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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평원의 땅이라면 네팔은 산의 땅이었다.
인도가 평원의 땅이라면 네팔은 산의 땅이었다. ⓒ 조태용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은 인구 2700만의 산악국가다. 면적은 한반도의 2/3에 해당하는 작은 국가이며 인접 국가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과 인도다. 그 거대한 인구를 가진 두 나라 사이에 이 작은 나라가 독립국가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신비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도와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이 위아래에 존재해서 네팔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중국이 네팔을 침공하는 것은 인도를 침공하려는 것으로, 인도의 침공 역시 그렇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240불(2001년)로 한국의 70년 초의 국민소득과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네팔에서는 아주 오래전 우리 시골마을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이미 고도 자본주의에 접어든 대한민국에서는 아련한 향수처럼 전해오는 공동체적 삶이 남아있는 시골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라나시는 네팔로 가는 여행자들의 허브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바라나시에는 네팔로 가는 사람들이 많고 교통편도 그 어느 곳보다 편리하다고 할 수 있다. 바라나시에서 네팔로 가는 방법 중 여행자들이 선택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여행사를 통해 포카라나 카트만두까지 버스를 이용하여 가는 방법과 두번째는 기차를 타고 갈수 있는 고락푸르까지 갔다가 거기서 다시 소나울리로 가는 방법이다. 소나울리는 인도와 네팔의 접경도시다. 네팔 비자는 소나울리 접경 도시인 바이라와에서 받을 수 있다. 우리는 기차 예약을 하지 못해서 여행사의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바라나시에서 네팔의 포카라까지는 버스를 타고 1박2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며 경비는 약 1인당 600루피로 그 안에는 첫날 아침과 하루 숙박비가 포함되어 있다.

숙소를 떠나 바라나시역 근처의 여행사 버스가 출발하는 곳으로 가보니 승강장엔 벌써 버스가 와있다. 그 주변엔 배낭을 짊어진 다양한 나라의 여행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네팔의 포카라와 카트만두로 가는 사람들이다. 여행자들 중에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러 가는 전문 등산객차림의 여행자도 많았다. 드디어 안나푸르나로 떠나는 구나.

산악지역답게 네팔의 논은 대부분이 계단식 논이었다.
산악지역답게 네팔의 논은 대부분이 계단식 논이었다. ⓒ 조태용
버스는 출발하자마자 북쪽을 향해 달렸다. 초원지대를 지나 바나나농장을 지났다. 그렇게 10시간을 넘게 달려 네팔 국경지역 소나울리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지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국경을 넘기 위해 인도측 출국심사대에서 출국 심사를 하고 다시 네팔입국심사대에 가서 네팔 비자를 받았다. 네팔 비자는 소나울리 인접도시 바이라와에서 30달러에 받을 수 있고 기다리는 사람만 없다면 그 시간은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단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려면 사진 한 장이 필요하니 인도를 거쳐 네팔로 여행하려면 미리 준비해가자.

인도와 네팔은 언어가 비슷하고 생김새도 비슷해 국경을 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네팔인구의 80%는 인도와 같은 아리아인이다. 버스에서 내린 여행자들은 비자를 받고 나서 다시 국경을 건너며 여행사에서 지정한 숙소에 묵게 된다.

여행사를 이용한 승객들은 아침 6시쯤 일어나 카트만두와 포카라로 가는 버스에 각각 나눠타게 된다. 포카라까지는 약 9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드디어 포카라행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곳으로 가버리지 않을까 하는 묘한 흥분이 생겼다.

인도와 네팔을 연결하는 중심도로인데도 불구하고 2차선의 좁은 도로로 연결되어있다.
인도와 네팔을 연결하는 중심도로인데도 불구하고 2차선의 좁은 도로로 연결되어있다. ⓒ 조태용
"포카라 포카라!"

홍콩 영화배우 홍금보를 연상하게 하는 티베족으로 보이는 버스안내원은 연신 포카라를 외쳤댔다. 문맹률50%인 네팔에서 행선지를 외치지 않으면 버스를 타지 못하기 때문일까? 유난히 활기가 넘치는 목소리가 싫지 않았다. 버스는 네팔의 국경도시 바이라와를 넘어 드디어 산악지형으로 접어든다. 이제까지 인도의 평원만 보다가 갑자기 나타난 산악지역이 반갑다.

깎아지른 절벽에 세운 이차선 도로를 따라 구비 구비 네팔의 산악지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방을 둘러 봐도 산뿐이다. 버스 승강장 주변엔 우리나라 70년대 점포처럼 보이는 가게들이 몇 개씩 들어서 있다.

버스위에 올라탄  여행자들은 멋진경치에 환호했다.
버스위에 올라탄 여행자들은 멋진경치에 환호했다. ⓒ 조태용
버스는 스피드 40km라는 표어처럼 느릿하게 달려갔다. 몇몇 여행자들은 버스 위로 올라가 풍격을 만끽하기도 했다. 나도 올라가고 싶었지만 위험하다는 아내의 만류로 올라가지 못했다. 위에 있는 여행자들은 연신 "원더풀"을 외쳤다.

우리나라 70년대에 동네 골목에 있었을 것 같은 네팔의 가게
우리나라 70년대에 동네 골목에 있었을 것 같은 네팔의 가게 ⓒ 조태용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제까지 인도에서 봤던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일단 주택의 형식 자체가 인도의 건물보다 예뻤다. 보통 낮은 이층집이 많았고 황토집으로 되어 있었다. 별도의 난방은 없다고 했다. 산악지대에서 나타나는 계단식 논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대부분의 주택은 산중턱이나 산 위에 있었다. 농산물 생산량이 적은 네팔은 대부분의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한다고 했다.

버스는 운행중에 소변이 마려운 사람이 있으면 길거리에 정차하곤 했다.
버스는 운행중에 소변이 마려운 사람이 있으면 길거리에 정차하곤 했다. ⓒ 조태용
흙먼지 날리는 데칸 고원을 넘어와서 그런 것일까? 네팔의 공기는 깨끗했고 인도에 비하여 시원했다. 더위에 지쳐있던 온 몸의 세포가 하나하나 깨어나는 듯 한 기분이 든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포카라에서 멀리 눈 덮인 설산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인지 그 어느 곳보다 흥분되었다. 버스는 9시간을 달려 드디어 포카라에 도착했다. 우리는 포카라의 외국인들이 묵는 숙소가 밀집되어 있는 페화호수가의 레이크 사이드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드디어 내 눈에 포카라의 페화호수가 한 눈에 들어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난 4월의 여행기입니다.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도#네팔#안나푸르나#페화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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