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간지 <문학수첩> 가을호가 우리 시대 내로라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분석 특집을 마련했다. 내건 특집 제목은 '이 작가는 왜 읽히는가'. 차미령ㆍ김예림ㆍ유성호ㆍ김춘식 등 네 명의 평론가가 각각 소설가 김훈ㆍ공지영, 시인 류시화, 그리고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맡았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베스트셀러가 모두 베스트 북일 수는 없다"(유성호). 또 "독자 대중과의 접선에 성공한 작품에는 언제나 나름의 미덕이 존재한다는 식의 주장은 위험하게 느껴"(차미령)진다. 덧붙여 "'작가-책-독자'라는 소통 개념에서…'생산자-상품-구매자'라는 형태로", 즉 "'독서'가 '소비'로 대체되는"(김춘식) "오늘날 작가란 절대 혼자 움직이지 않으며, 조직적인 산업적 기획과 산발적인 대중의 가변성과 함께 움직일 수밖에"(김예림) 없다.
그럼에도 베스트셀러 작가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것을 통해 독자를 읽고, 산업을 읽고, 나아가 시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거기에 "출판 기획과 마케팅, 작가와 작품과 독자의 소통, 자본과 문화의 연관, 문화의 생산과 수용, 대중문화와 미디어, 문화적 형태의 권력과 정치적 이데올로기 등의 문제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머리말). 베스트셀러는 하나의 '현상'이다. 네 필자의 네 작가, 현상에 대한 해석을 간추려본다.
[김훈에 대해] "김훈이란 인간 그 자체가 문제적 텍스트"
먼저 문학평론가 차미령씨는 소설가 김훈의 저작 가운데 장편소설 <남한산성>의 생산ㆍ유통ㆍ수용 과정을 집중 분석했다. 차씨의 글은 '남한산성 리포트'란 제목처럼 평론보다는 일종의 보고서 형식을 띠고 있다. 차씨는 작가의 구상과 집필의 특징에서부터 이미지, 출판 마케팅, 매체의 영향력, 구매독자의 특성, 온라인 서점의 각종 독자 서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차씨는 우선 잠재적인 독자가 <남한산성>을 선택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매체의 영향력과 이미 형성된 작가의 이미지를 꼽았다. 그는 TV 사극 붐이나 소프트한 역사서류 붐의 연장선상에서 매체의 영향력을 읽어냈다. 또 작가의 이미지와 관련 "김훈은 '밥벌이의 노동'을 하는 독자와 다름없는 생활인인 동시에 자전거 여행을 하는 자유인으로 독자들에게 수용"되기에 "김훈이라는 인간 그 자체가 일반인을 대화와 논쟁의 장으로, 또 그가 쓴 책으로 유인하는 문제적 텍스트"라고 보았다. "많은 독자들이 김훈의 책이었기에 <남한산성>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차씨는 또 "<남한산성>은 독자들이 많이 알지도, 그렇다고 아주 모르지도 않는, 독자들의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역사"를 다룸으로써 "집단의 과거를 알고자 하는 욕망과 결부"되고 "다시 현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으로 뻗어나갔다"고 분석했다. 특히 "'치욕과 자존'의 강조"로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특히 남성들의 이목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차씨는 문학적인 측면에서는 <남한산성>이 "상상력, 서사성, 유머 등으로 무장한" 2000년대 젊은 작가들의 주류 소설과 다른 길을 걸은 것으로 파악했다. 차씨는 <남한산성>은 유머보다는 비장미를, 서사성보다는 문체를,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심리 분석을 더 부각시킴으로써 "다른 예술장르가 제공할 수 없는 '문학적인 것'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독자층을 품어안으면서, 그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메시지를" 던졌다고 진단했다. 덧붙여 독자들은 그 속에서 위정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고통받는 대중에 대한 공감을 얻고 있다고 보았다.
[공지영에 대해] "포스트모던 소비사회의 대표적인 중견작가"
문학평론가 김예림 성공회대 연구교수(동사이아연구소)는 '공지영이라는 현상의 불ㆍ투명성에 관하여'에서 "공지영의 작품들은 복잡한 이론적 분석이나 미학적 해설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는 따라서 1980년대 특유의 소설적 상상력이 외부 환경의 전면적인 전환 과정에서 어떤 생존 기술을 획득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표지로서 '공지영 현상'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김 교수는 먼저 "공지영에 대한 평론계의 입장이 아슬아슬 '불안한' 것에 비하면 그녀를 향한 대중적 호응은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높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공지영의 작품은 "동일화에 기반을 둔 감정이입, 정서적 공감, 감성적 몰입 등"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지적하고 있는 "수용자 대중의 미적 취향의 경향성"에 기대고 있기에 "최저의 형식도(度), 최고의 현실도(度)를 통해 대중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좀더 나아가 공지영의 현재 작품은 역사적ㆍ사회적 규정력을 뛰어넘어(무시하고?) ▲유머, 재미, 희망을 새로운 모토로 ▲'인간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며 ▲보편성ㆍ보편적 가치에의 환상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그녀와 독자 대중으로 하여금 '행복하게' 결합ㆍ결속할 수 있도록 했고 또 앞으로 그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공지영 작품에 대한 집단적인 감상적 민감성의 문제는 "'센티멘트(sentiment) (문화)산업'이 갖는 일반적이고 지배적인 속성과 연관지어 검토되어야 한다"면서 공지영에 대해 "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소비사회의 대중 취향 혹은 대중 취향 산업의 장으로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대표적인 중견작가"라고 규정했다. 특히 같은 386세대 작가인 방현석의 새로운 사유를 위한 노력과 비교해 공지영의 '선택'을 비판했다.
[류시화와 하루키에 대해] "'한류 현상'과 '하루키 현상'의 근원은 같다"
유성호 한국교원대 교수(국어교육)는 시인 류시화가 갖는 대중성의 축을 '의사 종교성'과 '사랑의 시학'에서 찾고, 그 두 축을 자신의 글 제목('의사 종교성과 사랑의 시학')으로 삼았다. 유 교수는 먼저 "특유의 삶에 대한 따스한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 그리고 "계층과 성별과 이념의 편차를 떠나 살아 있는 뭇 생명을 향하고" 있는 류시화의 언어는 "속악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신적 치유와 깨달음을 주는 의사 종교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이어 "류시화의 연애시편들은 대부분의 대중문학들이 견지하는 가벼움과 교양물들이 지니는 무거움 사이를 곡예하듯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통과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결국 류시화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명상과 구도의 몸짓, 근원과 궁극을 추구하는 꿈의 언어, 절충적 교양주의 등"이 "대중을 흡인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또 사회적 상황론을 배제함으로써 가능했던 류시화의 "원형적 보편성의 언어는 역설적으로 사회 통합 기능을 수행한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동국대 김춘식 교수(국어국문과)의 '동아시아 문화의 상업적 연대와 하루키 현상'은 자본주의적 일상성과 소비문화를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된 '동아시아의 새로운 문화적 공동성'이란 시각에서 하루키 현상을 분석했다. 그는 특히 '하루키 현상'이 최근의 '한류 현상'과도 "하나의 근원적 일치점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았다. 즉, 두 현상 모두 '자본주의적 도시와 일상', '상업화된 대중문화', '대중문화에 대한 감수성과 향유의 기억'을 매개로 이루어진 감성적 연대 등을 하나의 핵심적인 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런 점에서 하루키 문학의 여전한 인기는 "자본주의적인 일상을 지배하는 문화적 감수성의 핵심을 관통하고 그 흐름을 읽어내는 작가의 능력에서 가장 큰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그는 90년대 후반 이후 하루키 등 일본 작가에서 두드러진 오컬티즘적인 성향은 "현실보다는 허구에 더 많은 공감을 표현하는" 독자들의 새로운 상상력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