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에 억류된 이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려했던 현경 교수(유니온신학대)는 실망하고 있었다. 어머니들과 만나 현지에 가서 잘 설득해보자고 의기투합한 지 몇 시간 만에 피랍자 가족 측으로부터 몇 가지 사정상 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8일 자신의 아랍 세계 여행을 지원한 이들에게 자신의 활동을 보고하기 위해 서울 내수동 정갤러리를 방문한 현경 교수는 가족들의 거절에 아쉬워했다. 현경 교수는 인질의 어머니들과 함께 현장으로 날아가 한국인을 납치한 파슈툰족의 어머니들과 만날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현지의 NGO활동가, 종교 지도자, 부족장, 아랍 방송 <알자지라> 관계자들과 미리 연락해 둔 상태였다.
"한국 정부가 군사행동을 배제한 채 피랍자들을 구출하려고 노력한 점을 지지한다. 그러나 공식 테이블의 협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의 감성,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노력을 한편에서 기울여야 한다. 나는 탈레반의 감성 코드, 특히 어머니 코드에 눈물로 호소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가족들이 안 가겠다고 하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길 바란다."
"미끼 던지는 선교는 이제 그만"
현경 교수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초까지 아랍 세계 15개 국가를 순례했다. 그는 스페인·모로코·이집트·시리아·레바논·터키·이란·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이슬람 평화 순례'에서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났다고 말했다.
특히 파키스탄에서 한 달 넘게 머물면서 여러 인사들과 교제를 한 것은 이번 납치 사건에 자신의 여행이 귀하게 쓰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예비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의 국제적인 인맥과 경험을 쓸 기회가 무산될 처지에 놓였지만.
현경 교수는 아랍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하나님을 믿는 개신교 신학자로써 낯 뜨거운 경험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개신교인들이 아랍인들에게 너무 무지해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아랍인들은 개신교인에게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랍 사람들은 개신교인들이 와서 고아원을 짓고, 공장도 세우면서 처음엔 정말 자선 활동하고 사업하듯이 살지만 나중엔 개종을 강요한다고 말했다. 한국 선교사들이 참 좋은 분들이고, 그들에게 매우 감동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여러 계층의 인사들을 두루 만났는데, 어떻게 하나 같이 개신교 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뿐인지…."
아랍 사람들의 분노를 직접 목격했지만 선교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한 순간이라도 선교를 멈춰선 안 되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선교를 해야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현경 교수는 이번 납치 사건을 계기로 한국 개신교 안에서 선교 신학을 검토하는 운동이 벌어지기를 희망했다. 신학자와 목회자는 물론, 선교사를 비롯한 현장 활동가 등이 모여 한국 개신교가 벌인 선교가 건전했는지 성찰하고, 우리 시대에 어떤 선교를 해야 하는지 모색하자는 것이다.
현경 교수가 생각하는 바른 선교란 교리적으로 접근해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는지 알려주는 등 개종을 강요하는 게 아니다. 그는 삶을 통해 감동을 주는 것이 진짜 선교라고 했다. 개신교인들의 삶을 보고 주변에서 감동을 받아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묻는 정도로 향기를 날려 스스로 다가오게 해야지, 병 주고 약 주는 식으로 협박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해외 선교를 해야 한다. 분쟁 지역도 가고, 지진이나 폭풍해일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도 가야 한다. 가서 우리가 가진 것 나눠주어야 한다. 다만 우월한 자의 위치에서 배타성을 가지고 미끼 주듯이 돕지는 말자. 아무 보수를 바라지 않는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자.
한국교회의 선교가 성장하려면 미끼로 주는 구제가 아니라 개종을 비롯한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저 예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가난한 나라에 돈 보내고 음식 보내고 약품 보내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기왕 사랑을 주려면 멋있게 건네야지, 미끼 던지듯 후원하는 건 예수가 보여준 삶이 아니다."
"종교다원주의 받아들여야 할 때"
현경 교수는 미국이 영토를 확장하듯이 개신교의 깃발 꽂으려는 선교는 이제 그만 하자고 말했다. 또 예수의 이름으로 가난한 세계 이웃을 도우면서 그들을 두 번째 시민으로 만드는 일도 멈추자고 했다. 아울러 그들의 삶의 방식과 생각, 종교까지도 인정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자고 말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러 종교가 어울리는 곳이다. 어느 하나가 배타적인 우월성을 강조하면 종교라는 이름으로 전쟁이 벌어진다. 과거 십자군 전쟁으로 얼마나 잔인한 학살을 자행했는가. 이제는 이슬람교와 유대교·불교 등 이웃 종교에도 나름의 구원과 해방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현경 교수는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신자유주의로 똘똘 뭉친 사람들 천지에 어려운 세계 이웃을 도우러 자신의 삶을 희생한 청년들이 있다는 것은 한국교회는 물론 한국 사회의 희망이라면서도, 그들의 열정이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선교가 아닌 조건 없는 나눔이 되기 위해서는 신학적인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동안 신학자들와 목회자들이 이들에게 새로운 마음가짐을 주지 못한 책임이 크다며, 현경 교수 자신부터 반성했다. 아울러 신학자들이 세계로 떠나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눈과 마음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다원주의 신학을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선교를 멈추지 않을 것이고, 인질 사태와 같은 비극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현경 교수는 경고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교리를 주입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풍성한 삶을 나누는 '하나님 왕국'의 잔치를 즐기려 한다면, 세상도 교회를 달리 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스 큉은 종교 간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도 없다고 말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이 친구가 되어야 한다. 종교의 이름으로 싸우기보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동지가 되어야 한다. 개신교 신학도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해야 종교 간 평화를 이룰 수 있으며,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능력도 향상된다. 정말 한국교회가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 평화를 일구는 일에 한몫하려면 종교다원주의를 향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평화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보는 기독교 역사 공부하는 건 어떨까"
현경 교수는 다름을 훈련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이슬람 등 이웃 종교를 새로운 눈으로 공부하고, 피해자의 눈으로 기독교의 역사를 다시 점검하자는 것이다. 그는 정복을 위해 이슬람의 약점과 한계를 캐듯이 공부하지 말고, 이슬람의 장점은 무엇이며 어떤 것들을 배워야 하는지, 또 개신교와 닮은 점은 무엇인지 찾아보자고 했다.
그동안 개신교인들은 기독교의 밝은 면만 보았는데, 예수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독교가 세계 도처에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왜 기독교는 싫어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경청하자고 했다. 또 어릴 때부터 불교와 천주교·이슬람 등 여러 종교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공부하고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커서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일꾼이 된다고 말했다.
현경 교수가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한국 개신교인에게 제안한 것은 '자기 성찰'이었다. 천주교나 불교는 명상과 영성 수련이 발달되어 있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훈련이 잘 되어 있는데, 개신교는 신에게 부르짖고 요구하는 기도에 너무 천착한다는 것이다.
현경 교수는 말이 아닌 깊은 침묵 속에 우리의 삶이 하나님에게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돌아본다면, 한국 개신교도 양적인 성장을 넘어 질적인 도약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경 교수는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려는 계획을 접고 팔레스타인으로 향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스라엘과 아랍에 평화를 뿌리내리는 방안을 나누고,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는 이들에게 자신이 아랍을 여행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전하고, 그도 평화운동가들의 조언을 담아 책으로 펴낼 생각이다. 그리고 9월 5일 개학에 맞춰 미국 뉴욕으로 돌아올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