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동아> 기사 화면 캡쳐
<신동아> 기사 화면 캡쳐

<동아닷컴>은 달랐다. <조선> <중앙>이 21·22일자 사설을 통해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향해 '경부운하 공약 재검토'를 촉구할 즈음 <동아닷컴> 헤드라인을 장식한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최초공개] '이명박 운하' 47개 여객·화물터미널 상세 위치도
물류터미널 2개 대구, 항구형 국가공단 구미가 최고 수혜지, 파주·행주·밀양 터미널은 중국·동남아 전진기지 겨냥


<동아닷컴>은 <신동아> 8월호(통권 575 호)에 실린 이 기사를 사이트 제일 꼭대기에 노출시켰다. 무려 20여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벌써부터 '최고의 수혜지' 운운...아찔

제목만 보면 이명박 후보는 이미 대권을 거머쥐었고, 경부운하 공약은 구체적인 실현단계에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최고의 수혜지' 운운하는 것을 보면 아찔하다. 벌써부터 여객·화물터미널이 위치할 47개 지역의 땅값이 들썩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부동산 업자들이 '경부운하는 핵폭탄급 부동산 이슈'라고 말하더라"는 한 지인의 전언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제목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기사에는 각 지역의 터미널 위치도를 넣었고, 그 아래에 붙은 설명은 다음과 같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에 들어설 행주 여객·화물 공용 터미널.
서울지역 한강에 들어설 여객터미널 위치도. 용산(청암동)을 제외하고 한강시민공원 선착장과 일치한다.
충북 충주시 장천리의 충주 여객·화물터미널.(위) 이 후보측이 세계적 조형물로 기대하는 충주·문경 리프트.(아래)
경남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에 들어설 밀양 터미널(왼쪽)과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후용리에 들어설 원주 터미널 위치도."


<신동아> 기사 화면 캡쳐
<신동아> 기사 화면 캡쳐

<신동아>가 입수한 문건을 기자가 입수했다면...

<신동아>는 "수자원공사가 올해 새롭게 작성했다고 알려진 경부운하 재검토 보고서의 타당성을 취재하던 중 이명박 후보의 자문그룹인 '한반도운하연구회'로부터 경부운하 전 노선에 들어설 여객터미널과 화물터미널의 상세 위치도와 관련 문건을 입수했다"면서 그 내용을 기사화했다. 사실 기자가 그런 문건을 입수했다면 당연히 기사화했을 것이다. 문제는 보도 방식과 태도이다.

이 기사는 이명박 후보를 비롯해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이 각종 토론회에 참석해 보여줬던 '화려한 홍보 동영상'을 보는 듯하다. 그야말로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경부축으로 각 지역이 번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마저 심어주는 것이다. 경제적 타당성 검토는 생략됐다.

가령 이런 식이다.

"운하의 각 여객터미널(선착장)은 관광유람선이나 페리와 같이 사람을 실어 나르는 배가 정박하는 곳으로 인근 회랑 지대를 이용해 요트장, 카누 조정 경기장, 낚시터 등 각종 레저시설이 들어섬으로써 지역 관광과 수상 스포츠의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선착장 입지는 관광지 접근성이 좋으면서 도시와 멀지 않은 곳들로 낙점됐다.(중략)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갈현리에 들어설 파주 터미널은 여객용 선착장과 화물 선착장이 함께 들어서게 된다. 이곳은 경부운하와 황해, 북한, 중국을 잇는 대(對)북, 대(對)중국 수출의 전진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 이곳은 인근에 통일동산과 장릉이 있고, 파주 신도시와도 인접해 레저·관광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서울 나들이길에 오르면 파주출판단지까지 바로 갈 수 있다.(중략)

부산 방향으로 보면 한강 수계(水系)의 마지막 화물터미널이다. 이곳은 인근 공산물과 농수산품, 화학제품과 비금속 광물의 집하지가 될 것으로 보이며 배후에 농수산물 단지와 집배송 단지 등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주변에 중원 고구려비와 충주댐, 조정지호, 탄금대 등 관광자원도 많다. 강 주변으로 목가적 풍취가 한눈에 들어오는 무척 아름다운 구간이다."

'화려한 홍보 동영상' 보는듯

노골적으로 땅값이 오를 것이라고 부추기는 표현도 있다.

"용산 간이터미널만 새로 추가됐는데 용산시민공원 및 용산전자상가 등 상권과 연계될 가능성이 높다. 용산 간이터미널의 위치는 한강철교 인근 용산구 청암동이다. 이래저래 한강 조망권을 확보한 이촌동, 청암동의 아파트 가격이 뛰게 생겼다."

특정 지역 경제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하지만 그 근거가 빈약하다.

"구미 화물터미널은 중국, 일본, 동남아 수출물량을 직접 선적함으로써 물류비용을 최고 90%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거리 해외 수출 물량도 5~7시간이면 부산에 도착할 수 있어 고속도로와 철도 활용률은 크게 낮아질 전망."

이 기사에 등장하는 실명 취재원도 거의 이명박 후보 캠프에 속한 인사들이다. 운하연구회 전택수 교수, 홍익대 도시공학과 황기연 교수는 이명박 후보가 발표한 정책자문단 그룹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후보 캠프의 김영우 정책홍보단장이 취재원으로 등장하며 나머지는 '운하연구회 관계자' '이 후보측'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독일운하협회 대변인 루쉐씨도 등장하는데 그는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어주는 멘트를 날린다. "지난 3월25일 쾰른 지역 운하를 오가는 운반선이 기울어져 31개의 컨테이너가 수장된 사건"이 발생했는데, "루쉐씨는 '이런 사고는 전체 유럽노선에서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사실상 경부운하를 일방적으로 '홍보'한 뒤 면피하듯 이렇게 한줄을 걸쳤다.

"그러나 이러한 운하의 얼개는 일단 이 후보 경부운하 구상의 사업 타당성이 충분히 검증돼야 현실화할 수 있다."

<신동아> 기사 화면 캡쳐
<신동아> 기사 화면 캡쳐

정치성을 배제하라고? 누가 정치적인가?

후반부에는 '수자원공사 보고서 논란'을 다뤘지만, "과연 수자원공사 기술본부장을 구속으로 몰고 간 37쪽짜리 '2007년판 경부운하 재검토 보고서'는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으며 또 그것에는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것일까"라고 반문하면서 수자원공사 보고서의 작성 배경 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신동아>는 특히 "수자원공사가 자체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37쪽짜리 재검토 보고서와 이를 요약한 9쪽짜리 건교부 재검토 보고서 모두 앞쪽에는 운하의 사업 타당성 검토와는 전혀 관계없는 정치적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정치권과 금융권에 나도는 일명 '찌라시' 문건을 보는 듯하다"고 힐난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과연 운하 공방의 진실은 무엇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공부 좀 더 해라'라고만 할 게 아니라 정치성을 배제하는 게 우선 아닐까. 지금 정치권의 운하 공방엔 '팩트'는 없고 '주장'만 난무하고 있다."

허탈했다. 대체 이게 누가 누구에게 할 말인가. 이 말은 지난 10여개월동안 경부운하 문제를 공동기획해 온 <오마이뉴스>와 생태지평이 이명박 후보쪽을 향해 줄기차게 한 말이었다. 제발 뜬구름잡는 환상만 제시하지 말고 구체적 근거를 대라, 제2의 국운융성이 어떻게 가능한지 '주장'만 하지 말고 '팩트'를 제시하라고 말이다.

<신동아>는 정녕 한반도 대운하연구회측의 일방적인 장밋빛 청사진은 팩트이고, 그에 대해 경부운하 반대론자들은 근거조차 대지 못하고 '주장'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다못해 이명박씨를 제외하고,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했던 모든 후보들이 경부운하에 대한 반대 논리를 쏟아냈는 데도, 이 기사에는 그들이 제기했던 문제에는 애써 눈감고 있다.

특히 경부운하의 핵심 쟁점은 국민 2/3가 먹고 있는 한강과 낙동강에 배를 띄울 경우 예고되는 식수 문제였다. 이에 대한 이명박 후보측은 이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재임했을 당시 타당성 검토를 했다가 폐기한 '간접취수' 문제와 '배가 다니면 스크류가 수면 아래로 공기를 주입하기 때문에 수질이 개선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만 거듭하고 있다. 식수 문제는 뒷전이고, 지역의 개발 심리만을 부각시키려는 것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논리 아닌가.

<신동아>는 수자원공사의 보고서가 '찌라시'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렇다면 유력 대선 후보의 대표공약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보도하는 이런 언론의 기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할까. 그리고 <동아닷컴>이 이같은 기사를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바로 다음날 '머리'에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동아>의 내일 사설 기다려진다

그동안 <동아>의 계열사처럼, <조선>과 <중앙>은 정책검증을 사실상 외면해왔다. 하지만 그나마 <조선> <중앙>은 각각 22·21일자 사설을 통해 경부운하 공약을 재검토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간 유력 후보에 대한 정책 검증을 외면했던 이들이 이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로 선출된 뒤에야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뻔뻔스럽기는 해도 말이다.

<동아>의 내일 사설이 기다려진다.
#이명박#경부운하#한반도대운하#신동아#한나라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