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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새 대북정책안을 발표한 뒤 지난 19일 한 보수단체 회원에게 달걀세례를 받은 정형근 의원
한나라당 새 대북정책안을 발표한 뒤 지난 19일 한 보수단체 회원에게 달걀세례를 받은 정형근 의원 ⓒ 연합뉴스 최재구
정형근 의원 생각이 났다. 그는 뭐라고 할까?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어제(8일)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접한 직후 드는 생각이었다.

정형근 의원, 그는 얼마 전 한나라당의 새 대북 정책 입안을 주도했다가 보수단체 회원들로부터 달걀 세례를 받기도 했다. 달걀 세례의 배후에는 <조선>과 <동아>의 비난과 규탄이 있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로부터는 북한의 협박에 굴복하고 왕따가 될지 모르겠다는 우려 때문에 기본노선마저 뒤집은 '좌파 보수식 변신(성형)'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잡탕식 대북노선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왔다.

그래도 정형근 의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한나라당도 한반도 주변 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보수단체의 반응을 재는 바로미터가 돼 있다. 어느새 그는 보수 쪽에서는 그래도 가장 '왼쪽'에 서 있어 보인다. 그래서 그의 반응이 궁금했다.

하룻밤 새 '반대'에서 '조건부 협조' 모드로

또 그가 서 있는 '왼쪽 좌표'가 과연 어디쯤인지도 궁금했다. 그가 주도한 한나라당의 새 대북 정책 방안은 어디까지나 아직은 방안에 불과하다. 한나라당도, 경선 후보들도, 정형근 의원도 아직은 표류중이다. 그들의 새 대북정책 방안이 어떻게 정리될지는 아직 유동적이다.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끝일 수도 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반응을 통해 한나라당 새 대북정책 방안의 진정성을, 정형근 의원의 진정성을 가늠할 수도 있겠다.

정형근 의원에게 주목한 언론은 많았다. <동아일보>가 그렇고, KBS나 MBC의 시사프로그램들이 일제히 정형근 의원을 불러냈다. 바로 그가 한나라당의 '전향적 지표'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언행은 헷갈린다. 정치적이고, 정략적이다. 무엇보다 모순적이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대선을 겨냥해 정략적으로,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폄훼하고, 정치적 뒷거래 의혹까지 제기했다. 그런 그가 오늘(9일) KBS 시사프로그램 등에서는 "정상회담을 이렇게 해서는 안 되지만 이왕 이루어진 것은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된다"고 태도를 바꿨다. "의제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한나라당 각계 정당 대표들과 만나기도 하고 이런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적극 협조하고 아마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하룻밤 사이에 많이 바뀌었다. 비방과 공격 모드에서 조건부 협조 모드로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아마도 한나라당 두 경선 후보 진영의 셈법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정략적 의도라고 공격하고 비난만 하기에는 남북정상회담의 비중과 무게가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북한 핵 문제가 걸려 있고, 6자회담 당사국들의 이해와 관심이 첨예하게 얽혀 있는 '고난도 게임'을 '정략적인 시각'으로만 재단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판단도 있었을 법하다.

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만복 국정원장이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공식발표했다.
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만복 국정원장이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공식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보다 더 정략적인 <조중동>

그런 점에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한나라당보다도 훨씬 더 정략적이다. 이들 세 신문은 남북정상회담이 대통령 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해 한나라당보다 훨씬 더 조바심을 내고 있기도 하다.

이들 세 신문의 사설은 온통 남북정상회담의 '정략적 활용'을 경계하고, 우려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조선일보>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시점이 "야당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고 여당의 상승세를 부추길 수 있는 타이밍"이라면서 "북한은 남한 정권에 도움을 준 대가를 반드시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 정권에까지 부담을 주는 합의는 이 정권 단독으로 할 수 없다"며 지레 선을 긋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더 노골적이다. "북이 정상회담에 합의해 준 것도 반보수, 반한나라당 세력의 대선 승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고 묻고 "남북문제로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낡았"다고 질타했다.

<중앙일보> 사설은 그 제목('기대보다 걱정이 큰 남북정상회담')부터 기대보다 걱정이 더 크다.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간 대결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시기적인 문제점들을 들어 '정략적 합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북한으로서는 "남측 대선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결정적 카드를 쓴 것으로 봐야"하며 우리 정부 또한 "5년이 다 되도록 가만있다가 왜 임기 말에 이런 일을 벌이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신문들은 몇 가지 조건을 붙이고 나섰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핵문제의 해결'을 요구했다. <조선일보>는 "핵문제를 비켜간다면 남북정상회담은 대한민국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중앙일보>는 '손에 잡히는 실질적 성과'가 없다면 심각한 안보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아일보>는 "2002년 평양을 방문해 일본인 납북자들을 데리고 나온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처럼 우리 납북자들과 국군 포로들을 데리고 올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 정도는 돼야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동기가 순수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 신문들이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남북정상회담이 대통령 선거를 넉 달 앞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열리는 데 대한 우려의 시각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정략적'이라고 몰아가는 것이야말로 '정략적'일 수 있음을 이들 세 신문은 잘 보여주고 있다. 왜냐면, 이들 신문은 전격적인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와 그 시기가 '정략적일 것'이라는 예단만으로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돼야 할 구체적인 의제나 쟁점들에 대해서는 아예 제대로 살펴보려 하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의제 정하기 전에 '성과'부터 따지는 조급함

그런 점에서 오늘 다른 신문들의 사설은 이들 세 신문의 사설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기본 틀을 짜는 '전기'가 돼야 한다고 주문하는 한편 핵 문제와 경협, 납북자, 이산가족 문제 등 구체적인 쟁점들에 대한 논의 방향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이들 신문 사설에서 주목되는 점은 이번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의미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짚고 있다는 점이다. <한겨레>는 이번 회담이 민족적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초당적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노대통령이 각 당 지도부를 직접 만나 의견을 수렴할 것"을 촉구했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집권을 바라보고 있는 원내 제1당'으로서 책임 있는 태도를 촉구했다.

<경향신문>도 '정치권의 초당적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상회담 발표가 나오자 '선거용 깜짝쇼' 등으로 폄훼하고 나선 한나라당의 대응이나 각기 자신의 공인 것처럼 선전하고 나선 여권 대선 주자들의 가벼운 처신을 질타하면서 "정치권은 정상회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힘을 모을 것"을 촉구했다.

8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오는 28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접하고 있다.
8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오는 28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접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조선일보>가 긴급 실시해 사설에서까지 인용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도 <한겨레>나 <경향>의 이런 사설 내용을 뒷받침한다. 남북정상회담 시기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응답자의 49.1%가 '적절'하다고 응답했다.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한다'는 응답은 42.8%였다. 지금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적절하다'는 응답이 '그렇지 않다'는 응답보다 더 많은 것이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국민적 합의의 근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그렇지 않은 쪽에 더 비중을 두었다.

특히 <조선일보>는 정상회담의 성과 여부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성과를 거둘 것(35.5%)'이라는 의견보다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58.7%)'이라는 견해가 더 많이 나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노대통령은 이런 국민의 눈을 등 뒤에 지고 평양에 가는 것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단속부터 했다.

도대체 뭐가 이리 바쁘고 조급할까. 아직 정상회담 의제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다수의 언론들이 지적한 것처럼 남북정상회담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자면 무척 촉박한 준비기간일 수 있겠다. 그렇더라도 의제도 확정 안 된 이 시점에서 정상회담의 성과부터 묻는 이 조급함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백병규#미디어워치#남북정상회담#정형근#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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