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말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도는 오차 범위 내이다. 또 전체 표본 샘플은 1천명이지만 호남 지역 샘플은 100여명에 지나지 않아 호남지역민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통해 추가로 민심을 확인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비록 오차범위 안일망정 한나라당이 정당 지지도 1위를 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민주당을 만들어 이른바 '황색 바람'을 일으킨 1987년 이후로 처음이다. 또 한나라당은 지난 20일 코리아리서치센터 조사에서도 호남에서 정당 선호도 1위(24.6%)를 차지했었다. 나경원 대변인의 말마따나 '동토에 꽃이 핀 것'이다.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다. 한나라당에 대해 꽁꽁 얼어있었던 호남인들의 마음이 녹았고, 굳게 닫혀있던 호남인들의 마음이 열린 것이다. 동토에 꽃이 핀 것이다."
나 대변인은 "이러한 쾌거는 그동안 호남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 결과라 생각한다"면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는 지난 무안·신안 보궐선거에서 12%의 지지와 대선후보 광주 합동연설회 때 보내주신 지지에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러한 지지율은 국민의 의식이 이제 지역주의에 기대고 매달리는 정치인들의 의식수준을 뛰어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버 대선에서 더 이상 지역대결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에게 지지를 보내주신 호남인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면서 "한나라당은 앞으로 호남에 더욱 따뜻한 애정과 정책을 갖고 다가가겠다"고 다짐했다.
한영 최고위원 "1987년 이후 20년만에 처음 있는 상승세"
이에 앞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여론조사 결과가 화제에 올랐다.
한영 최고위원은 R&R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면서 "1987년 이후 20년만에 처음 있는 상승세라고 한다"면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김홍업 탈당 이후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고 '남의 당 사정'까지 자세히 거론했다.
그러자 박계동 전력기획본부장은 광주·전남 지역민의 51%가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좋다고 응답한 <전남일보>의 조사결과를 전하면서 "이명박 후보가 당 기능과 색깔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했을 때, 이념적 패러다임에서도 중도실용으로 와야 한다"면서 "한나라당이 기능면에서 국민경선에서 보여준 것처럼 호남에서도 높은 투표율 보여줬다"고 가세했다.
한나라당은 또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8월 30~31일 1박2일 일정으로 국회의원ㆍ원외위원장의 화합의 워크숍을 갖기로 결정했는데, 황우여 사무총장은 "의원과 원외가 모두 참여하는 것인 만큼 화합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장소를 화합의 상징인 지리산에서 정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리산은 경남과 전남·전북의 3도에 걸쳐 있다.
한나라당은 정확히 3년 전에도 지리산 자락을 찾은 적이 있다. 2004년 당시 박근혜 대표 시절에 한나라당은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전남 구례·곡성을 의원 연찬회 장소로 선택하고 연찬회 마지막날 소속 의원 전원을 이끌고 광주 5·18 국립묘지를 참배키로 해 당내에서조차 '깜짝' 놀랄 정도였다.
어쨌건 당시 일부 의원들을 제외한 109명의 의원들이 8월 28일 서울을 출발해 천안 독립기념관을 들러 호남 땅(전북 남원 만인의총, 전남 곡성 섬진강변, 구례 농협연수원)을 발을 디뎠다.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그리고 한나라당까지 20여년을 당직자로 일해온 당시 이정현 부대변인은 자신의 고향인 전남 곡성에 도착해 상기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신기록 여러 개가 깨졌다.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의원연수를 하는 것도 그렇고, 마지막 날 광주 망월동 5·18 묘역 참배, 또 10명의 의원들이 전남대에 방문한다. 전남대가 어떤 곳인가."
유종필 대변인 "본선에서 이명박 경제 능력 검증받으면 '거품' 꺼질 것"
박근혜 대표를 이은 강재섭 대표는 당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한나라당 전신 정당의 집권 시절에 보인 '호남 소외'에 대해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강 대표는 지난해 8월 10일 대표 취임 한 달을 맞아 광주광역시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나라당 전신 정당 시절부터 최근 광명시장의 호남 비하 발언까지 호남지역 국민들을 섭섭하게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박근혜-강재섭 대표로 이어진 이러한 일련의 노력이 호남인의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대체적인 판단인 듯하다.
특히 한나라당은 최근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6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중인 상황에서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더 고무적인 것 같다. <화려한 휴가>를 집단 관람하면서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켜 은근히 민주세력에 대한 지지를 기대했던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바람과 달리, 영화와 정치는 별개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이와 관련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전국 단위 조사여서 호남지역 표본수가 적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남에서 한나라당 지지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고 현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 배경을 컨벤션 효과(전당대회나 경선 직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와 밴드웨건 효과(편승 쏠림 현상) 그리고 이명박 후보의 '경제 이미지 선점 효과' 등으로 설명했다.
유 대변인은 그러나 "청년 실업률 1위(광주)와 재정자립도에서 꼴찌 1(전남), 2위(전북)를 다투는 호남의 어려운 경제 현실 때문에 경제 이미지를 선점한 이명박 후보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지지도로 표출되고 있지만 본선에서 본격적으로 이 후보의 능력이 검증받게 되면 '거품'이 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거품'에 대한 우려는 있다. 이날 최고위원 비공개회의에서 이종구 제1사무부총장은 호남의 민심을 이렇게 전했다.
"호남의 여론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를 한나라당이 쓰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이것을 빼달라는 것이 호남의 요구이다. 지난 10년에 대해 프라이드가 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는 한나라당이 앞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앞으로 잘할 수 있는 비전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자."
그러나 이 제안은 제안일 뿐, 정식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호남 지역민들에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는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풍'의 진원지로 노무현 정부를 세운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호남 민심을 잡으려는 한나라당의 고민은, 곧 이번 대선을 보는 호남의 고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