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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절임에도 태극기를 게양한 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 황승민
"민아~, 일어나서 태극기 달아라. 광복절이잖아."

모처럼의 휴일이던 15일, 나는 계속된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일어났다. 한참을 꾸물대다가 거실로 나가니 엄마는 창고에서 태극기를 꺼내고 계셨다. 우리 집에서 국기를 게양한 건 현충일이 마지막이었는지 태극기는 조기 형태로 보관되어 있었다.

"오늘은 조기 거는 거 아니잖니?"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네, 광복절은 기쁜 날이니까 조기가 아니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초등학교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라의 좋은 날에는 그대로 걸고, 슬픈 날에는 조기로 거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는 '태극기 그리기 대회'라는 행사도 있었고, 중학교 때는 국기함을 만들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태극기에 대한 지식은 거기서 멈춘 것 같았다.

'조기는 어느 정도 내려서 다는 거더라?', '건·곤·감·리 순서가 어떻게 되지?' 하나둘씩 궁금함이 꼬리를 잇기 시작했다.

궁금증 해결을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마침 메신저에 접속해 있던 친구 A가 말을 걸었다. 그에게 건곤감리 순서를 아느냐고 물었다. A는 "그게 뭐야?"라며 반문했고, 태극기 괘의 명칭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난 후 "하나도 기억 안 나, 웬일이니"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자기나라 국기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국기인 태극기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15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종로와 광화문 일대에서 잘못 그려진 태극기 도안 세 가지와 제대로 된 태극기 도안을 섞어 '어떤 것이 진짜 태극기일까요?'라는 물음을 던지고 거리조사를 실시했다.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종로를 찾은 10대 초등학생부터 20대 대학생, 30·40대 직장인, 60세 이상 어르신들과 몇몇 외국인들이 참여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종묘시민공원이었다. 공원 안은 언제나처럼 바둑을 두시는 어르신들부터 더위를 피해 나오신 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더군다나 이날 종묘공원에서는 '북핵폐기 북한해방 8.15 국민대행진' 집회가 열려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군복 차림의 할아버지들께서 여기저기서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시는 통에 겁을 먹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어 준비해간 태극기 그림을 펼쳐 보였다.

이상한 태극기가 보여서였을까. 어르신들이 관심을 보이며 순식간에 모였다. 태극기 문양은 이런 모습이라고 확신하는 어르신부터 긴가민가하시는 어르신까지 다양했다. 의견이 다른 어르신들 사이에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몇몇 할아버지들께서는 "자기 나라 국기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며 역정을 내셨다. 하지만 자기 나라 국기를 모르는 국민들은 의외로 많았다.

다음은 기자가 준비했던 세 가지 가짜 태극기 도안과 제대로 된 태극기 도안이다.

▲ 어떤 것이 제대로 된 태극기일까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래 상자기사에 나온 도안이 정답입니다.
ⓒ 황승민

설문에 참여한 83명 중 38명(약 45.8%)만이 정확한 태극기 도안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들 중 태극 도안의 의미 혹은 건·곤·감·리 괘의 이름과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어르신 한 분만이 4가지 괘와 그 명칭을 정확히 연결하셨지만, 뜻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20대 대학생들 "유심히 관찰한 적이 없어서..."

▲ 설문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생들. 제대로 된 태극기 도안을 찾아내기 위해 한참 고민한 후 스티커를 붙였다.
ⓒ 황승민

'자주통일 범국민대회'가 열린 광화문 쪽은 20·30대 젊은이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학생이 거리조사에 적극 참여했다. 대전에서 온 김진현(27)씨는 "태극기를 유심히 관찰해야 (괘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보기만 했던 것 같다"며 지난날을 반성했다. 김용수(29)씨는 "20대들이 태극기를 정확히 모르는 것은 개인 책임이라기보다 (태극기를) 알리려는 교육이 부족했던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균(22·아주대 2)씨는 "다른 나라에선 국기를 옷에 그려 입기도 하는 등 우리가 태극기를 대하는 것보다 국기를 친숙하게 여긴다"면서 "한국도 2002월드컵을 계기로 나아지긴 했지만, 이전에 국기가 신성시되기도 했던 만큼 아직은 어렵게 느낀다"고 말했다.

▲ 부산 동아대학교에 재학 중인 노영민(22)씨는 태극기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황승민
부산에서 온 노영민(22·동아대 2)씨는 단숨에 정확한 태극기 도안을 찾아내 주변 동료들을 놀라게 했다. 노씨는 "관심이 있으면 얼마든지 외울 수 있다"면서 "태극기의 문양보다는 그 안에 내포된 의미가 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내포된 의미가) 현 시대랑 맞지 않는 경향이 있고,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며 태극기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얼굴'에 대한 관심 필요

태극기 문양을 정확히 기억하는 국민들에겐 나름의 비법이 있었다. 종묘공원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정답을 맞히기 전 "서이, 너이, 다섯, 여섯"이라고 중얼거리셨다. 알고 보니 왼쪽부터 위에서 아래로 괘의 숫자를 센 것. 할아버지는 "이것이 맞는 거여~"라며 호통을 치셨다.

또 "고레(이것)!"라고 말하며 단숨에 답을 가리킨 사람이 있었다. 일본에서 온 고이즈미(53)씨였다. 고이즈미씨는 누구에게 배운 것은 아니고 그저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에" 태극기를 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태극기 문양은 참 어렵지만 서로 상반되는 것들을 연관시켜서 기억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각선으로 마주보는 괘들을 짝지을 경우, 길게 뻗은 괘 건너편에는 짧은 괘 두 개가 있다는 설명이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대표팀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다양한 응원문화와 더불어 떠오른 것이 태극기 패션이었다. 이를 계기로 학교 교실에서나, 혹은 국경일에나 볼 수 있던 태극기는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최근 태극기가 그려진 다양한 상품이 나오면서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외국인을 위한 태극기 홍보 상품 개발도 눈에 띈다. 하지만 그 전에 한국의 얼굴격인 태극기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 속의 한국, 한국의 세계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다.

태극기에 대해 알아봅시다


- 태극기가 담고 있는 하양, 빨강, 파랑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태극기의 바탕색인 흰색은 밝음과 순수,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냅니다. 태극 문양의 파란색은 음, 빨간색은 양을 나타내며 이 둘이 하나로 어우러져 음양의 조화를 상징합니다."

- '건곤감리'가 무슨 말이죠?
"중앙의 태극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4괘를 뜻합니다. 건곤 양괘는 우리 민족의 무궁한 정신의 표상입니다. 왼쪽 위에 자리한 건은 우주만물 중에서 하늘뿐만 아니라 봄, 동쪽, 인을, 오른쪽 아래에 있는 곤은 땅과 여름, 서쪽, 의를 상징합니다. 감이는 광명의 정신을 나타내지요. 감은 달과 겨울, 북쪽, 지혜를 상징하며 오른쪽 윗부분에 있습니다. 리는 불과 해, 가을, 남쪽, 예를 뜻하며 왼쪽 아랫부분에 있습니다."

- 국기는 언제 게양하나요?
"국기는 다음과 같은 날에 게양합니다. 1월 1일(신년), 3월 1일(삼일절), 7월 17일(제헌절), 8월 15일(광복절), 10월 1일(국군의 날), 10월 3일(개천절), 10월 9일 (한글날) 같은 경축일입니다. 6월 6일(현충일)에는 조기(깃봉과 깃면의 사이를 깃면 너비만큼 내림)를 게양합니다. 그밖에도 국장 기간, 국민장일, 정부가 따로 지정하는 날에 게양합니다."

#태극기#건곤감이#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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