가 남편과의 불화를 털어놓고 상담할 곳만 있었어도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후안씨의 경우 결혼중개업체가 폐업한 상태라 한국 사정을 물어볼 곳이 없었다"며 "정부가 지원센터를 만들고 통역 서비스를 하고 있었지만, 한국에 온 지 두 달도 되지 않은 베트남 여성이 이를 알 리가 없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어린 아내가 나이 많은 남편과 사는 데 어려움을 느껴 귀국을 생각했을 수 있다"며 "하지만 무엇보다 '이혼하자'는 남편의 말이 의지할 곳 없는 결혼이주여성에게 위협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씨는 진술을 통해 "사건 당일 밤 9시께 아내가 짐을 싸며 '베트남으로 보내달라'고 하자 이에 격분, 아내를 죽을 때까지 때렸다"고 말했다.

한편 숨진 후인씨의 유해는 지난달 18일 화장됐다. 30일 본국으로 송환될 예정이었지만, 관련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베트남 여성 사망사건 후속대책위원회'가 베트남 대사관쪽에 유골 송환 보류를 요청해 지금은 유골 전달 계획이 보류된 상태다.

남편 장씨가 검거되기 전, 후속대책위원회는 살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상규명과 정식 장례식을 촉구하며 유골 송환을 잠정 중단할 것을 주장했다.
#베트남#결혼이주여성#살해#천안이주노동자지원센터#천안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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