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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아시다시피 최종 학력이 '고졸'입니다. 두 분 다 나중에 정식 박사 학위와 명예박사 학위를 많이 받으셨지만, 스무 살 즈음한 시절의 학력은 목포상고와 부산상고가 최종입니다.

저는 두 분의 당선 직후 그런 제안을 드렸습니다.

"당선 그 차제로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습니다. 취임 이전 적절한 시기에 실업계 고등학교를 방문하면 어떻겠습니까. 학력보다 중요한 게 노력이라는 점을 아이들 가슴에 심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취임 전후의 복잡다단한 일정으로 이 제안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당선자는 현역 대통령보다 더 바쁩니다.

능인선원의 지광 스님이 자신은 대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고, 고졸에 불과하다고 말씀한 인터뷰를 보고 다시 10년 전, 5년 전 그 제언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껍데기를 보고 판단하는 한국 사회, 그 풍토를 바로 잡기 위해 두 분이 파격적인 방문을 했더라면 지금쯤 한국 사회 풍토가 좀 더 달라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입니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호남 지역처럼 그간 소외돼 온 지역의 인재들이 기회를 얻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고졸 장차관이 많이 배출된 것은 사실입니다. 제 말은 초기부터 한국 사회의 학력 중시 풍토를 과감하게 깨뜨리는 분위기를 잡아나갔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뜻입니다.

지광 스님, 저는 이분이 다른 직종도 아니고 종교 지도자의 입장에서 참으로 어려운 고백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콤플렉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광 스님은 고졸 학력으로 1976년도에 <한국일보> 기자 시험에 합격하셨더군요. 저는 대학교에 다니고도 1978년도에 <한국일보> 기자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70년대 후반, 반유신 데모로 한 달, 민청학련 사건으로 석 달을 영장도 없이 구금되고, 군대에 가서 다시 또 보안사에 끌려가 죽도록 두드려 맞고, 제대하고 졸업했을 때 저는 조금이나마 자유로운 공기를 맛보고자 기자를 지망했습니다.

<한국일보> 시험, 어렵더군요. 당시는 <한국일보>가 신문으로서 영향력이 셌는데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 "거의 매일을 철야근무하다시피 해야 하는데 잘할 수 있겠느냐"고 면접관이 물었는데, 속 시원한 대답을 못 드렸나 봅니다. 혹은 시위 경력 때문이었는지…. 이후 방송기자와 정치인으로 30여 년 있으면서 그때 그 면접관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빡세게' 근무하고 있습니다.

장미희씨와 지광 스님의 기사를 전하면서 마틴 루터 킹의 유명한 연설이 떠올랐습니다.

"…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던 저 황폐한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저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학력이나 학벌이 아니라 실력과 노력으로 평가받는 사회입니다. 열 몇 살 때 친 시험 성적이 인생의 성적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우주에서 가장 고귀한 한 인격체, 한 생명을 평가하는 모든 기준일 수 없습니다.

최종학교를 졸업한 이후, 혹은 원하는 학교에 못 갔더라도 그 후 10년, 20년, 30년 남보다 더 열심히 살았을 그분들의 노력과 그렇게 해서 양성된 실력을 인정해주는 사회를 열망합니다.

그것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진화는 국민소득 3만 달러, 4만 달러일 때 자동적으로 달성되는 게 아니라 행복지수, 만족지수가 그만큼 되어야 합니다. 성장의 혜택을 골고루 나눠갖고, 국가의 복지제도가 한 인간의 최소한도의 존엄성을 보장해줄 때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평준화를 지지합니다. 평준화가 없었더라면 속칭 K1, K2, K3 식의 학벌 분류는 얼마나 더 심했을까요.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지광 스님, 저보다 네 살 많으시던데 그 용기와 그간의 아픔에 작은 격려와 위로를 보냅니다. 그리고 정동영이 만들고 싶은 대한민국, 정동영이 만들어야 할 대한민국을 새삼 일깨워주신데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정동영 기자는 통일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으며,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예비후보입니다.


#정동영#학력#학벌#지광스님#윤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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