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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에서부터 익힌 냉면 먹는 솜씨가 일품인 3살배기 유현.
뱃속에서부터 익힌 냉면 먹는 솜씨가 일품인 3살배기 유현. ⓒ 최종수
입맛을 잃기 쉬운 여름철이다. 얼음이 사각사각 씹히는 냉면이 입안의 침샘을 자극하는 오전이다. 사제의 쉬는 날 월요일, 혼자 청승맞게 냉면집에 갈 수도 없다. 일전에 사다 놓은 냉면과 함께, 활동비 40~50만원으로 생활하는 운동가 후배들이 떠올랐다. 전북지역에서 인권평화운동을 하는 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우 부부와 아이 둘, 인권활동가 둘, 손님 여섯에 합이 일곱이었다.

냉면 위에 올라갈 오이와 수박과 복숭아
냉면 위에 올라갈 오이와 수박과 복숭아 ⓒ 최종수
바빠진 마음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냉동실의 냉면과 포장육수, 별도로 만들어 놓은 육수를 꺼내 물에 담갔다. 오이와 수박과 복숭아를 꺼내 보기 좋게 썰었다. 냉면 위에 얹을 고명이었다. 큰 냄비에 물을 올리고 계란을 넣었다. 냉장고에서 묵은 김치와 어린 양파김치를 꺼내 줄기만 썰었다. 토종콩 두부를 썰어 두부 김치를 만들고, 수박과 복숭아 과일접시도 미리 준비해 두었다.

등줄기에서 땀방울이 주룩주룩 흐르기 시작하자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베란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우 부부와 아이들과 활동가들이 응접실에 들어서자 집안에 환한 생기가 돌았다. 빨랫줄을 타고 열린 베란다의 방울토마토도 빨갛게 웃고 있다.

묵은 김치와 어린 양파 김치, 묵은 김치는 필수
묵은 김치와 어린 양파 김치, 묵은 김치는 필수 ⓒ 최종수
"여름철에는 남의 집 방문도 삼가라고 했는데 맛있는 냉면까지 준비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사랑수 신부의 사랑을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냉면이 생각나는데 혼자 끓여 먹으면 맛이 있나. 수저 하나 더 놓으면 되는데…."

펄펄 끓은 냉면을 찬물에 씻어 대접에 담는다. 수박과 복숭아와 오이, 묵은 김치와 어린 양파김치에 삶은 계란을 한가운데 고명으로 올렸다. 냉면 위에 화사한 꽃이 피었다. 얼음이 사각이는 육수를 담고 참기름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참깨를 뿌렸다. 음식은 예술, 예술작품이 완성되고 냉면잔치가 시작되었다.

얼음이 사각이는 냉면
얼음이 사각이는 냉면 ⓒ 최종수
교자상에 둘러앉아 냉면을 먹는다. 세살배기 유현이의 냉면 먹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유현이 임신 했을 때 국수, 냉면, 우동 같은 면을 많이 먹었어요. 뱃속에서 익힌 솜씨인지 면을 잘 먹어요."
"우리 유현이 쪽! 쪽! 소리 나게 잘 먹네."
"워매, 징하게 맛있네요. 광주에서 소문난 식당 냉면 맛도 저리 가라 허네요. 냉면집 채려야 것어요."

모두가 육수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아우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챙겼다. 유채기름과 들기름, 볶은 참깨, 복숭아와 포도 등을 비닐봉지에 담았다.

교자상에 둘러앉아 먹는 냉면 맛 끝내줍니다!
교자상에 둘러앉아 먹는 냉면 맛 끝내줍니다! ⓒ 최종수
"친정집 큰 언니 같아요."
"혼자 먹으니까 많이 필요 없어요."
"유현이 인사해야지."
"안뇽이 께-세-요."(배꼽 인사를 하는 세살배기)
"하-하-하-"
"우와 잘 하네."
"천사의 재롱이 냉면 맛보다 상큼하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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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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