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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 능인선원 원장 스님이 18일 오후 강남구 포이동 능인선원에서 자신의 허위 학력 사실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광 능인선원 원장 스님이 18일 오후 강남구 포이동 능인선원에서 자신의 허위 학력 사실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학
아무래도 이번엔 구조주의적 시각이 열세다. 최근 잇달아 터지고 있는 문화 예술계 인사들의 허위 학력 사건에 대한 논란이 그렇다. 한쪽에서는 '거짓말'의 근원으로 '학벌사회'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거짓말을 낳은 '욕망'과 그 '가식'에 더 주목한다. 물론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오늘 20일자 신문 지상에서 드러난 그 갈래들을 살펴보자.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국민일보>에 쓴 '학벌사회와 승자독식'에서 가짜 학력 파문의 근원은 배타적 패거리주의 문화의 학벌 사회에 있다고 진단했다. 학벌사회를 대체할 한국 사회의 공정한 경쟁 원리의 모색과 그 실천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학벌사회의 문제로 "개인의 능력과 개성, 그리고 창의력에 기반한 자아실현과 계층 상승을 불가능하게 하는 구조"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KAIST 전봉관 교수(인문과학부 국문학)가 <조선일보>에 실은 '본질은 거짓말이지 학벌주의가 아니다'는 문학평론가 이명원의 시각과 대척점에 서 있다.

전봉관 교수 또한 학벌주의의 문제를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바라보는 '지점'에서 문학평론가 이명원과는 전혀 다른 곳에 서 있다. 학벌주의의 폐해를 인정하면서도 그는 학력 위조의 핵심은 '거짓말'에 있다고 단언한다. 학력 위조의 당사자들이야말로 '학벌'을 누구보다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학벌주의의 폐해에 앞서 거짓말은 거짓말 그 자체로서 응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보란 듯이 살아가고 있는 '비학벌' 출신자들을 위해서도 더욱 그래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설가 조경란이 <동아일보>에 쓴 '슬픈 고백의 행진'은 구조주의적 시각과 실존주의적 시각의 교차, 그리하여 '거짓말과의 동거'까지를 거론한다. 그는 자신 또한 학력을 속일 뻔했던 아슴푸레한 20대 초반의 경험을 반추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학벌이 가장 큰 장애가 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분야에선 다른 누구보다 열정이 있고 능력이나 경험을 갖췄"는데 학력이 문제가 돼 그 능력과 열정, 경험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번에 학력이 밝혀진 유명 인사들이 그 문제만 제외한다면 지금 그 자리를 지키기에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라고.

그래서 그는 삶은 "거짓과 진실, 고통과 행복 같은 정교한 무늬로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며 거짓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모두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설가 조경란 칼럼의 결말은 문득 드는 딴 생각에 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언제나 진실만을 말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경향신문> 김택근 논설위원의 칼럼을 읽으면 그런 걱정은 접어도 될 것 같다. '슬픈 고백'까지도 결코 온전한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김택근 논설위원의 칼럼 '스님의 눈물'은 자신의 가짜 학력을 털어놓은 지광 스님의 눈물에 관한 글이다.

김택근 논설위원의 시선은 뜨겁다. 스님이 흘린 눈물이 무엇을 위해 흘린 눈물인지를 물었다. 죽어가는 자연을 위해서, 아니면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서인가라고. 그 눈물은 무엇을 녹이고, 씻기고, 닦아줄 것인가라고도 물었다. 그의 눈물을 보며 부처는 뭐라 하실 것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그 뜨거운 물음에 화답하기엔 '스님의 눈물'이 너무 차갑다. 김택근 논설위원은 지광 스님이 가짜 학력을 털어놓으면서 한 말과 처신 또한 다른 '가짜 인생'과 다르지 않았다고 보았다. 법력보다 학력을 내세운 그의 포교 활동 등 과거의 행적도 그렇지만, 자신의 거짓 학력을 해명하면서도 은연중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었다'는 점을 과시하는 듯한 언행에서 김택근 논설위원은 '스님의 눈물' 또한 "특별하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스님으로서가 아닌, 인간적인 연민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그는 묻고 또 묻는다.

"믿을 것은 무엇이고, 믿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백병규#미디어워치#지광스님#학력위조#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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