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말도 안 되는 공약을 내놓은 것일까? 그것은 그의 정치 철학과 일하는 자세와 연관된 것이다. 60-70년대 독재개발과 타협했던 이가 '삽질', 개발을 통해 국가를 이끌어가고자 하기 때문이다."(강운태 열린우리당 대선 예비후보)
"이명박 예비후보가 공약으로 내놓고 이를 통해 국민소득 몇 만 불 시대를 이끌 수 있다고 선전했다. 영향력이 큰 신문들도 그에 대해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 십조 원을 들여 경부운하를 만들 경제적 가치가 없다."(김두관 대선 예비후보)
"이명박 후보에게 '경부운하'는 계륵이 될 것이다. 이명박 후보가 기업인 출신이라 이해타산이 밝아서 경부운하 공약을 포기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낡은 성장만능주의 토건개발국가 노선을 고집하고 있다."(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 후보는 토목건설에 대한 전문성이 높은데도 이런 이해 못할 공약을 냈다. 아마도 청계천으로 재미를 본 주변 사람들이 운하 예정 지역의 주민들의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 후보를 유혹한 것 같다."(김혁규 전 경남도지사)
이명박씨를 위한 특별한 자리
9일 오후, 세종문회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한 행사장에서 나온 말입니다. 범여권의 대권 예비 후보들이 줄줄이 나와 한나라당의 대선 예비후보인 이명박씨의 경부운하에 대해 성토했다면 '정치행사' 쯤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 행사는 <경부운하, 축복일까 재앙일까>(박진섭·장지영 공저, 오마이뉴스 공동기획) 출판기념회였습니다.
사실 이날 행사는 이명박씨를 위한 아주 특별한 자리였습니다. 경부운하 공약이 발표되지 않았다면 이 책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생태지평 연구소 박진섭 부소장과 장지영 연구원, 그리고 공동기획자인 <오마이뉴스>가 경부운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명박 씨가 '운하의 나라' 독일의 힐폴슈타인 갑문에 서서 "경부운하가 제 2의 국운융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 지난해 10월, 그 순간부터입니다.
우리는 그 후 10여개월 동안 독일과 네덜란드를 현지 조사했고, 3차례에 걸쳐 경부운하 예정지를 답사했습니다. 심지어 이명박씨가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만난 사람들을 다시 만났고, 그들이 이명박씨에게 보여줬던 똑같은 프리젠테이션 자료로 운하에 대해 설명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결론은 이명박씨의 결론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 이유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10년동안 운하 연구한 100명의 학자?
사실 이 책이 탄생하기까지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선 이명박씨는 "경부운하로 제2의 국운융성을 하겠다"면서 저만치 멀리 가 있었고 우리는 운하에 대해 너무 몰랐습니다. 운하라면 노을 지는 아름다운 라인강에서 낭만적으로 떠다니는 배를 떠올리는 수준이었으니까요. 운하에 대해 생소한 일반 국민들도 저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명박씨가 경부운하 비판론자들을 향해 틈만 나면 강변했던 "10년동안 운하를 연구한 100명의 학자가 있다"는 말이 오히려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10여개월 동안 운하를 탐험하면서 이명박 씨의 주장이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지난 10여개월동안 수백 년, 아니 수천 년동안 운하에 대한 경험을 축적해 온 독일과 네덜란드의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또 경부운하 운하 예정지를 둘러보면서 한강과 낙동강의 지킴이로 살아왔던 수십 명의 관계자들과 학자들을 만났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운하 기술을 팔아먹기 위해 눈독을 들이는 외국의 기술자들은 줄 서있을지 몰라도, 10년동안 경부운하를 연구한 100명의 학자는 없다.' 이명박씨는 줄곧 외국의 투자자들이 줄 서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외국의 기술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이날 생태지평 이사장이자 신륵사 주지인 세영 스님은 출판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통해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전문가와의 논의나 합의 없이 자신의 생각만으로 공약을 무책임하게 결정할 수 없다"고 일갈했습니다.
세영 스님은 이어 "1300만 수도권 시민이 식수인 남한강에 20개의 갑문을 설치해 물길을 막는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 말인가"라고 반문한 뒤 "절대 자신의 생각만으로 큰 피해가 예상되는 일을 추진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경부운하 공약 철회될 때까지 공약철폐운동에 대대적으로 나서겠다"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도 "백두대간을 보자. 산은 물을 넘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면서 "그런 곳을 일부러 끊고 이어 한강과 낙동강 물을 섞어 생태계를 혼란시키겠다는 생각이 과연 맞겠는가. 경부운하는 우리 민족과 인류의 미래에 '축복'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또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해 대선연대를 구성할 예정"이라면서 "경부운하 공약이 철회되지 않을 때에는 공약철폐운동에 대대적으로 나설 것이다"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공동저자 중의 한명인 박진섭 부소장은 "저는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다"고 말문을 연 뒤 다음과 같은 소회를 털어놨습니다.
"이 책은 돈을 벌려고, 유명해지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새만금, 천성산 등 환경 문제에 대해 싸울 때 현장에서 들은 말이 있다. 왜 개발이 결정되고 진행될 때에서야 문제를 제기하냐는 것이다. 경부운하만큼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유럽 운하와 현장을 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강은 운하를 허락하지 않는 강이다. 하지만 유럽 강보다도 아름답고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 나라의 지리, 교통, 지형, 자연은 그 땅에 사는 인간들의 역사적 경험의 축적이다. 그를 억지로 바꾼다면 ‘재앙’이 올 것이다.
앞으로 정치인들이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생산하지 않고 좋은 정책을 만든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적극적 지지를 보내겠다."
대다수 언론, 공약검증은 실종...'나팔수'로 나서
박진섭 부소장과 장지영 연구원은 이 책의 서문에서도 이렇게 적었습니다.
"국민의 자산이자 생명수인 식수원을 내륙주운으로 이용하려면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결정을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 우리나라의 물류교통운송체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한강, 낙동강의 특성 등을 사실 그대로 설명하고 과연 우리에게 운하가 필요한지를 판단케 해야 한다. 또한 운하의 경제적 효율성은 어느 정도인지, 환경적인 문제는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씨와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거창한 구호만 있을 뿐이다."
사실 경부운하 논쟁이 한창인데도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해야할 언론들은 대부분 정치인들이 시시각각 쏟아내는 말의 성찬을 주워 담기 바쁩니다. 심하게 말하면 그들의 '나팔수'가 되어 확성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발행인이기도 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는 이날 축사를 통해 "대다수의 언론이 여론조사 1위의 유력후보의 제 1 공약임에도 수박 겉핥기 식 보도를 하는 것을 보고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대한민국에 직업기자가 많지만 정작 발로 뛰어 이 책을 만든 사람은 시민운동가와 시민기자다, 이를 보면서 한국의 시민사회가 얼마나 단단한지 성숙한지 알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경부운하, 축복일까 재앙일까>는 이명박씨의 '대표공약' 경부운하를 비판하는 내용으로만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강의 역사, 그리고 국민 2/3의 식수원이기도 한, 그래서 우리들의 생명수이기도 한 강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우리나라 4대 강의 지형적 특성과 생태 등에 대한 철저한 자료 조사와 객관적인 분석 데이터가 담겨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운하' 개론서 성격도 갖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운하의 발전사와 한국적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비교 검토한 책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국가의 미래를 짊어지겠다고 결심한 사람이라면 꼭 한번 보았으면 하는 책입니다. 경부운하 공약을 고집하고 있는 이명박 씨에게는 더더욱 좋은 선물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