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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는 얼마나 재미있는 것일까? 얼마나 재미있기에 모자하나 달랑 쓰고 땡볕에서 몇 시간이고 도를 닦는 것일까. 그리고 골프는? 골프는 또 얼마나 재미있기에 그 넓디넓은 잔디들판에서 기껏 한손에 쥐어지는 공 하나를 바라보며 역시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고행하는 것일까.
낚시와 골프처럼 남들 보기엔 지루해 보이나 한발 담그고 보면 무척 신나는 놀이를 나 또한 한 가지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디' 잡기이다. 지역에 따라서 다슬기, 올갱이, 골뱅이, 고둥 등으로 불리 우는 이 물건. 생각만 해도 동공이 커지고 마구 흡족해진다.
어린 시절, 한 살 위인 동네언니는 심심하면, '우리 고디 잡으러 갈래?'하면서 나를 꼬였다. 나는 잘 잡지 못하기에 언제나 들러리였음에도 '이번에는 기필코 내가 많이 잡을 거야' 다짐을 하며 따라나서곤 하였다. 그러나 매번 승리는 언제나 마을 언니의 몫.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고디를 잘 잡는 거야?"
"있잖아. 돌 같은 것 살짝 들어 올리면 그 속에 있어. 그리고 모래 속에도 있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돌도 넘겨보고 모래도 파보지만 내가 넘긴 돌에는 기껏 한두 개 밖에 없음에 반해 그녀가 넘긴 돌에는 항상 대여섯 마리 이상씩 고디들이 숨어있었다.
"돌 넘겨도 잘 없구만."
"그래도 잘 보면 있다."
어떤 때는 고디는 건성이고 그녀가 잡는 양을 관찰한 적도 있었다. 가만히 보면 그녀는 독수리가 뭐 낚아 챌 때처럼 눈을 크게 뜨고 정확히 목표물을 보고 손을 민첩하게 물속으로 집어넣었는데, 다시 물을 나온 손에는 어김없이 고디가 들려있곤 하였다.
하여간 두어 시간 냇가를 거슬러 올라가며 잡아낸 끝에 둘의 양을 비교하자면, 그녀가 100일 때 나는 항상 30수준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아아, 언제 저 언니를 함 이겨보나 앞이 암담, 깜깜 하여지곤 하였다.
그렇게 10전 10패를 하는 사이 유년은 지나갔고 뒤이은 청춘시절엔 더 이상 고디 따위는 잡고 싶지 않았다. 잘 잡히지도 않고 더 이상 실패도 지겹고 '나는 노력해도 안 되는 앤 가봐' 지레 힘이 빠지니 자연 흥미도 옅어졌다.
서른 넘어 다시 찾은 고디 잡기의 즐거움
그랬는데 결혼하고 정기적으로 친정엘 가면서 이 재미를 다시 찾게 되었다. 친정에 가서 점심을 차려먹고 엄마에게 이런저런 동네뉴스를 듣는 데는 두시간정도면 족했다. 내가 더 이상 물을 말도 엄마가 더 이상 해줄 말도 없을 즈음, 그러면 이제부터는 슬슬 고디나 한 번 잡아볼까?
"엄마, 내 오기 전에 누가 한번 훑었나?"
그럴 때면 엄마의 대답은 주로 두 가지였다.
'없다. 어제 OO할매가 다 주워뿟따.' 혹은, '몰라, 요새는 바빠서 다들 고디 주울 정신이 없어서 있지 싶다.'
이미 주웠다고 하면 김이 빠졌고 아무도 안 건드렸다고 하면 야호! 쾌재를 부르며 냇가로 달려갔다. 내 오늘은 기필코 만선(?)하리라.
뒤늦게 고디를 주우면서 그 옛날의 패착을 곱씹어 보자니, 그때는 집중력이 없어서 그렇게 못 주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덤벙대기만 하고 집중하지 않으니 일렁이는 물속의 작은 물체가 보일 리가 있나.
아무튼, 커서 줍다보니 또, 나를 안달 나게 만들던 마을언니가 없는 완전 독무대이다 보니 예전에 비해 고디 잡는 실력이 많이 늘었다. 묘한 것은 운동만 그런 게 아니라 이 고디 줍기도 회를 거듭할수록 요령도 생기고 집중력도 더 길러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내가 고디를 주워오면 엄마는 항상 '제법 주웠네'하며 칭찬해 주었다.
문제는 이 재미를 그동안은 1년에 기껏해야 3번 정도 밖에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버이날 즈음 한 번, 초복에 한 번, 추석에 한 번. 친정엘 더 자주가면 더 잡을 수도 있겠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아 항상 세 번으로 끝났다.
이런! 명당을 지척에 두고 감쪽같이 몰랐었네...
그런데, 올해는 드디어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고디 터를 찾았다. 알고 보니 지척에도 있는 것을. 나는 고디 하면 항상 고향의 청정냇물에서만 자란다고 생각하였기에 차로 20분쯤 가면 있는 인근 시골 개울에는 전혀 눈독을 들이지 않았다.
평소 차타고 지나치기만 하던 그곳을 아이들 때문에 내려서 잠시 다리 밑에서 더위를 시키다가 문득 없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그래도 한번 보기나 하자면서 물속을 들여다본 결과 고디가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어마, 여기도 고디가 있네.'
나는 당장 차 트렁크에서 고디 잡는 소쿠리를 꺼내왔고 고디 잡기에 돌입하였다. 그런데 그 첫날은 얼마 잡지 못하였다. 고디가 내 고향 고디와 색깔이 달라서인지 썩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즉 나는 고디 하면 '검고 조그만 무엇'이었는데 그곳의 고디는 누런색이었기에 왠지 가짜 고디를 보는 듯 신선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집에 와서 삶아 보면 물도 조금 푸를 뿐이었다. 고향 고디의 경우 청정 지역에서 자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고디를 삶으면 물이 아주 파랗고 진했다. 그런데 국을 끓여보니 맛 차이는 없는 것 같아서 이 누런색 고디도 인정해 주기로 하였다.
인정뿐인가. 쉽게 갈수 있는 지척에 있기에 어느 순간, 그만 이 누런색 고디가 더 좋아지기 까지 했다. 해서 요즘은 주말만 되면 스멀스멀 고디 생각에 마음은 일찌감치 인근 냇가에 가 있곤 한다. 갈 형편이 못 될 경우는 또 한주를 어떻게 기다리나 목이 빠진다. 매주 간다고 해도 기껏 5~6회면 물이 차가워서 더 이상 못 들어 갈 텐데 매주 갈 수 없는 형편이니 더더욱 속이 탄다.
때문에 생각하기를 이다음에 늙어 할 일 없을 때는 여름 한 철 아주 고디 잡으면서 원 없이 보내야지 꿈꿔보곤 한다. 노후대책? 고디, 이분이 또 얼마나 비싼지 아시는가? 한 되에 3~4만원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가끔 재래시장엘 가다보면 쪼그랑 할매들이 고디 다라이를 앞에 두고 밥공기 가득 고디를 담아놓고는 '고디 사 가이소, 고디 사 가이소.' 하는데 20~30년 후 내 모양이 그리되는 것은 아닌지 몰라. 기르는 수고 없이 절로 자란 것을 단지 잡는 수고만 하고서 얻어 챙기는 돈 치고는 솔솔 하다는 것을 알기에 진짜 고디 할매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뿐만 아니라. 고디에 관하여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졌다. 한 번 알을 낳으면 몇 십, 백, 천마리를 낳는지, 얼마를 자라면 성인 고디가 되는지, 수명은 얼만지 등등. 지난 주에 다 잡았는데도 이번 주에 가서 역시나 돌을 넘기면 또 소복이 숨어있는데 도대체 땅속 어디에 아지트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나는 고디잡기, 작은 언니는 나물 뜯기
나는 고디잡기에 열을 올리는데 작은언니는 알고 보니 '나물 뜯기'에 환장(?) 하고 있었다. 즉, 해마다 봄이면 언니는 이번 봄에는 어디어디 가서 나물을 뜯었느니 하면서 섬겨 대곤 했다. 나는 내가 나물 뜯기에는 취미가 없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문득 생각하니 언니의 '나물 뜯기'는 내 '고디 잡기'만큼이나 유년의 추억이 원인인 듯했다.
아무튼 나는 고디 잡는 일이 너무너무 즐겁다. 물속에 퍼질고 앉아 눈을 쫑긋 뜨고 고디를 찾을 때의 그 설렘이란. 그 순간엔 세상 모든 것이 시시하고 오직 고디 줍는 일 만이 의미 있는 듯 느껴지는데, 어머, 이거 혹 중독?