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떠나는 날 경부고속도로를 다리면서 본 하늘과 능선
떠나는 날 경부고속도로를 다리면서 본 하늘과 능선 ⓒ 서광호
영화 <화려한 휴가>가 600만 명을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그 결과로 80년 광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와 함께 그 시대 역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하지만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과 노태우의 신군부 일당이 호남의 민심을 돌려놓기 위해 추구한 이른바 '서해안 시대 구상'의 일환으로 시작"한 새만금 사업에 대해선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2006년 4월 21일 끝물막이 공사가 끝난 뒤, 이전까지 뜨겁던 관심은 시들해져가고 있다. 하지만 공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33.5km의 방조제를 만들기 위해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있는 해창산의 밑동까지 뽑아버렸다. 또한 방조제 용적을 채우기 위해 주변 갯벌에서 4200만 톤의 바다모래를 준설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방조제 내부에 부어야할 토사석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분명 새만금은 현재 진행중인 문제이다.

마침 네 해째를 맞는 독립영화제가 부안에서 벌어진다는 소식이 내게 전해져 왔다. 동행할 사람을 모은 후 지체없이 새만금으로 향했다.

길을 따라 표정이 바뀌는 풍경

태인 IC에서 내려 30번 국도를 타고 부안으로 향하는 길에 본 논
태인 IC에서 내려 30번 국도를 타고 부안으로 향하는 길에 본 논 ⓒ 서광호
집을 나서자마자 하늘을 봤다. 구름은 솜 같이 뭉게뭉게 피어있었다. 마치 먹물을 빨아들인 같았다. 거무튀튀한 구름이 아침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공기는 젖은 종이처럼 맨살에 달라붙었다. 흐리고 습도가 높은 날씨였다.

북대구 IC를 빠져 나와 대전방향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의 능선을 찬찬히 읽었다. 능선에는 리듬이 있었다. 수직의 급박함이 휘모리 장단으로 몰아쳤다.

산의 긴장감은 추풍령을 넘을 때까지 계속 상승했다. 가끔 전선(電線)이 오선지처럼 산의 리듬을 더 명확히 드러내며 길을 따랐다. 위로 솟은 산의 뾰쪽함과 아래로 늘어뜨린 곡선모양을 한 전선의 뭉툭함은 묘한 대비를 이뤘다. 오직 직선만을 지향하는 이 무표정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은 참으로 따분하다. 하지만 능선과 전선이 만드는 풍경만으로도 내 마음은 들썽거렸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를 거쳐 호남고속도로를 탔다. 태인 IC에서 내려 30번 국도를 따라 부안으로 향했다. 국도로 접어들면서 빠른 속도에 좁아졌던 시야는 줄어든 속도에 넓어졌다. 산의 리듬은 진양조 장단으로 느려졌다. 푹푹 찌는 한 여름에 결기 있던 산도 얼음이 녹아 내리듯 완만해졌다. 초록의 넓은 논이 융단처럼 깔려있었다. '운전대를 잡았다면 살필 수 없었던 풍경이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출발한 지 세 시간 반, 드디어 부안 시내가 보였다. 그 즈음해서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까만 비닐을 뒤집어 쓴 듯 사방은 어두웠다. 비는 직각으로 정수리에 퍼붓다가, 세차게 이는 바람에, 짧은 순간 가파른 예각으로 방향을 틀어 차의 몸통을 채찍처럼 휘감았다. 참으로 맵게 내렸다.

부안과 계화도의 첫인상

영화제가 열렸던 부안예술회관
영화제가 열렸던 부안예술회관 ⓒ 서광호
부안의 첫인상은 소박했다. 높은 건물이 없고, 도시의 속도감도 없었다. 행인도 적어 사람멀미로 어지러울 일도 없었다. 사람들의 말투는 간드러진 어떤 곡조 같았다. 억세고 치솟는 억양의 내 고향 사람들(대구)보다 연하고 느긋한 말소리를 가졌다. 빠르고 또 할퀴는 내 말투가 멋쩍어서 말수를 줄였다.

2003년 부안 핵폐기장 반대투쟁으로 들썩거렸던 흔적이 없었다. 다만 새만금 간척사업과 부안 핵폐기장 반대를 계기로 만들어진 '부안영화제'가 그때의 치열함을 짐작케 할뿐이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영화제는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영화제 첫날 일정을 마친 뒤, 영화제 사무국장의 차를 뒤따라 계화도로 갔다.

섬의 어둠에 눈은 멀었고, 코와 귀 그리고 혀에 의지해 섬의 풍경을 머리 속으로 스케치했다. 축축하게 내리는 여름비가 시쿰한 흙 냄새를 코밑까지 끌어올렸다. 광시곡처럼 몰아치는 빗소리가 이내 소야곡처럼 나긋나긋 다소곳해졌다.

비릿하고 찝찔한 바다냄새가 공기 중에 짙게 녹아 있었다. 바람 첫 맛은 짜고 끝 맛은 쓰고, 맛이 지나간 뒤 입안에 남은 공간감은 달았다. 갯내음이 흐릿하게 입안에서 맴돌았다. 풀 냄새도 담백했다.

부안영화제에서 손수 그려 나눠준 티셔츠
부안영화제에서 손수 그려 나눠준 티셔츠 ⓒ 서광호

덧붙이는 글 | 부안영화제는 8월 10~12일에 열렸습니다.


#부안#계화도#새만금#간척사업#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