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대한민국 개조론>은 우리 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담긴 '뜨거운' 책이다.
이 책은 저자 유시민이라는 이름부터가 뜨겁다. 그는 현재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이고, 흔히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린다. 그에게는 '노의 남자',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는 레테르가 항상 붙어 다닌다.
게다가 그가 오는 18일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번 대선에서 킹메이커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 그리고 그의 제안이 대선에서 의제로 다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이 책은 더욱 뜨겁다.
정치인 유시민에게는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팬들이 많은 반면, 동시에 그를 정말 싫어하는 이들도 많다. 그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유시민은 '할 말을 하는 화끈한 정치인', '국민에게 즐거움을 서비스하는 정치인'으로 비쳐진다.
반면 그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분열적 개혁주의'로 민주세력에 분열의 골을 깊게 만들었으며, 오늘날 개혁세력의 분열을 가져온 장본인으로 비쳐진다. 그리고 유시민의 직설적인 말투와 뛰어난 논변은 오히려 '옳은 소리를 정말 싸가지 없게 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세간의 평가는 잠시 접어두고, 그가 정치권 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다양한 담론들을 선도적으로 생산해 왔다는 점을 보자. 지금 소개하는 책 <대한민국 개조론>도 국가발전전략으로서 충분히 검토해 볼만한 대안을 담고 있다.
'성공한 독재자' 박정희의 유산을 인정하고 '세계화'를 강화하자
이 책에서 그가 제시하는 국가발전전략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이 밖으로는 '선진통상국가'로 나가야 하고,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선진통상국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선진통상국가로 나가자는 것은 세계 각국과 '자유롭게' 거래하고 투자하며, 주요 산업 분야에서 지구촌을 무대로 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 '세계화'라는 추세를 피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인정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세계화라는 현실을 수용하면, 당연히 개방친화적인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고, '한미 FTA'를 비롯한 자유무역협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이는 한마디로 신자유주의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왜 유시민 의원은 세계화라는 추세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볼까? 세계화는 심각한 양극화라는 커다란 부작용이 있고, 사회 구성원들이 끝도 없는 경쟁에 내던져져 국민의 삶의 질을 저해하는 요소도 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한국에서 세계화라는 추세가 이미 1970년대에 잉태되었다고 말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선택했던 수출주도형 불균형 성장전략이 낳은 유산이라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구조가 그렇게 짜여 있기 때문에 좋든 싫든 현실을 수용하고 시작하자는 것이다. 오히려 유시민 의원은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고 주장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어 적극적인 해외투자와 외국인투자 유치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선진통상국가로 나가자는 것. 이것은 이미 통상국가의 틀이 갖추어져 있는 대한민국을 통상국가로서 더 크게 성공하는 나라로 만들자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시혜적 복지'에서 '생산적 복지'로 나아가야
그런데 이는 보수 진영에서 흔히 하는 얘기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보수 진영의 '성장지상주의'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성장' 전략과 함께 '복지' 전략도 제시한다. 사회투자국가로 나가자는 것이 그것이다.
선진통상국가로 나가는 전략은 필연적으로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게 된다. 사회의 갈등과 불만이 폭발하지 않게 하고 원활한 사회통합을 이루려면 복지정책이 따라줘야 한다. 그래서 그는 밖으로는 선진통상국가로,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로 나가자고 제안한다.
그는 '사회복지'라는 말 대신 '사회투자'라는 말을 한다. 이는 그 정책이 기존의 복지정책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복지정책이 시혜적 방식, 즉 사회적 약자들에게 국가가 소비를 지원해주고 베풀어주는 방식이었다면, 사회투자는 이들의 사회참여와 생산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사회투자를 해서 경쟁력 있는 국민을 키워내자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의 바탕에는 국가의 생산력을 키우는 원천 내지는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사람에게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따라서 사람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국가의 생산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보고, 사람에게 투자하자는 것이다.
결국 국가가 사람의 인지적,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키우는 것에 투자해서 국가의 생산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복지정책의 방향을 수정하자는 것이다.
'선진통상국가'와 '사회투자국가'는 함께 가야
그럼 거시적인 국가발전전략으로서 선진통상국가, 사회투자국가라는 전략은 서로 어떻게 조화하는 걸까?
그는 대한민국이 선진통상국가로서 대외적으로 국제 경쟁에 나서고, 동시에 여기서 승리하기 위해 사회투자국가로서 대내적으로 경쟁력 있는 국민을 제대로 길러내는 국가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사회투자는 단순히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보완적 수단에 머무는 것만이 아니라, 나아가서 국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선진통상국가는 세계화 시대에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기회를 만드는 전략이고, 사회투자국가는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할 수 있는 내부적 조건을 만드는 전략이다. 그래서 이 둘은 따로 갈 수 없단다.
이것은 또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의 상황과 시대적 요구에 맞춰 '개방도 하고 사회통합도 하자', '국가경쟁력도 강화하고 기회의 평등도 이루자'는 것이다.
이러한 조합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전략이다. 선진통상국가로 나자가는 것은 보수 진영이 환영할만한 내용이고, 사회투자국가로 나자가는 것은 진보적 고민이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가치 면에서는 진보적이고, 방법 면에서는 보수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선진통상국가와 사회투자국가의 조합은 진보의 가치와 보수의 방법을 함께 아울러서 '성장'과 '생산적 복지'의 양 날개를 달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양 날개를 달고서 대한민국을 비상시키자는 전략이다.
'네모난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을까?
성장과 복지의 양 날개를 다는 조합, 진보와 보수를 모두 아우르는 조합, 상당히 이상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까? 이건 마치 '네모난 동그라미'를 그리자는 말과 같다.
그러나 그는 '네모난 동그라미'가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할지 모르겠으나, 현실에서는 네모 같기도 하고 동그라미 같기도 한 것이 있을 수 있다고 반박한다. 즉 현실적으로 쓰임이 있다면 얼마든지 타협하고 협력해 보자는 것이다.
보수진영은 평소 원하던 선진통상국가를 얻는 대신 진보진영의 노선에 부합하는 사회투자국가를 수용하고, 진보진영 역시 평소 원했던 사회투자국가를 얻는 대신 보수진영의 선진통상국가를 수용하는 것. 이것이 모두를 승리자로 만드는 전략적 대타협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제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뜨거운 유시민의 성질'이 어디 가겠는가? 그는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을 강하게 공격한다. 한나라당은 일관성 없는 정당, 민주노동당은 책임성 없는 정당이라고 비판한다. 이 책에는 두 당에 대한 강한 비판이 꽤 많은 분량으로 담겨 있어 읽는 이를 '뜨겁게' 만든다.
진보와 보수를 섞어놓은 두루뭉술한 조합은 아닐까?
그는 자신의 제안에 대해 성장 지상주의와 낡은 복지국가론을 넘어서고, 세계화라는 현실과 양극화 해소라는 과제에 대응하는 전략이라는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자부하는 것처럼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의 제안은 사실 영국의 유명한 사회학자 안소니 기든스에게서 빌려온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 내용은 <제3의 길>이라는 책으로 한국에도 알려져 있고, '제3의 길'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채택한 국가운영전략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유시민 의원의 제안은 해외의 사례를 한국에 들여온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제3의 길'은 이미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에게서 진보와 보수를 섞어놓은 두루뭉술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이 통상국가로 가는 운명을 부여받고 다른 길은 다 봉쇄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더 나은 선택이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모색을 사전에 제한하고 차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은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하지 않고 현실인정론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제안은 철저한 시장논리를 관철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복지조차도 시장의 논리로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유시민의 제안, 국가전략의 날개 될까?
유시민 의원은 여권 내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오는 18일 대선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제안이 이번 대선에서 의제로 제시될 가능성이 있을지 관심이 간다.
<대한민국 개조론>은 국가발전전략을 제시하는 책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책은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쓰고 있다.
그는 본래 <거꾸로 읽는 세계사>나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세상에 알려져 있었고, 어려운 내용도 일반 대중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쓰는 글쓰기 실력이 뛰어나다.
이 책은 내용도 알차고, 귀 기울여 볼만한 건설적인 제안이 풍부하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국정에 참여하면서 얻은 경험과 정보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현 대한민국의 복지실태와 그가 장관 시절 마련한 복지대책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사회복지에 관련된 일을 하거나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나아가 일반 국민들도 한국 정치의 발전에 책임이 있는 만큼 쉽게 쓰인 이 책의 내용을 검토해 보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